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도 역사길 수놓은 '핫 프로젝트'… 영산강국제설치미술제 '화제'
입력: 2023.11.06 16:46 / 수정: 2023.11.06 16:46

4개국 15명 참여작가, '흐름, 열 개의 탄생‘ 주제 역사‧문화재 거점별 설치작품 전시

근대 산업유산인 나주 정미소 내부에 설치된 이레네 안톤의 설치미술./나주=나윤상 기자
근대 산업유산인 나주 정미소 내부에 설치된 이레네 안톤의 설치미술./나주=나윤상 기자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천년고도 역사의 길을 잇는 영산강국제설치미술제(이하 YRAF)가 문화예술계의 화제로 떠올랐다. '흐름, 열 개의 탄생‘이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는 YRAF는 지난 10월 20일 개막해 오는 11월 30일까지 관람객을 맞는다.

YRAF는 나주시와 영산강의 유서깊은 장소에 의미적 맥락이 통하는 미술 작품을 점점이 설치, 역사성, 장소성, 공공성, 예술성을 함께 연결하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시키는 아트 프로젝트이다.

입체, 설치, 미디어아트 등 4개국 15명의 작가들이 YRAF에 참여했으며, 관객들은 다양한 장르의 동시대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 작품들이 설치된 역사적인 장소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체험의 기회를 갖는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나주시는 "YRAF가 단순히 아트프로젝트에 그치지 않고 나주가 추구하는 품격 있는 예술의 도시, 문화콘텐츠를 통한 재생의 도시, 활력 넘치는 축제의 도시를 조성하는 일에 이바지하리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취지를 밝혔다.

조선시대 전국 최개 규모 객사로 기록된 나주 금성관 마당에 설치된 강용면의 온고지신./나주=나윤상 기자
조선시대 전국 최개 규모 객사로 기록된 나주 금성관 마당에 설치된 강용면의 '온고지신'./나주=나윤상 기자

YRAF는 나주의 역사적‧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공공장소 구 화남산업, 구 나주역사, 나빌레라문화센터, 나주 목사 내아 금학헌, 서성문, 나주 향교, 금성관, 나주정미소, 영산포 등대, 영산나루 등 열 곳에서 열린다. 이 거점들은 조선시대에서 시작해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1970년대에 이르는 오랜 역사를 품고 있다.

강용면, 김경민, 김계현, 김병호, 남지형, 민성홍, 박일정, 엄아롱, 이상용, 이이남, 조은필, 이레네 안톤, 응우옌 코이, 나오코 토사, 하이 뚜 등 15명 작가들이 각각의 거점에서 작품들을 선보인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독일 베를린예술대학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한 백종옥이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문예슬과 최보경이 큐레이터로 합류했다.

조선시대 전국 최대 객사로 기록된 나주 금성관에는 강용면의 ‘온고지신’과 김경민의 ‘만남’이 전시되고 있다. 온고지신은 나주목을 방문한 사신‧관리들이 묵었던 객사라는 역사 기억을 주제로, 귀한 손님을 대접한다는 의미의 둥근 밥그릇을 이미지화 했다. ‘만남’은 유교의 가르침인 ‘수지제가치국평천하’를 주제로 가족간의 따뜻한 관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나주 서성문 잔디광장에 설치된 김계현의 앵무새 케이지, 사람들./나주=나윤상 기자
나주 서성문 잔디광장에 설치된 김계현의 '앵무새 케이지', '사람들'./나주=나윤상 기자

