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처럼 즐기는 교육 영상으로 재미와 교훈 동시에
오성희 경위, "아이들의 공감 끌어낼 수 있는 영상 계속 제작할 터
오성희 대구 강북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이 학생들을 상대로 학교폭력 줄이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대구=김민규 기자 |
[더팩트ㅣ대구=김민규 기자] 대구 강북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오성희(50)경위는 학생들 사이에서 ‘오 감독’으로 통한다. 학생들을 위한 교육 영상을 비롯해 이와 관련된 UCC(User Created Contents)를 50편 넘게 제작한 까닭이다.
오 경위가 영상 제작에 뛰어든 것은 경찰서를 찾은 아이들이 시청각 자료를 활용한 교육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본 이후였다. 2013년 무렵 학교전담경찰관으로 발령받아 교육에 참여했는데, 아이들 대부분이 강의를 듣는 둥 마는 둥했다.
교육시간에는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기 일쑤였다. 그러다 문득 자녀와 함께 방문했던 가상현실 VR(Virtual Reality) 체험장을 떠올렸다. 시청각 자료를 VR에 접목시킨 영상을 만들어서 교육에 적용시키면 아이들이 크게 흥미를 느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동안 독학으로 영상 제작 공부
그때까지만 해도 오 경위는 영상 제작에 문외한이었다. 영상을 제작하기로 결심한 뒤부터 도서관을 오가며 독학으로 영상 제작을 공부했다. 관련 내용이 담겨 있는 책과 유튜브를 파고들었다.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2년을 파고들자 ‘감’이 왔다.
오 경위는 "걸음마부터 시작해 지금은 마라톤 선수급으로 발전했다"면서 "동료들로부터 외부에서 제작비 내고 만들어온 거 아니냐는 말도 종종 듣는다"고 말했다.
가장 호응이 컸던 작품은 ‘학교폭력 가상 체험 영상’이다. 교육 이수자가 VR헤드셋을 착용하고 가상 현실 속에서 학교폭력 피해자 체험을 하게 했다. 가상 현실 속 상황은 집단 따돌림과 폭행 등 실제 사례에서 가져온 에피소드로 구성했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피해자의 위치가 되어본 가해 학생들은 "피해자 위치에 서 보니 너무 힘들고 아픈 게 느껴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더 이상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선서를 하는 학생도 있었다.
강북경찰서를 찾는 학생들에게 가장 호응이 큰 것은 '학교폭력 가상 체험 영상'이다. 교육 이수자가 VR헤드셋을 착용하고 가상 현실 속에서 학교폭력 피해자 체험을 하는데 대부분 오 경위가 제작한 영상으로 교육이 진행된다./대구=김민규 기자 |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일탈을 멈추던 장병들
오 경위는 2005년 서른한살에 늦깎이로 경찰에 입문하기 전 학사장교로 군에서 복무했다.
정훈장교 업무를 하면서 일탈에 빠진 청춘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군복과 경찰복으로 복장은 달랐지만 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의 여파가 생생하던 즈음이었고, 가정적인 문제로 힘들어하는 장병들이 많았다. 탈영을 하기도 했고, 심한 경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장병도 있었다.
그는 소대원들에게 친구처럼, 형님처럼 다가가 개인 상담을 자주 했다. 부대에서도 그의 친화력과 교화 능력을 높이 샀다. 한번은 외박 후 부대에 복귀하지 않았다고 전화를 걸어온 장병을 설득해서 부대로 복귀시키기도 했다. 그의 집무실 책상 한켠에는 늘 병사들이 보낸 편지가 쌓여 있었다. 오 경위가 사비를 털어 도와준 것을 잊지 않고 있다가 제대 후 취직을 한 뒤에 빚을 갚겠다며 찾아온 경우도 있었다.
"돌발 행동이 도와달라는 외침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단 사실도 깨달았죠. 그곳이 군대든 학교든 누군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고 또 절망으로 기우는 마음에 힘을 불어넣어줘야 합니다."
오 경위는 직업군인 시절 정훈장교 업무를 하면서 일탈에 빠진 소대원들에게 정신적으로 큰 지렛대같은 역할을 했다./대구=김민규 기자 |
영상 제작에 필요한 비용 대부분 사비로 충당
군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한 가지가 있다.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사비로 충당하는 것이다. 영상 제작에 필요한 비용을 대부분 개인 카드로 해결하고 있다. 관련 책자와 프로그램을 구입하려고 외식비를 줄일 정도다.
오 경위는 "학생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변화하는 모습을 확인한 이상 ‘일탈’을 멈출 수 없다"면서 "제가 있는 곳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드는 일이라면 이 정도 희생은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오 경위는 얼마 전부터 교육용 메타버스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프로그램이 완성되면 여러 명이 동시에 접속해 가상의 도시에서 다양한 게임과 교육을 체험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청소년 교육은 물론 부모교육과 경찰관 직무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그는 "기성세대는 ‘요즘 애들 왜 이래’하고 말하는데, 요즘 애들은 요즘 애들만의 고민과 어려운 상황이 있다"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영상을 계속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오성희 경위는 "열정과 관심을 가지면 학교폭력이 줄어드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대구=김민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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