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여주는 광주’가 곧 5‧18 정신
입력: 2023.11.17 15:54 / 수정: 2023.11.17 15:54

자존심 지키는 최소의 돈 1천원~2천원 받는 복지형 식당들 잇따라 문열어

김이강 광주 서구청장이 16일 첫문을 연 천원국시 3호점(화정동) 개소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서구청
김이강 광주 서구청장이 16일 첫문을 연 천원국시 3호점(화정동) 개소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서구청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이 도로를 통제하며 광주를 고립시키자, 시민 시위대들은 당장 먹을 게 떨어져 허기에 시달려야 했다. 이 소식을 접한 금남로(동구) 주변 재래 시장 상인을 비롯해 주부들이 나섰다.

저마다 집에 있는 쌀을 들고 나왔고 골목에 커다란 솥을 걸고 밥을 짓기 시작했다. 흰 쌀밥에 소금 간, 손으로 꾹꾹 눌러 만든 주먹밥을 시위대에 나눠줬다.

주먹밥을 통한 나눔과 연대가 이뤄진 것이다. 그 주먹밥 나누기는 5‧18 광주의 또 다른 상징, 이른바 ‘5월 대동정신’의 모체가 되었다. 광주의 5‧18이 본래의 정신을 망각하고 왜곡될 때마다 시민들은 "주먹밥 대동정신으로 돌아가라‘ 고 촉구하곤 한다.

최근 1,000원~2,000원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복지형 밥집이 잇따라 문을 열면서 시민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밥 먹여주는 광주’가 곧 5월 정신임을 새삼 돌이키게 해주는 미담이다.

수능일인 16일 광주 서구청이 추진하는 ‘천원국시’가 화정4동(서구)에 세 번 째 매장을 열었다. 3호점은 1‧2호점과 달리 청소년들을 위해 평일 오후와 주말에도 운영된다. 서구는 화정동 일대에 광주청소년수련원,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및 초등학교, 지역아동센터 등 청소년 시설이 밀집해 있는 점을 감안해 3호점의 경우 기본 영업시간인 평일 오전 11시~오후2시 외에 평일 오후 3시~5시, 토요일 오전 11시~오후 2시까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국수를 판매하기로 했다.

국수 가격은 65세 이상 주민과 장애인, 18세 이하 청소년들은 한 그릇당 1000원, 일반인은 3000원이다. 김이강 서구청장은 "천원국시가 나눔의 가치를 확산하는 ‘함께 서구’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광주 남구 양림동에 있는 젊은이 따순 밥집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는 청년들./페이스북
광주 남구 양림동에 있는 '젊은이 따순 밥집'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는 청년들./페이스북

지난 11월 1일에는 광주 양림동의 ‘젊은이 따순 밥집’(광주 양림동 17-11, 이하 따순 밥집)이 문을 열어 청년들의 식비 부담을 줄여 줄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따순 밥집’은 양림동 지역의 공동체 회복과 도시재생의 목적으로 지자체에서 건물을 2년간 무상 제공하고 양림동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과 까리따스 수녀회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청년들을 위한 식당인 만큼 한 끼 식사가 2000원에 제공된다. 따순 밥집이 위치한 곳은 이곳을 필요로 하는 청년들의 접근성이 매우 좋다. 교내 식당이 없는 기독간호대 학생들, 전남대학교병원에서 일하는 청년, 양림동 일대의 청년 아르바이트생들도 따순 밥집의 단골손님이다.

운영 책임자인 글로리아 수녀는 "지금 이 활동이 청년들을 위한 사업의 작은 불씨인 것 같다. 종교, 직업 등 모든 것을 초월해 여기서 식사하는 한 분이라도 세상은 따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의미를 밝혔다.

매일 평균 50여명의 손님이 들리는 이곳에 지역 주민들과 청년들의 자발적인 봉사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김치 한 포기, 귤 한 박스 등 작은 후원의 손길들도 잇따르고 있다.

해뜨는 식당(광주 동구 대인시장)은 2011년 문을 열어 2대째로 이어오며 천원밥상을 차려내고 있다./블로그
해뜨는 식당(광주 동구 대인시장)은 2011년 문을 열어 2대째로 이어오며 천원밥상을 차려내고 있다./블로그

광주 대인시장(동구)에 있는 '해뜨는 식당‘은 천 원 지폐 한 장으로 백반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운영하는 해뜨는 식당은 '천 원 백반'으로 전국에 알려진 맛집이기도 하다.

2011년 처음 천원 식당을 연 고 김 선자 할머니는 당시 방송에 출연해 "천 원 가지면 저렇게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게 너무 좋다. 제2 인생을 사는 기분이다"고 즐거워했다.

가지 수는 적지만 맛은 뛰어나다. 매일 필수로 제공되는 시래기 된장국은 그 맛이 소문이나 해뜨는 식당의 브랜드가 됐다. 천원이라는 밥값이 미안할 정도로 일주일에 2번은 고기반찬이 나온다.

어려운 이웃의 버팀목이 돼온 식당은 김선자 할머니가 암으로 별세하자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지난 2015년부터 막내딸 김윤경씨가 운영하고 있다. 이후에도 식당 운영이 위기에 처한 적도 있지만 그 뜻에 공감한 이웃들의 도움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제2대 운영자인 김씨가 다리를 크게 다쳐 폐업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역사회가 나서 십시일반 돕기 시작했다. 대인시장 상인들은 김씨의 선행이 멈춰선 안 된다는 마음으로 가게 운영을 돕고 있다. 취지에 공감한 시민들도 자원봉사에 나서고 후원품을 보낸다.

​forthetru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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