자칭 '혼밥 즐기는 취업준비생'이라는 한 남성이 서울 신촌의 한 라면집 1인 좌석에 앉아 식사를 하며 휴대폰을 보고 있다. /임영무 기자 |
[더팩트│임영무 기자] '혼밥? 뭐가 창피해요? 재밌잖아요~'
'혼밥', 쓸쓸함을 넘어 즐거움이 됐다. 우리나라는 유독 '밥'을 함께하는 데 큰 의미를 둔다. 그도 그럴 것이 어색한 사이도 함께 식사를 하고 술잔을 기울이면 거리감이 한결 좁혀진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 밥 한번 먹자"며 흔하게 하는 말 속에는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보자'라는 의미가 들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밥' 문화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변화했다고 보는 게 맞겠다. 언제부터인지 '혼밥(나홀로 밥)·혼술(나홀로 술)·혼커(나홀로 커피)'등 신조어들이 언론 등을 통해 사회 이슈가 되고 외식 업체들은 1인식을 위한 제품개발과 브랜딩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혼자 쓸쓸하게 밥을 어떻게 먹어?" "혼자 먹으면 왕따 같아 보이지 않아?" 하는 식의 걱정보다 '이제 나 혼자 밥먹는 게 편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늘고 있다.
'혼밥', '혼술'의 이유야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1인 가구의 증가와 경제적인 부담, 바쁜 도시 생활 패턴이 1인식 문화를 빠르게 바꿔 나가는 요인으로 풀이되고 있다. 과연 실제 현실은 어떤가.
서울 연세대학교 부근에 위치한 한 식당. 도서관처럼 개인 칸막이를 설치한 업소에서 이용객들이 혼밥을 편하게 즐기고 있다. |
혼밥의 망설임을 덜어주는 문구 |
1인식 인구가 증가하면서 혼밥족들을 위한 공간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
광화문의 한 커피전문점에는 1인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하고 '혼커족'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
홀로 식당을 찾은 한 남성이 철판볶음 요리를 먹고 있다. |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혼자 식사하는 모습이 흔해졌다. 가격이 저렴하고 간단한 편의점 도시락들이 인기를 끌면서 혼밥족들도 선택권이 넓어졌다. |
최근 의사협회 국민겅강보호위원회 조사발표에 따르면 한국인 10명 가운데 1명은 하루 세끼를 모두 혼자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생활 패턴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함께 즐기는 식사 문화에서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혼밥'이 트렌드가 된 것이다. 혼밥은 우울증과, 고혈압 당뇨등의 발병률을 높인다는 우려도 있지만 혼밥족은 계속해서 늘어 가고 있다. 특히 쓸쓸함을 이유로 바라보던 시선은 '나도 한번 혼자 먹어 볼까?' 하는 식의 의식전환으로 이어져 더는 낯선 광경이 아니다.
혼밥 취재를 위해 찾아간 경기도 부천의 한 1인 삼겹살 식당은 한 방향으로 길게 줄지은 칸막이 테이블이 눈길을 사로 잡았다. 케이블 채널이 나오는 TV, 개인 선풍기, 휴대폰 충전 케이블과 거치대 등을 갖추고 '혼삼겹살족'의 발걸음을 잡았다. 1인석에 앉은 각각의 손님들은 마치 집에서 편한 식사를 하듯이 한 손으로는 고기를 구으며 친구들과 편한 전화를 하기도 했다. TV를 통해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깔깔 대며 웃기도 하고 뉴스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에서 '나홀로 식사 시간'이 즐거움으로 바뀐 걸 실감하게 됐다.
경기도 부천의 1인 삼겸살 식당에 한 직장인이 들어가고 있다. |
1인 고기불판에 고기를 굽는 혼밥족 |
식사중에도 모바일 메신저등을 사용하며 자유롭게 식사를 하고 있다. |
1인식 식사가 가능하게 만들어 놓은 칸막이 죄석은 주변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인기를 끌고 있다. |
서울 강남구 코엑스 내에 위치한 한 대형 편의점에서는 질 좋은 쌀로 갓 지은 밥을 강조하는 도시락을 선보여 직장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은 도시락보다 집밥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신촌과 홍대입구 등 대학가에서는 이미 유명해진 일본식 라멘집은 그야말로 조용한 도서관을 연상케 했다.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며 시끌시끌한 식당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주방에서 들려오는 조리 도구의 작은 울림만이 식당임을 짐작케 했다. 요리가 완성되면 개인 칸 앞의 공간에서 점원의 손을 통해 음식이 전달된다. 이후에는 커튼이 내려져 그야말로 3면이 꽉 막힌 혼자만의 공간이 만들어 진다. 기자 역시 처음으로 방문한 그곳에서 혼자만의 식사를 하며 혼밥의 즐거움을 잠시나마 느껴보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 내 한 편의점은 혼밥족들을 위한 공간을 넓게 확보하고 식사를 할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다. |
TV에서 휴대폰 충전까지 모든게 가능한 1인 테이블에서 직장인들이 식사를 즐기고 있다. |
점심 시간, 코엑스의 한 편의점을 찾은 직장인들이 편의점 내부에 마련된 공간에서 간단한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
맛과 영양까지 생각한 도시락이 직장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
혼자 라면을 즐기고 있는 한 남성이 식사를 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
'혼밥' 취재를 위해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취재 요구에 쑥스러워 했지만 이내 혼밥의 좋은 점을 편하게 얘기해줬다. 서울 강남 코엑스 푸드코트에서 만난 한 직장인은 "동료들과 함께 식사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혼자 나와 혼자 즐기는 식사도 해 보니 좋더라, 혼밥족을 위한 식당들도 생겨 한결 부담이 없다"며 혼밥을 즐기는 이유를 밝혔다.
신촌의 한 편의점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한 대학생은 "취업을 준비하는 자취생인데 후배들과 자주 밥을 먹다 보니 경제적으로 부담이 컸다. 편의점 도시락이 가격도 싸고 맛도 좋아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부천에서 직장을 다니는 한 샐러리맨은 "혼자 오피스텔에서 생활을 하니 밥을 해먹기가 쉽지 않다. 퇴근 후 고기와 소주 한 잔 생각이 나서 들렀다" 며 개인자리가 마련돼 있어 쑥스럽지 않고 좋은 것 같다며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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