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장인화 회장 체제 출범과 더불어 지역 협력업체 상생이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지난해 11월 발생한 포항제철소 협력업체 직원 집단 식중독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때 협력업체 직원 170명(입원 56명)이 병원 신세를 져야 했으며 이 중 1명이 숨지기까지 했다. 사진은 식중독에 걸린 직원들이 문제의 급식을 먹던 장소. 한눈에 봐도 열악다./독자 제공 |
포스코 장인화 회장 체제가 지난달 22일 공식 출범했다. 현장 경영을 강조한 장 회장은 취임 첫 일정으로 포철 2열연공장을 찾았다. 하지만 장 회장에게 주어진 과제는 내부 경영뿐만 아니라 포스코그룹과 포항지역 각계 사이에 벌어진 마찰을 해소해야 하는 숙제도 적지 않다. 특히 반드시 청산해야 할 포스코의 협력업체 관련 문화는 수많은 중소 협력업체의 생사가 달려있다는 점에서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더팩트>는 새롭게 체제에서 비상을 준비하는 국민기업 포스코의 미래를 위해 협력업체를 둘러싼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을 들어보고 거기에서 교훈을 찾고자 한다. [편집자주]
[더팩트ㅣ포항=김채은 기자] 오는 6월 1일이면 포스코 최정우 전 회장의 지시로 포항제철소가 13개 정비 관련 외주사를 정리한 지 1년이 된다.
포스코는 지난해 5월 31일 포항제철소 정비 부문 13개 협력 외주사와의 정비 계약을 해지하고 대신 6월 1일부터 새롭게 출범한 포스코 정비 관련 자회사 3곳에 관련 업무를 모두 맡겼다.
당시 계약이 해지된 외주사들은 포스코와 수십 년간 동반성장,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는데 일방적인 계약 해지에 대해 서운함을 토로하면서 절차와 방법에 문제가 많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그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외주사 정리 계획을 발표할 당시 포스코는 포항제철소뿐만 아니라 광양제철소도 12개 정비업체를 3개 자회사로 출범시켰다. 포스코홀딩스의 서울 본사 이전 반대에 따른 보복은 아니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지역의 관련 업계에서는 급하게 진행된 당시 상황에 비춰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앞서 포스코는 2017년 9월 외주사 노사 대표들로 구성된 '포스코 사내하청 상생협의회'로부터 정부 권장 및 사회 통념 수준의 외주사 직원 임금 수준을 위한 외주비 인상 요구를 받은 적 있다.
당시 포스코는 파격적으로 두 자릿수 임금 인상을 위해 1000억 원 수준의 외주비를 증액하는 등 2017년부터 3년간 외주비를 점진적으로 늘려 외주사 직원들의 임금 인상에 반영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 일은 포스코의 지역업체와 협력 및 상생의 대표적 사례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정반대의 방침을 통보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포스코의 모습에 외주사뿐만 아니라 포항 상공계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포스코 측은 지난해 외주사 정리 발표를 하면서 협력사 직원들을 신생 자회사에 우선 채용한다는 방침이라면서 양질의 지역 일자리 확대는 물론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외주사들은 "사전에 통보도 없이 2개월 안에 회사를 정리하라는 게 상생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외주사들은 또한 "포스코 측이 자회사 설립 관련 T/F팀을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협력사와 아무런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정리 통보만 한 것은 협력사를 해체시킨 것과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특히 외주사 대표들은 "숙련된 직원들이 다 떠난 회사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직원들을 새롭게 채용해 시작해 궤도에 오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인 걸릴 게 뻔하다는 점에서 기존 협력사들은 죽으라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4월 현재 포스코의 가장 큰 변화는 장인화 신임 회장 체제가 출범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미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든 기존 협력 외주사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폐업의 수순을 밟았으며 자회사로 흡수된 외주사 인력들이 정비 관련 업무를 맡으면서 지역 협력과 상생의 의미는 퇴색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포항제철소와 13개 외주사가 공존할 때는 외형적으로 갑과 을의 관계이긴 했지만 정비 관련 문제가 발생하면 별 이견없이 최대한 협력을 해 오던 게 관례였다"며 "하지만 지금은 정비 관련 업무를 자회사가 맡는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문제 발생 시 경영 수익을 우선 고려해 외부 발주가 사실상 거의 전무한 상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런 상황에서 주 52시간 근로조건에 맞춰 근무가 이뤄지면서 안전에 대한 우려 역시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지역 내 관련 업계에서는 포스코가 정비 전문 자회사 설립을 추진할 당시 밝힌 설비 경쟁력, 전문성 확보, 안전성 강화가 과연 이뤄지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잊힐 만 하면 발생하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정비 자회사 안전 인프라 투자 확대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 지도 챙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협력 외주사들이 오랜 시간 지역에 기여해온 것들이 포스코 자회사 출범 이후 달라진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장인화 회장 취임으로 새롭게 출발한 포스코가 지역과 제대로 상생 협력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을 통해 여러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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