1894년 동학농민군과 나주 관병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나주 서성문에는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김계현의 ‘앵무새 케이지’가 눈길을 끈다. 조립아트 작품인 앵무새 케이지는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역사의 굴곡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애절한 삶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광주학생 항일운동의 발발지인 옛 나주역 광장은 김병호의 ‘3명의 신’ 이 설치됐다. 독립을 간절히 소망하며 항일투쟁에 나섰던 나주인의 모습을 신의 형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남지형의 ‘축적된 꽃잎’은 옛 동양척식회사 문서고(현 영산나루) 뜰에 전시됐다. 꽃잎이 낙화하는 과정을 춤추는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아픔을 씻고 이곳이 앞으로 활기찬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구 화남산업 내부에 전시된 이이남의 미디어아트 책읽는 소녀./나주=나윤상 기자
구 화남산업 내부에 전시된 이이남의 미디어아트 '책읽는 소녀'./나주=나윤상 기자

일본군에 납품한 옛 통조림 공장으로 나주의 근대 산업유산인 구 화남산업 폐공장 내부에는 민성홍의 ‘Drift_비정형’과 이이남 ‘책읽어주는 소녀’가 강렬한 이미지로 관객의 눈길을 끈다. 민성홍의 작품은 버려진 폐품 산수화 속 이미지들을 천에 인쇄해 늘어뜨려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설치작품이다.

이이남의 ‘책읽는 소녀’는 어린 소녀가 풍경이 변하는 미디어 아트 캔버스를 배경으로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상이 연출돼 있으며, 전쟁 속 평화와 생명의 소중함을 아련한 슬픔으로 되새기게 한다.

가동을 멈춘 잠사공장을 리모델링한 나주 나빌레라문화센터에는 박일정의 만화방창‘이 설치돼 있다. 꽃과 나무가 서로 어우러져 생명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철구조물로 형상화한 만화방창은 폐산업 시설이었던 버려진 장소가 문화예술 공간으로 부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구 화남산업 내부에 설치된 민성홍의 Drift_비정형./나주=나윤상 기자
구 화남산업 내부에 설치된 민성홍의 'Drift_비정형'./나주=나윤상 기자

1915년에 세워진 영산포 등대(현 황포 돛대 선착장)에 설치된 조은필의 ‘브링더 스페이스-영산강’은 영화로웠던 영산포의 과거가 다시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리라는 희망을 푸른 깃털로 상징화 한 작품이다.

나주 정미소에는 외국인 작가들의 작품이 집중적으로 설치돼 있다. 이레네 안톤의 ‘Intervention invading network-net no.67'은 전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안톤의 설치미술 시리즈 중 한 작품이다. 마치 뇌 신경 세포들이 여러 방향으로 연결되는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스타킹들은 전국적으로 번져나간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양상을 연상시킨다.

응우엔 코이의 ‘Metronome'은 베트남 호치민 시 곳곳에서 사용되는 굴삭기 작업이 유물을 파괴하는 동시에 국토를 개발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부조리를 은유한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정미소를 리모델링한 오늘날 나주 정미소가 풀어야 했던 보존과 개발의 문제를 주시한 작가의 깊은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영산포 등대터에 설치된 조은필의 브링 더 스페이스-영산강./나주=나윤상 기자
영산포 등대터에 설치된 조은필의 '브링 더 스페이스-영산강'./나주=나윤상 기자

나오코 토사의 ‘Moon Flower'는 영상 미디어 작품이다. 광주학생항일운동 당시 나주 정미소에서 회의를 하며 독립을 갈망하던 학생들의 마음이 전국으로 불씨를 옮기는 과정을 미디어아트로 표현한 작품이다. 영상 속 천천히 흩어지는 꽃들의 모습은 파괴적이면서도 아름답고 명상적이다.

백종옥 예술감독은 "살아 있는 것은 끊임없이 흐른다. 무엇이든 멈춰 있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영산강은 나주의 태동을 지켜봤고 나주의 역사를 관통하며 지금도 도도히 흐르고 있다"고 말하며 "영산강이 살아 흐르듯 나주의 역사와 문화도 살아 숨쉰다. 나주에 산재한 과거의 유산들은 단지 옛 추억의 대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 생동하는 문화예술의 장으로 새롭게 되살아나야 한다"고 YRAF의 희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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