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의 눈] '푸아그라'는 우아하고, 복날 '개고기'는 야만인가
입력: 2016.07.27 09:40 / 수정: 2016.07.27 09:40
27일 중복을 맞아 또다시 개고기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최근 영국인이 광화문 광장에서 피켓을 들고 국내 개고기를 먹는 것을 지적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남윤호 기자
27일 중복을 맞아 또다시 개고기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최근 영국인이 광화문 광장에서 피켓을 들고 국내 개고기를 먹는 것을 지적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남윤호 기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연일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예로부터 날씨가 더워지면 떨어진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보신 음식을 먹었다. 27일, 오늘은 중복이다. 복날, 역시나 보신탕(개장국) 논란이 불거졌다. 해마다 반복돼온 문제다.

보신탕 논란의 혐오론자들은 '개를 어떻게 먹냐'와 '잔인한 도살' 등을 핵심 이유로 든다. 애견 문화가 일반화된 최근 불거진 논란 같지만, 사실 보신탕 논란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온 사회적 이슈였다. 서양에서는 개를 먹는 동양을 가리켜 '야만스럽다'고 표현한다. 또, 국내 애견인들도 개고기를 먹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최근 영국과 일부 영국인이 국내에서 '개고기 먹는 나라'라고 시위에 나서며 논란이 일고 있다. 갑자기 영국에서 불어 닥친 개고기 논란이 당황스럽기도 하다. 지난 2월부터 영국 정부가 운영하는 청원 사이트에는 '한국 정부에 개고기 거래 금지를 촉구하자'는 서명운동이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청원 사이트에는 "한국에서는 해마다 500만 마리의 개가 식용으로 도살되고 있습니다. 1988년 한국 정부는 국제적인 비난을 피하려고 '보신탕 음식점'을 숨겼습니다. 30년이 흘렀지만, 한국에선 지금도 여전히 개고기 산업이 성업 중입니다.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는 아무런 조사 없이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인정해줬습니다. 영국 정부는 국제올림픽위원회와 한국 정부에 개고기 거래 금지를 촉구해야 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지난 2월 시작된 청원에 10만 명 이상이 서명했다.

영국 청원 제도 관련 규정에는 청원은 첫 발의 이후 6개월 동안 유효하며 이 기간에 1만 명 이상 서명자가 나오면 영국 정부는 반드시 반응을 내놓아야 하고, 10만 명 이상이 서명하면 반드시 의회가 논의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게 돼 있다.

영국 정부가 운영하는 청원 사이트에는 한국 정부에 개고기 거래 금지를 촉구하자는 서명운동이 1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UK Government and Parliament 갈무리
영국 정부가 운영하는 청원 사이트에는 '한국 정부에 개고기 거래 금지를 촉구하자'는 서명운동이 1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UK Government and Parliament 갈무리

영국에서 개고기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영국은 과거 필리핀을 상대로도 개고기 문제를 지적하다 외교 논쟁을 벌인 바 있다.

1981년 11월 영국의 '데일리 미러'지는 필리핀에서 보신탕용 개들이 쇠줄에 묶여 '개죽음'을 기다리는 사진을 1면에 실었다. 영국인들은 사진을 보고 필리핀과의 교역중지, 외교적 압박 등을 요구했다. 대처 수상도 '경악, 혐오감'을 나타냈다.

영국의 이런 행동에 필리핀의 한 의원은 국회에서 "우리가 개고기를 먹든 말든 그건 우리 문화고 국내문제다. 영국이 우리더러 잔인하다고 하는데 과거 식민지에서 인간에게 더욱 잔인하고 못된 짓을 한 영국이 어디 다 대고 그딴 소리를 할 수 있단 말이냐?"며 비판했다. 결국, 영국도 "필리핀 국내문제가 공연히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성명을 내 사태가 수습됐다.

영국에서 문제 제기가 됐지만, 국내에서도 개고기 문제는 늘 민감한 사안이었다. 국내 개고기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이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보신탕집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전시켰을 정도였다. 이는 모두 서양을 인식한 조치였다.

필자는 개를 대하는 것에 동양과 서양이 분명한 인식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직접 느낀 경험이 있다. 오래전 프랑스 파리 14구역에 있는 몽파르나스 역에서 집시(노숙자)들과 잠깐 생활한 경험이 있다. 당시 집시들의 주 수입은 역시나 구걸이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집시 중 개를 데리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당신 먹을 것도 부족할 텐데, 왜 개까지 데리고 다니느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개가 있어야 사람들로부터 돈을 더 받을 수 있다. 이 사람들은 내가 불쌍해서 돈을 주는 게 아니다. 개를 굶길까 봐 돈을 준다"고 한 말에서 '문화 차이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하고 느낀 바 있다.

개고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비교되는 세계 3대 요리 푸아그라도 거위를 학대해 만들어진다. 서민들의 보양식으로 인기를 끄는 서울의 한 보신탕 가게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남윤호 기자
개고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비교되는 세계 3대 요리 푸아그라도 거위를 학대해 만들어진다. 서민들의 보양식으로 인기를 끄는 서울의 한 보신탕 가게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남윤호 기자

문화의 차이를 느낄수록 우리 문화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고기 문제에 있어 '무조건 안 된다'는 주장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식용으로 길러지는 개와 애견은 분명히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용과 애견을 동일 선상에 놓고 먹는 문제를 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서양인들이 모든 개를 애견으로 생각한다고 우리 역시 그래야 할까. 인도는 소를 종교적 이유로 숭배한다. 그렇다고 인도인들이 소고기를 먹는 다른 국가를 비난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또, 개고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비교되는 세계 3대 요리 푸아그라 역시 거위를 학대해 식재료를 구한다. 푸아그라는 거위를 움직일 수 없도록 좁은 우리 안에 목을 고정한 뒤, 긴 튜브를 꽂아 강제로 사료를 먹여 만들어진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강제로 사료를 먹이며 한 달 정도 이 과정을 반복해야 일반적인 간 보다 5~10배 정도 큰 간이 만들어지게 된다.

세계 3대 요리라는 푸아그라는 이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식재료를 구한다. 세계 3대 요리라는 이유로 잔혹함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음식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등과 연결되므로 프랑스나 푸아그라를 먹는 이들을 비난할 이유도 없다.

개고기 역시 애견과 연결해 '야만스럽고 잔인하다' '한국은 개 먹는 나라'라는 비난을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 인간이 먹는 모든 음식에는 생명이 있다. 채소에도 고기에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먹지 않는다고 그 나라를 매도하고 그 사람들을 혐오하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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