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시집 발간 후 23년이라는 오랜 묵언 끝에 펴낸 역작
여전히 참다운 길이 무엇인지 질문
'5월시' 동인으로 군부독재에 맞서 치열한 실천문학 운동을 펼쳐왔던 나종영 시인이 고희를 맞아 세번째 시집 '물염의 노래'(문학들)를 펴냈다./문학들 |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5월시’ 동인 활동을 하며 치열하게 실천문학 운동에 몸담았던 나종영 시인이 신작시집 '물염의 노래'(문학들)를 펴냈다.
‘5월시’는 군부독재의 폭압 아래 다수의 문인들이 침묵하고 있을 때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결성된 시 동인지로 한국문학운동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번 시집은 나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지만, 두 번째 시집 출간 후 23년이라는 오랜 침묵 끝에 펴낸 시집이어서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시집의 표제 ‘물염의 노래’는 세속에 물들지 말라’는 뜻의 ‘물염’(勿染)을 인용했다고 시인은 밝힌다.
나 시인은 시집 머리글 '시인의 말'에서 "그동안 나는 그냥 시를 쓰는 사람보다도 한 사람 ‘시인’으로서 시대를 살아오기를 염원해 왔다. 사물과 사람에 대한 사랑, 겸손, 겸애와 더불어 이 훼절의 시절에 세속에 물들지 않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자신이 안간힘을 쓰며 닿고 싶은 시적 경지가 '물염'임을 고백한 것이다.
표제 시 ‘물염정에 가서’는 시인이 송정순(1521~1584)이 지은 ‘물염정’(전남 화순군 이서면)이라는 정자에 가서 가슴을 파고든 감정을 토로한 것이다. "그대는 홀로 어디쯤 닿고 있는가?"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는 물염적벽에 그대는 칼끝을 세워 청풍 바람 소리를 새기고"라고 노래한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혼탁한 세상에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참다운 길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선비의 자세와 다르지 않다. 이 시집은 그런 염원과 결기의 노래라 할 수 있다.
나종영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발간 후 23년 만에 신작시집을 펴내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문학들 |
평단은 2001년 두 번 째 시집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 이후 23년 만에 펴낸 나 시인의 이번 시집을 ‘역작’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광주의 아픔과 진실을 밝히려는 초기 시 이후 분단된 민족문제와 참담한 민중현실 그리고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를 노래해온 시인의 여정이 어느새 ‘고희’에 이르러 더욱 깊고 넓은 시적 결실을 맺고 있다는 호평이다.
임동확 시인은 시집 해설에서 "나종영의 시 세계 속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에게 내재한 윤리를 회복하고 극대화하면서 기꺼이 그걸 세상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민중과 함께하고자 하는 유교적 선비의 자세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김형중 평론가는 "나종영의 시 속에서 빛나는 저것들이 꼭 사리인 것만 같다. 시력 전체를 거쳐 지속된 그른 세계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는 그의 시를 단단하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그것들을 삭여 어떤 결정들을 만든다. 그러니까 나종영의 시집 곳곳에서 반짝이는 저 수많은 것들은 일종의 사리다"고 평했다.
나종영 시인은 1980년대 ‘5월시’ ‘시와경제’ 동인으로 활동했고,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1981년 창작과비평사 13인 신작시집 ‘우리들의 그리움은’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끝끝내 너는’,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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