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개 시편에 화가 김상연의 꽃 그림 어우러져 ‘보고, 읽는’ 시 감상의 새 경지 열어
전남 화순 한천 오지에 은거하며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박노식 시인이 6번째 시집을 펴냈다. 특히 이번 시집은 화가 김상연과의 콜라보 작업인 시화집의 형식을 취해 '보고, 읽는' 시감상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시집 표지 |
[더팩트 ㅣ 광주=박호재 기자] 개개의 꽃에 의미를 새긴 꽃말은 이제 인류의 공통적 상징어가 됐다. 꽃의 자태에 어울리는 삶의 희로애락을 연상케 하는 꽃말은 때로 개개인의 체험에서 우러나는 서정이 이입되며 풍성한 서사를 만들기도 한다.
나이 쉰셋에 늦깎이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10년 동안 시집 5권을 출간하며 창작혼을 불태운 박노식 시인이 꽃말을 주제로 한 여섯 번째 시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을 펴냈다.
특히 박 시인의 이번 시집은 화가 김상연과 함께 시화집 형식으로 구성돼 독자들의 눈길을 고 있다. 라일락꽃에서 칸나에 이르기까지 82종의 꽃들이 지닌 꽃말을 연상어로 시상을 풀어냈다. 또한 개개의 시편에 김상연 화가가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낸 꽃 그림이 어우러져 ‘읽으며 보는’ 시 감상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시의 주제어로 등장한 82종의 꽃들은 박 시인이 지난 10여 년 동안 은거한 전남 화순군 한천 창작실 언저리를 소요하며 눈길을 준 꽃들이었을 걸로 추측된다. 박 시인 또한 시집 말미의 에세이에서 "산과 들과 강둑을 산책 삼아 거닐며 ‘꽃말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꽃말들은 시적 주시의 대상으로 시인 곁에 머물던 것만은 아니다. 이 꽃들은 때로 막막하고 궁핍한 시인의 삶을 견디게 한 동반자였다.
시인은 에세이 형식의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삶속에 다가섰던 꽃들의 존재감이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이렇게 고백한다.
"그해 여름, 나는 치자꽃과 옥잠화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흰’ 것은 내 앓던 병을 치유하고 안정을 되찾아준다. 날이 밝으면 치자꽃 향기를 맡으며 어두운 생각들을 떨쳐내고 밤이 오면 옥잠화 흰 볼을 어루만지며 외로움을 건너갔다."
3일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원숙한 아름다움'이라는 꽃말을 지닌 석류꽃을 관념적으로 해석한 화가 김상연의 작품 앞에 선 박노식 시인./광주=박호재 기자 |
하지만 박 시인은 그의 삶에 안겨진 꽃들과 ‘치유의 관계 맺기’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꽃말을 연상어로 삼아 서정과 관념을 넘나들며 미학적 품격을 유지한다. 이 품격 속에는 또한 깊은 사유와 고뇌를 승화해 내는 희망과 그리움이 담겨 있다.
이번 시집에 발문을 쓴 시인 이상국은 시집 첫머리에 나오는 라일락 꽃말을 주제어로 삼은 ‘젊은 날의 추억’ 중 한 시구에 주목했다.
"저녁이 오고 질투가 오고 결핍이 오고 그리움이 오고…연보랏빛이 바스러지고 거기에 한 소녀가 있다."
시인 이상국은 "젊은 날의 추억은 우리 모두의 라일락이자 불안이자 질투이고 그리움이다. 박노식의 시는 편편마다 정제된 언어와 고도의 압축을 통한 깊이로 때로는 숙연하고 때로는 간절하고 외롭다"고 평했다.
박노식 시인은 2015년 계간지 ‘유심’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5권의 시집을 펴냈다. 지금은 '시인 문병란의 집'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화순 한천 오지의 작업실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시화집 꽃 그림으로 박노식 시인과 협업한 화가 김상연은 전남 화순 출생으로 전남대학교와 중국 미술대학원에서 수학했다. 현대미술을 회화‧설치‧미디어‧판화 등 다채로운 기법을 통해 자신만의 시각으로 표현하는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10여 회 개인전을 열었고, 300여 회 국내외 기획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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