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연기 인생 지정남, 오월 1인극 환생굿 '기억하기 위한 굿판'
입력: 2024.04.08 08:44 / 수정: 2024.04.08 08:44

4월 광주 민들레 극장, 5월 서울 모노페스티벌 삼일로 창고극장 공연
'환생' 통해 '있어도 없는 존재'에 대한 기억투쟁


광주에서 31년 연기를 해 온 지정남 배우가 오월 1인극 환생굿을 통해 5⋅18 민중항쟁 이후 기억속에서 잊혀진 사람들을 불러내는 공연을 펼친다./ 광주 = 나윤상 기자
광주에서 31년 연기를 해 온 지정남 배우가 '오월 1인극 환생굿'을 통해 5⋅18 민중항쟁 이후 기억속에서 잊혀진 사람들을 불러내는 공연을 펼친다./ 광주 = 나윤상 기자

[더팩트 l 광주=나윤상 기자] "5⋅18은 군부독재가 우리의 일상을 파괴시키고 피해자들을 ‘있어도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 사건이에요."

지난 31년 동안 광주지역에서 꾸준히 공연 활동을 해 온 지정남 배우(52)가 오는 4월 26일과 27일 양일간 ‘오월 1인극 환생굿’을 민들레 소극장에 올린다.

지역민에게 그녀는 광주 KBS ‘남도 지오그래피’와 광주 MBC ‘얼씨구 학당’에서 보여준 푸근하고 친근한 전라도 사투리의 정 많고 인심 푸짐한 이웃 아줌마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인지 정작 그녀가 1993년 놀이패 ‘신명’으로 데뷔하여 지역 공연계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들이 많지 않다.

지 배우는 놀이패 ‘신명’에 대해 "5⋅18이 일어난 80년 당시 문화협회로 활동했던 선배들이 2년 후인 1982년에 만들어진 놀이패"라면서 "5⋅18을 알려야 한다 해서 전국 대학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한 극단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매년 5월이 되면 공연을 하는데 그동안 ‘일어서는 사람들’, ‘언젠가 봄날에’, ‘식사합시다’ 등 여러 작품을 했는데 광주지역 배우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숙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5⋅18이후 ‘있어도 없는 존재’가 된 사람들

‘오월 1인극 환생굿’은 지정남 배우가 극본과 연극, 출연을 혼자서 다 하는 그야말로 ‘1인극’이다.

지정남의 1인극은 놀이패 신명에서 하는 공연과 따로 그녀가 직접 전하고 싶은 5⋅18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어 자신의 사재를 털어 기획한 공연이다.

그녀는 "5⋅18 40주년이 지나면서 여성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다. 여성들도 광주 민중항쟁 당시 시민군들에게 주먹밥과 물을 주었던 분들이지만 대부분 이름 없는 사람들로 역사에서 잊혀져 갔다. 이름 없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2022년에 ‘미화(美花)’라는 작품으로 이것 역시 1인극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지 배우도 여성 배우다보니 그런 것일까?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지점이 역사에서 잊힌 사람들, 정확히는 여성들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극본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보니 황금동 아방궁 진(가명)이라는 여성을 알게 됐다. 당시 황금동은 유흥업소가 많은 지역이었는데 이분들이 5⋅18이 일어나자 시민군에게 치약, 물, 음식 등을 아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심지어 피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헌혈도 많이 해주고 그랬는데 이후 이분들 단 한 명도 본인을 드러내지 못했다. 술집 여자라는 굴레 때문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이 여성들이 역사에서 지워진 ‘있어도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환생굿은 이런 부분을 기억해야 한다고 하는 극이다"고 소개했다.

환생굿의 주인공 고만자가 펼치는 환생굿은 전라도 씻김굿이다. 씻김굿은 망자를 극락왕생으로 인도하는 장례절차로 이번 공연에는 화순 향토문화유산 제50호 능주 씻김굿으로 공연을 펼친다. 지정남 배우는 이를 위해 1년여 동안 능주에서 굿을 배웠다./ 지정남
환생굿의 주인공 고만자가 펼치는 환생굿은 전라도 씻김굿이다. 씻김굿은 망자를 극락왕생으로 인도하는 장례절차로 이번 공연에는 화순 향토문화유산 제50호 능주 씻김굿으로 공연을 펼친다. 지정남 배우는 이를 위해 1년여 동안 능주에서 굿을 배웠다./ 지정남

◇ 화순 능주 ‘씻김굿’으로 풀어낸 환생굿

그녀의 이번 1인극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굿’판이다. 그것도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환생’을 위한 ‘굿’이다.

그런데 형식은 전라도 ‘씻김굿’이다. ‘씻김굿’은 망자를 극락왕생으로 인도하는 굿이다. 망자를 저승길로 인도하는 굿이 반대로 저승에서 이승으로 불러와 환생시킬 수 있는 굿이 되었다.

지 배우는 환생굿을 위해 1년여를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50호 능주 ‘씻김굿’을 배웠다고 했다.

그녀는 화순 씻김굿에 대해 "전라도 씻김굿이라고 하면 ‘진도 씻김굿’이 유명한데 화순 씻김굿은 진도굿에 비해 화려하지 않고 오밀조밀한 맛이 있다"고 설명하며 "어떤 분들은 굿을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장례절차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지정남의 오월 1인극 환생굿 광주 공연은 민들레 소극장에서 4월 26일과 27일 공연하고, 서울 모노 페스티벌 참가자격으로 5월 2일부터 5일까지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공연된다/SNS
지정남의 오월 1인극 환생굿 광주 공연은 민들레 소극장에서 4월 26일과 27일 공연하고, 서울 모노 페스티벌 참가자격으로 5월 2일부터 5일까지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공연된다/SNS

◇ 기억 투쟁으로 살려낸 ‘환생’

그녀의 1인극 환생굿이 5⋅18 이야기라고 우울한 이야기라고 단정하면 안 된다. 시놉시스를 읽어보면 극 초반 상황설정이 코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극의 처음은 굿을 배운 초짜 무당 고만자의 고민으로 시작한다. 고만자의 고민은 자신이 없는 굿소리 때문에 영업이 안 된다는 것. 고민 끝에 고만자는 기상천외한 영업에 나서는데 그것이 환생굿이다. 드디어 첫 고객이 굿을 의뢰하고 망자를 부르는데 까지는 성공한다. 하지만 웬일인지 망자는 환생을 거부한다.

죽어서 살아온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다 죽었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지 배우가 ‘환생굿’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잊지 않고 기억투쟁을 하는 것을 ‘환생’이라고 단언했다.

그녀는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5⋅18 등을 이야기하면서 언제나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바로 이런 생각들이 환생이다"고 말하며 "잊지 않기 위해 만든 굿판인 만큼 많은 분들이 보러 와 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오월 1인극 환생굿’은 광주에서는 4월 민들레 소극장에서 3회 공연을 갖고 5월 2일부터 5일까지 나흘간 서울 모노 페스티벌 참가작으로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공연된다.

광주공연 티켓 값은 일반 2만 원, 국가유공자, 청소년, 장애인, 예술인은 1만 원이다. 네이버와 전화로 예매할 수 있고 현장 판매도 실시한다.

kncfe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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