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경로당에 아이들이 왜 모였나?
입력: 2023.11.22 17:17 / 수정: 2023.11.24 14:17

부산교육청, '1학급 1경로당' "1-3세대간 소통한 시간"

22일 주감중학교 3학년 학생들과 사하구에 있는 한 경로당 어르신들이 함께 체조시간을 갖고 있다./부산=강보금 기자
22일 주감중학교 3학년 학생들과 사하구에 있는 한 경로당 어르신들이 함께 체조시간을 갖고 있다./부산=강보금 기자

[더팩트ㅣ부산=조탁만, 김신은, 강보금 기자] "오늘 나와 짝꿍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고사리 같은 학생의 손을 따뜻하게 감쌌다. 할머니는 붉어진 두 눈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22일 오전 9시 30분 부산 사하구에 있는 한 아파트 내 경로당. 어르신들과 함께 부산 주감중학교 3학년 4반 22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다. 부산교육청에서 시행하는 '1학급 1경로당'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만남이다.

어르신 대표로 진행을 맡은 이재남 씨는 학생들이 경로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함박 웃음을 지어 보이며 손님 맞이에 나섰다.

어르신들은 오랜만에 경로당을 찾은 어린 손님들이 마냥 반가웠는지 얼굴 위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날 학생들과 어르신들은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몸풀기 체조, 이야기 마당, 놀이 시간 등을 가졌다.

특히 이야기 마당 시간 '이야기 할머니'로 나선 김응자(83) 씨는 자신의 학창시절을 주제로 한 이야기 보따리를 펼쳤다.

김 씨는 "6.25 전쟁이 발생했을 때 저는 국민학생이었다. 이후 피난생활을 할 때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심지어 화장실도 제대로 없어서 참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실감나는 전쟁 이야기에 눈을 반짝였다.

이어 김 씨는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넘쳐난다. 힘든 환경 속에서도 성실히 살아 지금의 나라를 만든 것이 여러분 눈 앞에 있는 어르신들이다. 여러분에게 우등생이 되라고 조언하고 싶지 않다. 대신 어른을 공경하는 모범생으로 자라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학생들은 김 씨의 말이 끝나자 박수갈채를 보냈다.

김응자 씨가 자신의 학창시절을 주제로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부산=강보금 기자
김응자 씨가 자신의 학창시절을 주제로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부산=강보금 기자

이어진 놀이 시간에는 어르신 한 명과 학생 두 명이 3인 1조로 모여 컵 쌓기, 투호, 한궁, 탁구공 굴리기 등을 함께 했다.

한 어르신은 "역시 학생들이라 오늘 처음 해보는 놀이인데도 우리보다 잘 한다"며 학생의 어깨를 토닥였다.

어느새 마지막 순서를 앞두자 어르신들과 학생들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양재현 학생은 "오늘 경로당이라는 곳에 처음 와 봤는데 어르신들과 즐거운 놀이를 함께 해서 좋은 경험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민하 학생은 "할머니들께서 우리를 위해 재밌는 시간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또 놀러 오고 싶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박유미 학생은 "오늘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옛날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서 새로운 것을 배웠다"고 전했다.

이재남 씨는 "오늘 함께한 60분이 너무 빠르게 흘렀다. 웃는게 건강의 비결이라는데 학생들 덕분에 더 많이 웃었다"고 행사를 마무리했다. 주감중학교 인성교육 담당 김영아 선생님은 "오늘 프로그램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생각만 하다 학생과 어르신 모두 즐기는 모습을 보니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실감됐다. 앞으로도 이런 프로그램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22일 부산 수영구 덕수정 경로당에 체험학습을 나온 민락초등학교 5학년 3반 학생들이 이곳 어르신과 바둑을 즐기고 있다. /부산=김신은 기자
22일 부산 수영구 덕수정 경로당에 체험학습을 나온 민락초등학교 5학년 3반 학생들이 이곳 어르신과 바둑을 즐기고 있다. /부산=김신은 기자

또 민락초등학교 학생들도 경로당 체험학습을 진행했다.

민락초등학교 5학년 3반 학생 24명은 이날 오전 학교 대신 부산 수영구의 한 아파트 경로당인 ‘덕수정’에 도착했다.

학생들은 어르신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눈 뒤 이곳의 즐길거리인 바둑과, 터링, 서예를 배워봤다.

서툰 학생들에게는 어르신들의 일대일 개인 지도가 더해지기도 했다.

체험학습에 참여한 한 학생은 "터링이라는 스포츠를 이곳에서 처음 알게 됐는데, 덕수정 할아버지가 요령을 잘 알려주셔서 재밌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저희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가 생각난다"면서 "오랜만에 하는 야외 체험학습에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해서 좋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과 어르신들은 함께 버스를 타고 기장군에 위치한 국립부산과학관으로 향했다.

이곳의 다양한 전시와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은 과학기술에 꿈과 희망을 갖고, 어르신들은 최신 과학기술을 새롭게 접했다.

신인성 덕수정경로당회장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에게 새로운 인간상을 직간접적으로 가르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부산교육청은 인성교육을 활성화하고 전인격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오는 12월 말까지 관내 구.군별 경로당에서 초.중학생 1000여명을 대상으로 '1학급 1경로당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부산교육청 박장욱 장학사는 "'1학급 1경로당' 프로그램의 가장 큰 목적은 세대를 통합하고 서로의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다"면서 "요즘 조부모와 함께 사는 가정이 거의 없다보니 서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어른의 경험을 배우고 세대간의 문화를 이어주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며 "올해 12월에 담당자들과 운영 과정을 살펴 앞으로 프로그램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22일 부산 수영구 덕수정 경로당에 체험학습을 나온 민락초등학교 5학년 3반 학생들이 이곳 어르신과 터링을 즐기고 있다. /부산=김신은 기자
22일 부산 수영구 덕수정 경로당에 체험학습을 나온 민락초등학교 5학년 3반 학생들이 이곳 어르신과 터링을 즐기고 있다. /부산=김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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