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멜버른·포틀랜드, 15분 도시 개념 실현
보행·자전거 중심의 도시 연결 움직임 활발
자전거로 파리 시내를 이동하는 안 이달고(Anne Hidalgo) 프랑스 파리 시장. /부산시 |
[더팩트ㅣ부산=김신은·조탁만 기자] 하루를 돌아보면 사람들은 꽤 많은 시간을 이동하는데 쏟아붓는다. 특히 출퇴근을 할 때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쇼핑몰, 마트, 병원, 문화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 끔찍한 교통체증을 감내한다.
프랑스 파리의 도시정책 고문이자 소르본 대학 교수인 카를로스 모레노(Carlos Moreno)는 "지금의 도시는 사람보다 자동차를 중심으로 계획됐다"고 말한다. 무분별한 도시개발로 여기저기 흩어진 회사와 학교, 병원을 가기 위해 자동차를 중심으로 불편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주거, 일자리, 의료, 문화 등 시설이 모두 15분 이내에 조성돼 있다면 어떨까. 굳이 자동차를 탈 필요가 없어 배기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또 이동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여가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노약자나 사회적 약자도 평등한 환경을 보장받는다.
파리, 멜버른, 포틀랜드 등에서는 이미 이 같은 마이크로 라이프스타일의 '15분 도시' 또는 '20분 도시'라는 개념을 곳곳에서 실행 중이다.
◆ 'n분 도시'의 세계화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는 2016년 '15분 도시' 개념을 처음 발표했다. 그는 "도시 삶을 인간 크기의 공간으로 통합하고 도보와 자전거로 도시 경험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것들을 누릴 수 있어야 하며 그 거리는 도보 또는 자전거를 타고 15분"으로 정의했다.
도시에 어떤 공간이 있는지,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파악한 후 모든 시민이 걸어서 접근할 수 있도록 계획해 도시의 리듬을 차가 아닌 인간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세계도시기후정상회의(C40), 유엔인간거주센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물론이고 파리, 멜버른, 포틀랜드 등 전 세계가 n분 도시에 매료됐다. 세계도시기후정상회의는 15분 도시를 코로나19 이후 경제회복을 위한 기본계획으로 격상해 발표하고 각 나라에 맞는 n분 도시를 실현하도록 장려하기도 했다.
각국에서는 탄소배출량 감축, 도시 지속가능성 및 회복력 향상, 이웃 간 사회적 연결 강화 등을 목표로 n분 도시를 실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프랑스 파리 '15분 도시' 개념도. /부산시 |
◆ '보행·자전거 중심' 파리 15분 도시
2020년 재선에 성공한 파리시장 안 이달고(Anne Hidalgo)는 파리를 보행과 자전거 중심의 친환경 녹색도시로 조성하는 '파리 15분 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15분 도시의 핵심 원칙으로 모든 시민이 특히 식료품이나 신선한 음식 및 건강관리와 연관된 상품과 서비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각 지역에 가족별로 다양한 유형과 크기의 주택을 제공하고, 일하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살 수 있도록 했다.
모든 시민이 깨끗한 공기를 즐길 수 있도록 충분한 녹지공간을 제공하고, 원격근무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집 근처에 소규모 사무실과 소매, 접대 시설을 두도록 했다.
이 같은 핵심 원칙을 중심으로 먼저 자동차가 점령하던 도로를 보행자와 자전거가 중심이 되도록 했다. 가로변 주차 공간은 테라스와 정원으로 바꿔 파리 어디서든 200m 이내에 공원, 숲, 강, 운하 등 녹색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코로나19로 파리 전역을 봉쇄한 동안에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바스티유 광장에 이르는 상업중심가 50km를 자전거 전용도로로 바꿔 '코로나 레인(Corona Cycleways)'을 형성했다. 또 한 공간을 여러 용도로 복합화하고, 공간을 시간으로 분리해 낮과 밤, 주중과 주말로 용도를 나눠 기존 시설들을 통해 다양한 인프라를 확대했다.
주말에 닫혀있던 학교를 개방시켜 연극, 복싱, 요가, 게임, 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전 연령이 사용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변환했다.
호주 멜버른 스트라스모어(Strathmore)의 활동센터 및 생활권 시범사업 배치도. /부산시 |
◆ '20분 내 일상 충족' 멜버른 20분 도시
2017년 빅토리아 정부는 장기계획인 멜버른 플랜(2017~2050)에서 살기 좋은 도시의 주요 전략으로 '20분 도시'를 발표했다.
멜버른의 20분 도시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걸어갈 의향이 있는 최대 시간을 10분으로 편도 거리를 설정했다. 또 목적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왕복 시간을 계산해 생활권 반경을 20분으로 정했다.
구체적 계획으로는 보행자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이동수단을 활발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사람들이 대중교통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도록 하고, 지역 서비스와 교통수단을 실현 가능한 밀도로 주택을 제공하도록 했다.
멜버른은 2018년 20분 생활권 개념과 계획을 수립한 이후 3개 구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스트라스모어(Strathmore)에서는 활동센터가 위치한 교차로 주변에 시범구역을 설정하고 일시적 차량 통행 금지 구간 설정, 보행자 우선 교차로 확보, 자전거 전용도로 설치, 자전거 주차공간 내 수리점 마련, 교통 정온화를 통해 자동차로부터 보행자와 자전거의 안전을 확보했다.
공유 오피스 조성, 소상공인 지원을 통해 생활권 내에 일자리를 충족시켜 지역경제도 활성화시켰다.
미국 포틀랜드 '20분 도시'의 자전거도로. /부산시 |
◆ '연결된 도시' 포틀랜드 20분 도시
미국 포틀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간 도시주의'를 도시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이는 지역 생활서비스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역 주민들의 관심에서 촉발됐다. 이후 가장 시급한 문제에 대한 계획을 담은 '2012 포틀랜드 플랜'에서 건강하고 연결된 도시 만들기의 전략 중 하나로 '완전한 동네'를 발표했다.
완전한 동네는 2012년 기준 학교, 공원, 식료품점 등에 대한 접근성이 좋은 지역에 사는 주민 45%를 2035년까지 80% 이상 안전한 도보 접근을 통해 공공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한다.
이를 위해 도시 외곽으로의 개발과 간선도로 확장을 지양하고 대중교통 중심으로 도심을 고밀도화해 자동차를 쓰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 도로 전체에 자전거도로를 형성, 생활권을 연결했다. 그 결과 포틀랜드는 미국에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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