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민의 초이스톡] '차두리, 최고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입력: 2015.04.02 10:20 / 수정: 2015.04.02 10:20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사이 뜨거운 눈물을 가슴으로 펑펑 쏟아내며 아버지 품안에서 한참이나 흐느낀 사나이가 있습니다. 보는 이들도 그 눈물의 의미를 알기에 멀찍이서 눈시울을 적시며 연신 박수를 보내며 환호합니다.
지난달 31일 우리는 또 한명의 축구 레전드와 이별을 했습니다. 뉴질랜드와 경기를 끝으로 14년간의 국가대표 시절을 뒤로하고 태극마크를 반납한 차두리 입니다. 이로써 2002년 월드컵을 빛낸 전설들은 사실상 모두 역사속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차두리는 "축구하는 내내 아버지 명성에 도전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을 느꼈다.아버지의 큰 아성에 도전 했는데 실패해 자책도 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미웠다. 너무나 축구를 잘하는 아버지를 둬서 아무리 잘해도 근처에 갈 수 없는 아버지를 뒀다.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롤모델로 삼았던 분이 아버지 였다. 난 참 행운아다. 모는걸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어 큰 복이었다."며 울먹이면서 은퇴 소감을 밝혔습니다.

운동선로서 사연없는 선수가 없겠지만 축구선수로서 차두리 만큼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선수도 드물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잘난 아버지 덕에 그 후광으로 대표선수로 발탁됐다"거나 "차범근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반에 반도 못 따라 간다" 등등 시기와 질투를 넘어서 모함까지 받으며 마음고생을 해야 했지요.

독일에서 한팀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팀을 전전하고 스코틀랜드로 이적했을 때도 그의 실력 보다는 부친의 후광과 인맥을 거론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아버지의 라이벌인 허정무 감독이 그를 발탁했을 때 조차 ‘차범근 감독과의 관계 개선' 이라는 억측을 내놓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보다 더 잘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잘 안되는 아들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또 어떻게 위로를 해야 했을까요?

"아버지의 관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기록이 떨어졌어요. 아버지가 미웠어요. 조금만 못해도 아버지와 너무 다르다며 다들 수군거렸거든요" 아버지 조오련의 뒤를 이어 수영국가대표가 된 조성모의 고백에서도 알수 있듯이 특별한 아버지를 둔 아들들의 마음이 짠하게 다가 옵니다.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좌절과 반항에 대한 심리학자 프로이트식 '갈등 이론'을 들먹이는건 아니지만 차두리 이전에 '차범근 주니어'로 축구를 시작한 그이기에 아버지의 존재는 후광이자 콤플렉스 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 주춤했던 시절도 있었으나 묵묵히 자신만이 개척한 길 위에 모두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차두리'라는 이름으로 축구 인생을 마무리한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차두리는 현역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해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도전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습니다. 맨유의 신화를 창조한 알렉스 퍼거슨, 독일에 월드컵 우승의 영광을 안긴 요아힘 뢰브, 세계적인 명장이 된 거스히딩크도 선수시절엔 그닥 유쾌하지 않았다고 하죠.

"내 축구인생은 3-5로 지고 있다. 종료 직전 골대만 두 번 맞혔다"며 아버지를 능가해 보려고 했지만 그 벽을 넘지 못해서 3-5의 스코어라고 평했던 차두리.

'Meine beste Zeit kommt noch-내 최고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의 SNS에 올려져 있는 글이 의미심장하게 다가 옵니다. 위의 글처럼 그의 축구인생 후반전은 멋진 역전승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더팩트|=최용민 기자 leebean@tf.co.kr] [사진=배정한 기자 hany@tf.co.kr]
[사진팀 │ phot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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