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규 대전 동구의회 부의장이 8일 <더팩트>와 신속집행 제도 개선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정예준 기자 |
[더팩트ㅣ대전=정예준 기자] 경기 부양 등을 위해 상반기에 재정을 조기에 집행하는 '신속집행' 제도가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예산의 집행률을 끌어올리고 재정 집행의 연말 쏠림을 막고 경기 부양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하지만 대금 선지급으로 인한 부실 공사 우려와 관리·감독 소홀 등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
특히 기획재정부에서 신속집행률 목표를 설정한 뒤 각 지자체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평가항목으로 작용하기에 지자체 간의 신속집행 경쟁도 치열하다.
이에 <더팩트>는 8일 최근 신속집행 제도 폐지·개선 방안 건의안을 발의한 강정규 대전 동구의회 부의장을 만나 신속집행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강정규 대전 동구의회 부의장이 8일 <더팩트>와 신속집행 제도 개선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정예준 기자 |
다음은 강정규 대전 동구의회 부의장과의 일문일답.
-지난달 10일 대전 동구의회 제281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대통령실, 국무총리실, 행정안전부 장관을 대상으로 지방재정 신속집행 제도의 폐지·개선 방안을 마련해주실 것을 건의했다. 지방재정 신속집행 제도에 관해 설명해 달라
"신속집행 제도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여 경기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제도다. 재정을 상반기에 집중적으로 집행해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연말에 예산 집행이 쏠리는 것을 막자는 취지로 시작돼서 이름만 변하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최근에 신속집행 제도의 폐지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주된 이유가 무엇인가
"신속집행 제도가 도입된 당시와 비교했을 때, 상황은 많이 변했다. 오히려 오늘날에는 제도의 취지에서 벗어나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정확히 어떤 부작용이 있는가
"사업의 빠른 집행만을 강조하면서 본래 목적을 왜곡시키고 있다. 지자체의 사업은 구민분들의 삶에 더 도움이 되게, 효율적으로 더 정확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빠르게 집행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사업의 효율성, 정확성 등의 본래 목적이 왜곡되고 있다.
실제로 공사 등이 상반기에 집중되면서 인건비와 자재비가 증가해 효율성이 훼손된다.
또 상반기에 공사가 몰리면서 관리·감독이 어려워져 부실한 업체가 낙찰되고 사업의 부실시공이 발생할 위험이 커졌다. 제가 2015년에 ‘한의약 인쇄골목 재생사업’ 행정사무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한 바 있다. 위원장으로서 사무조사를 추진하면서 사업의 부실시공과 지자체의 관리·감독 부실을 밝혀냈다. 현장에서 신속집행 제도의 부작용을 목격하고 파헤쳐낸 바 있는 저로서는 굉장히 우려가 큰 부분이다."
-신속집행 제도로 인해 현장의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간 신속집행 실적 경쟁이 심화하면서 공무원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신속집행으로 불필요한 업무가 늘어나면서 행정력이 낭비되고, 공무원들의 부담과 업무 스트레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신속집행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분들, 공무원노조원분들과 말씀을 나눠보면 신속집행 때문에 받는 압박과 스트레스가 굉장히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지자체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사업에 사용되어야 할 행정력이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이 유감스럽다."
-신속집행 제도의 평가 기준도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자치단체의 특성과 재정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일률적인 평가 기준이 문제가 되고 있다.
지역마다 공사를 할 수 없는 동절기가 다르다. 또 열사병이 중대재해로 분류되면서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이면 작업시간이 조정된다.
이렇게 혹한기, 혹서기에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는 만큼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도시화가 덜 된 지역은 인력 투입에 어려움을 겪는다.
결과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춘 도시지역은 인센티브를, 불리한 지방은 페널티를 받는 악순환에 빠지면서 지역 간 격차가 심화한다.
'상저하고'가 확실하지 않은 경제 상황에도 신속집행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경기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예산을 예치함으로써 얻는 이자수익을 감소시키는 등 자치단체의 재정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평가 기준 또한 큰 문제다."
강정규 대전 동구의회 부의장이 8일 <더팩트>와 신속집행 제도 개선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정예준 기자 |
-한편에서는 신속집행 제도가 지역 경기를 활성화하고 예산의 불용률을 낮춘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유의미한 경기 활성화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신속집행 제도의 경기 활성화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가 빈약하고 최근의 분석 자료들을 살펴보면 유의미한 효과가 없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신속집행을 위해 행정안전부에서 부진 지자체를 현장점검하고 집중 관리하는 등 집행을 독려하고 있다.
각종 규정에 예외를 두면서까지 강조하고 있지만 그에 비해 결과에 대한 분석은 부족한 실정이다.
불용률의 감소 또한 재정 투입의 총량이 늘어남으로써 불용률이 낮아지는 효과가 발생할 수는 있으나 신속집행의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고 평가하기엔 어렵다."
-그렇다면 신속집행 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안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신속집행 제도는 도입 당시 취지와 달리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사업의 본래 목적을 왜곡시키며 단순히 빠른 집행만을 강조하는 신속집행 제도가 아닌 연간 균형적이고 지속가능한 집행을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신속집행 제도를 폐지 및 근본적으로 개선해 공무원들이 저출생, 청년 일자리 등 지역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정책에 집중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을 조성해야 할 때이다."
-마지막 한 말씀 부탁드린다
"지역의 미래와 공무원들의 더 나은 업무 환경 조성을 위해 지방 재정 신속집행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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