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소에 받혀 사람이 사경 헤매도 소싸움 팡파르 울리는 청도군
입력: 2024.04.24 17:15 / 수정: 2024.04.24 17:30
8일 청도군에서 소싸움 경기를 준비하던 70여 여성이 소에게 들이받혀 중환자실에 치료를 받고 있다. 청도군과 청도공영사업공사 측은 모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지역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청도=김민규 기자
8일 청도군에서 소싸움 경기를 준비하던 70여 여성이 소에게 들이받혀 중환자실에 치료를 받고 있다. 청도군과 청도공영사업공사 측은 모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지역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청도=김민규 기자

[더팩트ㅣ대구=김민규 기자] "우리 책임이 아니다." 경북 청도군과 소싸움경기장을 관리하는 청도공영사업공사의 공통된 입장이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지만 책임지는 곳이 없다. 한 공무원은 되레 "규정이 있는가?"라고 당당하게 맞받아쳤다. 경찰은 관리감독 부재라는 지적에 "가족의 고소가 있어야 관련 사안을 조사를 할 수 있다"는 답만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 8일 청도군 소싸움경기장에서 70대 여성이 소에게 들이받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지금은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 2주 정도 지났지만 공영사업공사 사장도, 청도군수도 까맣게 소식을 모르고 있을 것 같다. 만약 알았더라면 직원 한 명쯤 중환자실로 보내 피해자와 가족을 위로했을 테니 말이다. 지금과 같은 입장이라면 알았더라도 아마 거기서 끝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당초 해당 사건은 공공연한 비밀에다 '가벼운 부상(경상)'으로 알려졌었다. 가벼운 부상이야 글자 그대로 '가볍게' 치료하면 그만이다. 누구 책임이냐, 아니냐를 따질 필요도 없다. 하지만 정말 이상한 점은 이런 일련의 과정이 왜 비밀이 부쳐졌냐는 것이다. 책임질 필요 없는 가벼운 부상인데.

다친 환자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 지금, 청도군의 시간은 소싸움 경기 개막식을 향해 흐른다. 개막식에서는 청도공영사업공사 사장이 마이크를 잡고 올해 포부를 밝힐 것이고, 청도군수는 축사를 할 것이다. 책임질 것 없는 경미한 사고 때문에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는 없기에 어쩌면 당연한 시간의 흐름이다.

청도는 한국의 스페인 안달루시아라고 할 수 있다. 동물 학대의 세계적 여론에 떠밀려 본고장에서도 투우가 점차 자리를 잃어가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청도는 소가 죽어가는 고장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소싸움을 반대하는 단체들이 매년 ‘소가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지만 청도군은 멀쩡한 소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싸우게 만드는 데 대한 입장이 따로 없다. 볼거리 제공에 관광 수익까지 달콤함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소가 아니라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소가 죽어갈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싸움소를 훈련시키는 아주머니'는 소가 아니라 사람이다.

청도군이나 청도공영사업공사 관계자들은 본인의 가족이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도 이런 모습으로 일관할지 생각하면 우울하기까지 하다. 관심이 없으면 소나 사람이나 매한가지란 걸 청도에서 배웠다. 장 폴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란 말이 이렇게 맞아떨어지는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얼마 안 있어 축제를 알리는 팡파르가 울리고, 관객들은 다친 싸움소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할 것이다. 소가 죽어갈 때 누군가는 환호하고 또 누군가는 청도 관광의 꽃인 소싸움의 열정을 꺾을 수는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군민 한 사람이 소에 받혀 죽어간다는 소식은 지금처럼 여전히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tktf@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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