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시아 문화 중심 예술 섬' 꿈꾸는 박우량 신안군수
입력: 2024.10.28 12:58 / 수정: 2024.10.28 12:58

"더 온리 신안…우리만이 가진 거장들의 콘텐츠 찾아 세계인들이 몰려올 것"

전국 226개 지자체 중에서 전체 예산 대비 문화예술 관련 예산 확보율이 가장 높을 정도로 문화예술 분야에 쏟는 열정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우량 신안군수./신안=나윤상 기자
전국 226개 지자체 중에서 전체 예산 대비 문화예술 관련 예산 확보율이 가장 높을 정도로 문화예술 분야에 쏟는 열정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우량 신안군수./신안=나윤상 기자

[더팩트 ㅣ 광주=박호재 기자] 박우량 전남 신안군수의 군정 스타일은 그 어느 곳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각별하다. 박 군수 스스로가 '미친 짓을 하고 있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획기적이고 혁신적이다. 군정의 키워드는 '예술 섬 조성'이다. 그것도 '아시아 문화 중심 아일랜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을 정도로 계획의 눈높이가 높다.

'1섬 1 뮤지엄', '1섬 1정원', '위대한 낙서마을' 조성을 기치로 마리오 보타(건축, 스위스), 올라퍼 엘리아슨(설치미술, 호주), 야나기 유키노리(조형, 일본), 존원(그라피티 아트, 미국), 곰리(조각, 영국) 등 세계적 저장들을 초청해 '꿈의 프로잭트'를 펼쳐냈다. 한결같이 세계 유수의 대도시에서도 작품을 유치하기 힘든 글로벌 톱 클래스 거장들이다.

인구 3만 명의 작은 어촌마을 지자체에서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이 기적의 프로젝트를 구현한 박우량 신안군수를 <더팩트>가 만났다. 대담은 압해도 읍사무소에서 이뤄졌다.

-전국 226개 지자체 중 전체 예산 대비 문화예술 예산 확보율이 높다. 그만큼 문화예술 관련 사업에 쏟는 열정이 남다르다. 그 취지나 배경은?

전국 시‧군‧구 중에서 신안이 제일 가난하다. 큰 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고만고만한 섬이 77개 있을 정도로 여건도 열악하다. 그만큼 지속적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거냐가 큰 문제다.

이런 열악한 여건 속에서 살아가려면 주민들이 자긍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자긍심의 원천이 무엇일까 고민을 해보니까 문화예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관내에 병풍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그곳에 시집온 여성들은 나이가 50세가 돼서도 누가 물으면 '목포 산다'고 하지 섬에 산다는 얘기 하지 않는다. 섬에 산다는 상실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주민 구성을 보니 주민들 90%가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마을 길 1㎞에 하나씩 예수 열두 제자를 본떠 작은 교회 12개를 세웠다. 프랑스 작가 2인, 스페인 작가 2인, 국내 작가 5인이 교회를 만들었다. 지금은 시집온 여성들이 육지에 있는 친구들에게 '나 병풍도 살고 있으니 한번 놀러 오라'고 얘기한다.

또 하나 이유는 산업은 피크점이 있다. 중국에서 계속 쫓아와 우리가 앞서가던 산업들이 계속 어려워지고 있고 심지어는 삼성조차도 어렵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러나 문화예술 분야는 100년, 200년 간다. 이 때문에 문화예술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 분야에서 승부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낙서마을 조성사업 일환으로 펠리스 파크(신안군 압해로) 외벽에 구현된 그래피티./신안=나윤상 기자
'위대한 낙서마을' 조성사업 일환으로 펠리스 파크(신안군 압해로) 외벽에 구현된 그래피티./신안=나윤상 기자

-타 자치단체 벤치마킹 방문이 100여 차례에 달할 정도로 창의적인 리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에서 구하는지?

정부 덕을 많이 입었다. 1992년도에 국비 사무관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다. 법학 전공으로 2년 6개월 동안 지방자치 공부를 하며 일본 지자체 현황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일본은 근대화가 우리보다 한 100년 정도 빠르게 시작됐다. 봉건영주제 정치 체제를 오래도록 유지해 왔던 일본은 지방자치에 있어서도 지방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서로 경쟁하다 보니 많은 아이디어가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도출되고, 그렇게 구현된 현장들을 직접 확인했다.

두 번째는 매일 아침 한국에서 발행되는 거의 모든 신문들을 빠트리지 않고 읽는다. 지면에서 눈에 띄는 것들을 발췌해 스크랩하고 우리 군에서 한번 시도해 볼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직원들에게 한번 조사해 보라고 지시한다.

한 십수 년 전 일로 기억된다. 어느 잡지를 봤는데 '피아노에 미친 도시'라는 기사가 있었다. 파리 북쪽에 있는 인구 8만 명의 도시인데, 8월 한 달 동안 온 도시에서 피아노 연주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후 10년을 기다렸다. 연주자도 와야 하고 청중도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호텔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갖춰지지 않아 사업을 시작할 수 없었다. 관내에 대형 호텔이 오픈한 3년 전에 자은도를 '피아노 섬'이라고 선포했다.

