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라의 '구리 인장'과 김우중의 '해외본사'
입력: 2024.06.10 15:48 / 수정: 2024.06.10 16:01

김광원 작가(대구한국일보 편집장)

<나당전쟁 건곤일척의 승부>, 저자 이상훈, 역사산책, 2023년
<나당전쟁 건곤일척의 승부>, 저자 이상훈, 역사산책, 2023년

신라가 당나라를 물리친 요인으로 대여섯 가지를 꼽는다. 적절한 외교 전략, 세작과 정보원을 통한 정확한 정보 수집, 요동을 선제공격한 과감한 전략, 전의 공격에 대비한 효과적인 방어 전략 등. 여러 요인 중에 신라 수뇌부의 유연한 대처 방식이 눈에 띈다.

신라는 석문 전투에 패배해 기세가 기울면서 융통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요동을 선제공격할 때까지만 해도 ‘계획대로’ 잘 나갔지만, 뜻밖의 패배 이후 전략 수정이 불가피했다. 신라는 공세에서 방어적 태도로 전환했다. 그러면서 장군 및 지방 행정 수장에서 일정한 권한을 위임해 자율성을 보장했다.

675년 1월, 신라는 구리 인장을 만들어 각 관청 및 주군의 수장에게 나누어주었다. 긴급한 사태가 닥치면 지체하지 말고 스스로 판단해서 대처하라는 뜻이었다. 권한이 위임된 만큼 신속하고 융통성 있는 조치가 가능했을 것이다.

17세기 동인도회사에 비슷한 제도가 있었다. 영국의 경우 1670년 법령을 통해 동인도회사가 독자적 영토 획득, 영토 내의 사법권, 화폐주조권, 군대 보유와 전쟁의 권리까지 획득했다. 이를테면 하나의 작은 국가였다. 이는 상당한 효력을 발휘했다. 식민지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본국에 의사를 묻기 어려운 일이 많았다. 현장에서 바로 결정하고 처리하는 만큼 효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신라군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움직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기업도 '구리 인장' 혹은 동인도회사식 '자율권'을 보장받은 예가 있다. 바로 김우중(1936-2019)회장의 대우였다. 대우는 수출로 성장한 회사였다. 초기에는 한국에서 제품 만들어 외국에 팔거나 중국이라는 국가에서 물건 사다가 쿠바에 파는 식의 ‘3국 간 무역’을 주로 했으나 성장에 한계를 느꼈다.

김 회장은 글로벌 성장의 중심축이 될 각 전략 국가에 대우 본사와 똑같은 회사를 만들자는 전략을 짰다. 이른바 '해외 본사 제도'였다. 해당 국가에서 한국 본사와 똑같은 일을 하도록 했다. 생산, 마케팅, R&D 모두 해외 본사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했다. 해외 본사 제도는 김우중의 '세계경영'의 핵심 아이디어였다.

참고: 이상훈, <나당전쟁 건곤일척의 승부>, 역사산책, 2023년다마키 도시아키, 노경아 옮김, <물류는 세계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시그마북스

tktf@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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