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반란' 맞선 故 정선엽 병장, 44년 만에 조선대 명예졸업장
입력: 2024.02.16 15:32 / 수정: 2024.02.16 15:51

영화 '서울의 봄' 국방부 벙커 경계 근무 중 총격 사망 인물
2022년 '순직'에서' '전사'로 정정


16일 조선대 서석홀에서 고 정선엽 동문 조선대학교 명예졸업증서 수여식이 열렸다. 김춘성 조선대학교 총장이 정 동문의 동생 정규상 씨에게 명예졸업증서를 주고 있다./ 광주 = 나윤상 기자
16일 조선대 서석홀에서 고 정선엽 동문 조선대학교 명예졸업증서 수여식이 열렸다. 김춘성 조선대학교 총장이 정 동문의 동생 정규상 씨에게 명예졸업증서를 주고 있다./ 광주 = 나윤상 기자

[더팩트 l 광주=나윤상 기자] "40년이 지난 오늘 조선대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수행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44년의 세월만큼이나 고(故) 정선엽 병장의 동생 정규상 씨의 발언은 무덤덤할 정도로 차분했다.

16일 조선대학교 서석홀에서 12⋅12 군사 반란 당시 육군본부를 지키다 반란군의 총탄을 맞고 숨진 고(故) 정선엽 병장의 명예졸업상 수여식이 열렸다.

조선대학교 김이수 이사장, 김춘성 총장 등 학교 관계자와 학생 200여 명이 모인 강당에는 44년 만에 졸업장을 받는 이를 향한 환호 대신 숙연함으로 가득 찼다.

이날 수여식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축전을 통해 "국가는 43년 만에 12⋅12 군사 반란으로 목숨을 잃었던 고 정선엽 병장의 죽음을 전사로 바로잡았다"며 "정 병장의 전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함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 병장의 죽음을 기억하겠다"고 덧붙였다.

영화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조선대에서 서울의 봄을 촬영한 인연이 있는데 나중에서야 정선엽 병장의 모교임을 알았다"며 "군인의 사명을 다하다 안타깝게 사망한 정 병장과 유족분들에게 명예졸업장이 큰 위로가 되기를 바라겠다"고 전했다.

조선대 본관에 설치된 영화 서울의 봄 촬영장소 안내판과 고 정선엽 병장 사진. 조선대학교 본관 복도는 서울의 봄 초반부 이태신 장군과 전두광 장군이 만나 갈등을 표출하는 장면을 찍은 장소이다/ 광주 = 나윤상 기자
조선대 본관에 설치된 영화 '서울의 봄' 촬영장소 안내판과 고 정선엽 병장 사진. 조선대학교 본관 복도는 서울의 봄 초반부 이태신 장군과 전두광 장군이 만나 갈등을 표출하는 장면을 찍은 장소이다/ 광주 = 나윤상 기자

정선엽 병장의 이력 및 경과를 소개하러 나온 송기춘 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은 연단에 올라서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송 위원장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시절 다룬 사건이 2000여 건이 넘는데 그분들의 죽음을 떠올리면 항상 마음이 편치 않는다"면서 그동안의 경과보고를 했다.

경과보고에 따르면 군은 정선엽 병장의 죽음을 1979년 12월 13일 1시 40분경 국방부 B2 벙커 경계 근무 중 계엄군과의 오인에 의한 총기사고로 사망했다고 기록했다.

12⋅12 군사 반란 당시 국방부에 진입한 공수여단의 작전 일지에서는 지역대의 벙커로 돌격을 지시한 후 벙커 출입구 헌병 2명 중 1명을 체포하고 1명은 도주하여 사살했다고 기록됐다.

송 위원장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가 진정 제1324호 사건으로 정 병장의 사망사건을 조사해 드러난 사실은 위 기록 모두가 조작이었다"면서 그날의 진실을 밝혔다.

진상규명위가 밝힌 그날의 진실은 12⋅12 군사 반란으로 전군에 진돗개 하나 경보가 발령됨에 따라 국방부 헌병관에서도 경계 병력을 추가했고 이 과정에서 정 병장은 B2 벙커가 아닌 청사 내부에 있는 보안실로 배치됐다.

하지만 정 병장이 B2 벙커가 중요한 데 신병을 배치하기는 적절하지 않다며 본인이 벙커근무를 자원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국방부 B2벙커 촬영장소. 촬영장소는 조선대학교 본관 건물 뒷편 대피소이고 현재 영화 세트는 다 치워지고 창고역할을 하고 있다. 정선엽 병장은 국방부 B2벙커에서 총상으로 숨졌다/ 광주 = 나윤상 기자
영화 서울의 봄에서 국방부 B2벙커 촬영장소. 촬영장소는 조선대학교 본관 건물 뒷편 대피소이고 현재 영화 세트는 다 치워지고 창고역할을 하고 있다. 정선엽 병장은 국방부 B2벙커에서 총상으로 숨졌다/ 광주 = 나윤상 기자

이후 벙커에 공수부대원들이 헌병대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했고 많은 병사들이 투항했는데 정 병장은 총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소총과 권총 근접 사격으로 전사했다.

송 위원장은 "정 병장은 전두환 일당이 벌인 12⋅12 군사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전투 과정에서 돌아가신 것"이라면서 "힘이 지배하고 원칙이 쉽게 버려지는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햇살과 같은 희망을 준 사람"이라고 추도했다.

학생 대표로 나선 안형준 조선대 총학생회장은 "정선엽 선배님의 명예졸업장 수여가 너무 늦어서 죄송하다"며 "영화 '서울의 봄'은 불의가 성공한 것으로 끝났지만 불의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12⋅12 군사 반란은 불의가 승리했던 역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불의에 맞선 선배님의 의로운 행동이 잊히지 않게 후배들이 알리겠다"고 추모했다.

고 정선엽 병장은 1959년 전남 영암 출생으로 광주 동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7년 조선대 전기학과 입학 후 1학년 2학기 휴학했다. 같은 해 육군에 입대 국방부 헌병단으로 전입했다. 제대 3달을 앞두고 일어난 12⋅12 반란군과 맞서 국방부 B2 벙커를 지키다 공수부대원들과 교전 중 사망했다.

kncfe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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