그다음 해에 임동창 선생 모셔 와 피아노 축제를 하고 작년에 두 번째 축제에 2만~3만 명이 다녀가는 등 크게 성공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색소폰 섬 만들고, 풀르트 섬도 만들고, 하프의 섬도 만들어갈 계획이다.

박우량 군수는 1섬 1뮤지엄, 1섬 1정원 프로젝트를 통한 예술 섬 조성 사업을 꾸준히 펼쳐가고 있다./신안=나윤상 기자
박우량 군수는 '1섬 1뮤지엄', '1섬 1정원' 프로젝트를 통한 '예술 섬' 조성 사업을 꾸준히 펼쳐가고 있다./신안=나윤상 기자

-세계적 명장들을 꾸준히 초청해 '아시아 문화 중심 아일랜드'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어떻게 이뤄갈 것인지?

6년에 걸쳐 1단계 사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북녘의 천사'라는 작품을 남긴 영국 출신 세계적 조각가 안토니오 곰리가 지금 비금도 바닷속에 작품을 만들고 있다. 글로벌 톱 클래스에 있는 건축 거장 스위스 출신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조각 미술관이 2026년에 오픈한다.

나오시마 예술의 섬을 만든 일본 건축가 야나기 유키나가가 설계한 아시아 최초 물에 뜨는 미술관(플로팅 미술관)이 내년 7월에 준공된다. 덴마크 출신 현대미술 거장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도 오는 11월 13일 완성된다.

빛의 예술가로 세계적 명성을 지닌 미국 출신 제임스 터렐의 작품 9개가 설치되는 미술관이 관내 노대도에 곧 들어선다. 이같은 프로젝트들이 완성되면 세계의 미술 애호가들이 신안을 찾을 것이다.

신안만이 갖는 이런 세계적 콘텐츠들을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홍보 전략도 추진 중이다. 현대자동차 세계 광고를 도맡아 하고 있는 종합광고 전문기업 이노베이션과 지금 얘기를 진행 중이다.

신안의 뮤지엄과 미술관 자산들을 국제 예술계에 널리 확산시킬 수 있는 글로벌 이벤트 개최도 구상 중이다.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국제 미술전인 '신안 트리엔날레'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 건립 중인 시설들이 마무리되면 여건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박우량 군수는 섬이라는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자긍심 고취가 지역발전에 큰 역할을 하며, 그 매개체가 바로 문화예술이라고 주창한다./신안=나윤상 기자
박우량 군수는 섬이라는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자긍심 고취'가 지역발전에 큰 역할을 하며, 그 매개체가 바로 문화예술이라고 주창한다./신안=나윤상 기자

-이 엄청난 일들을 단기간에 추진해 이뤄낸 성과들을 보면 특별한 리더십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솔직히 전국의 어느 시장, 군수도 못한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 군 직원이 800명인데 전국에서 아마 가장 일을 잘할 것이다. 열정도 대단하다. 오더가 떨어지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해결해 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을 하는 데 걸림돌이 생기면 군수가 그걸 치워줘야 한다.

이를테면 예산이 없으면 일을 진행할 돈을 마련해 줘야 한다. 중앙부처 어디든 찾아다니며 군수가 앞장서서 해결해 줘야 한다. 오는 11월 11일 우리 군이 '분재 대전'을 개최한다. 상을 많이 마련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장관상도 요즘은 잘 안 준다. 과정도, 절차도 복잡하다. 이런 일들은 직원들만 시켜서 될 일이 아니다. 내가 직접 나서서 국회의원 만나고 전화할 곳 전화해서 상을 다 마련했다. 이처럼 군수는 직원들이 일을 하면서 부딪히는 걸림돌들을 제거하는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한다.

직원들에게 일하는 길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 바로 오늘 아침 상황을 좀 들려주고 싶다. 신문에 태양광판을 설치한 기차가 ESS 저장장치를 활용해 400~500㎞까지 달린다는 기사를 봤다. 그래서 그 내용을 바로 직원에게 SNS로 보내며, 그 원리를 선박에서 활용하는 R&D 사업을 산자부에 신청해 보자는 과업을 지시했다.

박우량 군수는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을 초치한 신안군의 예술 섬 조성사업이 마무리되면 세계인들이 앞다퉈 신안을 찾아올것이다고 미래의 꿈을 밝혔다. /신안=나윤상 기자
박우량 군수는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을 초치한 신안군의 예술 섬 조성사업이 마무리되면 세계인들이 앞다퉈 신안을 찾아올것이다고 미래의 꿈을 밝혔다. /신안=나윤상 기자

-마지막으로 군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마디로 지금까지 전혀 전례가 없던 생경한 일들을 군수가 추진하는 것을 보면서 지역 주민들이 적극 협조해 준 것이 너무 감사하다. 처음에는 여러 의견도 많고 다른 생각들도 있었지만 결국은 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어서 늘 고마움을 느낀다.

신안군이 추진하는 사업들이 전국 226개 자치단체의 발전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군수의 신념을 군민들이 믿어줬기 때문에 많은 일들을 성취해 낼 수 있었다.

내 임기가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촌각의 시간도 소홀하게 허비하지 않고, 주민들의 혈세를 한 푼도 낭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사용해 신안군을 전국 최고의 자치단체로 만들고 싶다.

forthetru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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