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6 소총 4발이 자살일 수 있나…가슴에 총상, 두부가 날아간 시신이 자살이라니
17일 서울 고려대학교 민주광장에서 열린 전두환 정권 강제징집 의문사 피해자 김두황 열사 추모제에서 양창국 김두황열사추모사업회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김동선 기자 |
[더팩트|김동선 기자] 채수근 해병이 사망한 지 11개월이 된 17일 서울 고려대학교 민주광장에서는 1983년 강제징집됐다가 의문사한 고(故) 김두황(고려대 80학번) 씨의 추모제가 열렸다.
김두황열사추모사업회 양창욱 회장(고려대 80학번)은 이날 추모사에서 "채 해병에게는 박정훈 대령이 있지만 강제징집됐다가 의문사한 김두황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군부 정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조작만 있었다"고 분노했다.
41년 전인 1983년 6월 18일, 대한민국 국군은 ‘김두황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저진리 매복 근무지에서 자신의 M16 소총 실탄 4발로 총상을 입고 변사체로 발견됐다’고 했다. 스스로 자기 가슴을 쏜 뒤 자기 머리를 다시 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얘기지만 1983년 그땐 그랬다.
대통령 전두환, 국군 보안사령관 박준병(민정당 국회의원 역임)과 참모장 정도영(성업공사 사장 역임)이 운영하던 국군이 발표한 김두황의 죽음 원인에 대한 의문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김두황은 전두환 독재를 반대하다가 1983년 3월 강제징집된 뒤 녹화공작을 거쳐 의문사했다. 녹화공작은 전두환 정권이 군부독재를 비판하는 대학생들을 군에 강제징집하고 '프락치' 활동을 강요하며 정보를 수집시킨 일이다.
전두환 정권에서 강제징집 뒤 녹화공작을 거쳐 의문사한 피해자는 김두황과 최온순(동국대 81학번), 김용권(서울대 83학번), 이진래(서울대 77학번), 최우혁(서울대 84학번), 한희철(서울대 79학번), 이윤성(성균관대 81학번), 정성희(연세대 81학번), 한영현(한양대 81학번) 등 9명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 김두황은 타살 정황이 가장 뚜렷하다는 분석이다.
전두환 정권에서 강제징집 당한 후 사망한 희생자를 기리는 ‘강제징집희생자 진혼비’./김동선 기자 |
하지만 의문사위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에서 김두황 의문사는 진실을 찾지 못했다. 진화위는 '당시 사단 심사장교와 보안사 심사장교 홍모 씨가 이를 부인하고 있어 사실로 확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사건 당사자의 부인 때문에 진실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상훈 진화위(2기) 상임위원은 이날 추모식에서 "김두황 의문사는 (의문사 중) 가장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다. 죽음의 진실 규명을 통해 국가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면서도 "시간이 많이 지나 진실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끝까지 찾아내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강제징집 의문사 유족은 "훼손될 대로 훼손된 증거를 못 찾는다고 국가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고 지적하고 "2차 진화위가 사실관계를 찾느라 시간을 낭비해 22대 국회에서 3차 진화위를 구성하고 국가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두황과 함께 강제징집을 당하고 끝내 친구를 빼앗긴 양창욱 회장은 강집 당시 받은 고문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매주 수요일마다 진화위 앞에서 진실을 찾아달라는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채수근 해병도, 채 해병 어머니도, 박정훈 대령도 국가에 진실을 요구하고 있다.
전두환이 국가가 아니었듯이, 국가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채수근 해병 사망 사건과 함께 80년대 초 국군 보안사령부의 공작 또한 실체를 밝혀야 한다. 그것이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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