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민의 초이스톡] '서러워 말아라 꼴찌들이여!'
입력: 2015.02.12 10:03 / 수정: 2017.08.01 14:54

'지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사람의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나그네와 같은 것이다.
서두르지 마라. 무슨 일이든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굳이 세상일에 불만을 가질 일이 없다. 이길 줄만 알고 질 줄을 모르면
해가 그몸에 이르느니라." -도쿠가와 이에야스 유훈중에서-

일본 막부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후세를 위해 남긴 말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도쿠가와의 고난과 역경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말 그대로 '인내의 시간'을 보내며 곱씹었던 말이겠지요. 헌데 이 양반, 인생 말로만 놓고 보면 한 시대를 호령하며 산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살아남는 것' 자체가 최고의 과제였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두가 거창 해졌네요.
사진기자라는 직업이 취재를 위해 나름 기사 스크랩도 하고 참고할 정보가 있으면 미리 이것 저것 뒤져보고 필요한 게 있으면 메모도 해야 합니다. 최근 기사와 정보를 찾다 보니 유독 유쾌하지 않은 단어와 함께 좌절감 내지는 박탈감에 젖어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바로 서울삼성 썬더스 이상민 감독 입니다.

몰라보게 수척해진 이상민 감독

저야 타고난 몸치라 스포츠와 친하지는 않더라도 그 이름만은 잘 알고 있죠. 프로농구 현역시절 최고의 스타 출신 감독으로 지금도 여전한 오빠부대를 둔 인기 덕분에 선수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받는다는 그 이름 '이상민'. 이 감독을 검색엔진에 올려놓고 보니 폭포수처럼 끝도 없이 기사가 쏟아지네요.

초보 감독으로서 패기만만하게 출사표를 던졌던 그가 거듭된 연패에 사실상 물 건너 간 플레이오프와 발버둥치면 칠수록 깊어져가는 탈꼴찌에 대한 언론의 조롱과 팬들의 질타가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 감독 본인은 기사 보는것 자체가 큰 곤욕이겠죠. 아마 애써 외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경기장서 보게 된 이 감독은 무척 수척해 보였습니다. 현역 시절 이기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그가 감독으로서 승수 쌓기에 만만한 동네북으로 전락하고 보니 경기 시간이 임박 할수록 그 압박감과 스트레스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벙어리 냉가슴' 박훈근(오른쪽), 이규섭 코치... 죽을맛이네

여기서 문득 눈에 띄는 두 사람이 있네요. 감독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고 선수들과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박훈근, 이규섭 코치였습니다. 이들 또한 지쳐있는 이 감독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팬들의 질타를 혼자 몸으로 감내하고 있는 이 감독의 곁에서 누구보다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하고 있을 겁니다. 감독이야 불만이 있으면 화라도 내겠지만 이들 코치들은 그럴 수도 없는 '벙어리 냉가슴'의 다름 아니었습니다. 마음 고생하고 있는 감독의 눈치도 봐야하고 패배감에 젖은 선수들을 다독여야 하니 참으로 죽을 맛이겠지요.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작전을 숙지시키는 박훈근, 이규섭 코치

박훈근 코치, 벌써 몇번째냐... '울고 싶어라'

이규섭 코치의 공염불 '두번째 9연패는 정말 안돼'

연장혈투 속 역전허용....패배감에 젖은 서울삼성 선수들 '오늘 또 지는건가'

상대팀은 승승장구하고 있는 문경은 감독의 서울SK, 아이러니하게도 문경은 감독도 초보감독 시절 첫 경기부터 박살이 나면서 죽을 쒔습니다. 그러나 시련도 많았지만 보란듯이 이겨내고 최강의 팀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각설하고 경기장으로 눈을 돌려 볼까요? 삼성쪽으로 거의 기울었다고 생각되던 경기가 막판에 또 뒤집기 쇼가 펼쳐지는군요. 다 잡았던 경기를 73-76으로 놓치며 올 시즌 두번째 9연패를 당하자 열불 터지는 이 감독 곁에서 두 코치는 망연자실하네요. 경기 종료 후 문경은 감독이 이상민 감독과 악수를 나누며 미안한 눈빛을 전합니다.

열불 터지는 이상민 감독을 바라보는 박훈근 코치 '그마음 잘 알기에'

여유있는 문경은 감독 '상민아 맞으면서 크는거야'

"조급해하지 말고 초조해하지 마라,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가면 된다" 이 감독에게 보내는 문 감독의 애정어린 충고 입니다.혼자서 3000m 정도의 산을 오르는것은 가능하지만 동반자 없이 6000m 이상의 고지대를 등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높이 올라가고자 할수록 협력자가 절대로 필요하고 협업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 감독은 지금 이기기 위해서 지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고, 맞으면서 맷집을 키워나가는 인내라는 시험대에 서 있습니다. 외롭고 힘든 시기가 될 겁니다. 박훈근, 이규섭 코치도 예외는 아닐테지요. 이 감독이 혹독한 시련기를 잘 견뎌낼 수 있도록 동반자 역할을 잘 수행해 줄 것으로 믿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의 이상민 감독 '오늘도 걷는다마는...'

'오늘도 역시' 이상민 감독과 인고의 터널을 여행중인 박훈근(왼쪽), 이규섭 코치

"실패는 뇌의 상처를 입은 조직과도 같고 이 교훈은 영원히 지속 된다"고 합니다.'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철학은 생존법을 찾아가고 있는 이 감독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것 같습니다. 이 감독과 마찬가지로 초보감독으로써 혹독한 시련기를 겪고 명장 반열에 오른 감독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봐 왔습니다. 그가 인고의 시간을 보낸 뒤 반드시 최고의 명장으로 팬들 앞에 다시 서리라 확신합니다. 문득 고인이 된 가수 김정호의 노래가 제 입가를 스치고 가네요.

"때가 되면 다시 피니 서러워 말아요~"

[더팩트|최용민 기자 leebean@tf.co.kr]
[사진팀 photo@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