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 시인 네 번째 시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 출간
입력: 2023.04.03 12:28 / 수정: 2023.04.03 12:28

고단한 생애·타자의 삶을 그윽하게 주시하는 시인의 '속울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서

박석준 시인이 자신의 네번째 시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를 펴냈다. 사진은 시집 표지./페이스북 캡처
박석준 시인이 자신의 네번째 시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를 펴냈다. 사진은 시집 표지./페이스북 캡처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2008년 ‘카페, 가난한 비’로 등단한 박석준 시인이 네 번째 시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를 펴냈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제목에 인용한 까닭에 ‘관념적’이라는 어휘를 떠올리겠지만, 그의 시어들은 결코 난해하거나 현학적이지 않다. 삶을 바라보는 그윽한 주시가 담긴 낮은 목소리가 잔잔한 파동처럼 다가서기 때문이다.

"꽃나무가 주는 자극보다는 나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에 더 짙은 마음을 쏟겠다…하지만 세상살이 사람살이에서 나는 비애일지라도 현장에서 사라질 때까지 섬세하고 신중하게 살아가겠다"

시집 첫머리에 나오는 시인의 말이다. 여기에서 ‘현장’은 의지의 구현인 표상의 세계일 터이고, 쇼펜하우어는 그 의지마저 버려야 자유를 얻는다 했지만, 시인은 그곳에서 ‘섬세하고 신중하게 살아가겠다’며 그의 철학과 결별한다. 어쩌면 시인이 걸어온 모질고 고단한 삶의 노정에서 염세조차도 사치스러운 욕망이었던 탓일까?

시집에 실린 131편의 시는 대부분 시인의 삶 속에 각인된 사람과 연루된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그의 시공간에서 그렇게 그려지는 만남의 형상들은 또한 기억의 잔영이라 여길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고 절절하다. 그들 존재들의 숨소리까지 들으려는 ‘인간적인’ 주시가 아니고선 닿을 수 없는 접경이다.

시집의 발문을 쓴 조성국 시인은 그 경지를 "시인의 생애사가 민낯으로 살아서, 시간과 공간과 사람들의 숨소리가 살아서 ‘지금, 여기’에 이르렀다"고 헤아렸다.

"그끄제 극락강 건너 한방병원에서 어머니 약을 짓고 무등산을 보고 광주 유동 박제방에 함께 돌아왔는데. 크리스마스 낮말 흐른다. 작년. 올해는 애들이 뜸하구나. 스믈일곱 살 소안의 해언이. 은자는 취업준비하고. 스물두 살 민구는 군대 갔고. 순천 선아는 알바해요. … 소안도에 태풍불던 날. 날아가지 않게 냉장고 붙들고 있어라 해놓고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건으로 11월에 수감되었던 큰형이 밤에 박제방에 왔는데. 애야! 크리스마스 밤 소리 나. 불안하게 새벽을 걸었다. 그러나 순천에서 퇴근하고 간 입원실에 어머니가 의식이 없다…다음날부터 15개월 넘도록 의식이 없었다. 사망하기 하루 전에야 의식이 돌아와 ‘밥 거르지 말고 잘 먹어라’ 말소리를 너무 약한 목소리로 마지막으로 전했다."

시 ‘광주 유동 박제방’의 이 시구들은 시인의 기억 속 편린들이 시적 재구성을 통해 읽는 이들의 가슴에 절실하게 와 닿는 시적 공명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산문처럼 이어지지만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더러는 말끈이 잘린 듯 툭툭 끊기지만, 내재율로 드러난 타자들과 주고 받는 심리의 단면들이 비장할 정도로 선명하다.

박 시인과 시인의 가족들이 살아온 험난한 가족사는 적지 않은 세인들이 기억할 정도로 혹독했다. 시인은 자신의 약력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집안이 파산. 대학교 1학년 때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에 관련된 형들의 수감. 지금까지도 너무 가볍고 허약한 몸이 곤란하게 가난하게 만들어서 돈을 벌어야 했다. 몸과 형들 사건 때문에 1983년에 안기부에게 각서를 쓰고 교사가 되었는데 1989년 전교조 결성을 위해 해직을 선택했다. 1994년 복직하고 인생을 생각하다 쓴 ‘카페, 가난한 비’로 등단했다. 빛을 다 갚고 60살에 명예 퇴직했다."

마치 비문처럼 간결하지만 ‘속울음’을 참고 살아온 시인의 생애가 아프게 짚여온다. 시집의 제목이 된 그의 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는 그 속울음의 세월 속에서도 또한 시가 그의 구원이었음을 고백한다.

"산다고 마음 먹으세요. 내일 낮에 수술을 할겁니다. 순환기 내과 장의사가 말하고 간 후, 이상하게도 유리창이 출판하지도 않은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를 공간에 그려낸다. 심실 중격에 구멍이 다시 생겨서 피가 새고 심장병과 동맥경화가 깊어요. 수술 성공할 확률은 1프롭니다. 밥 거르지 말고…63살 2020년 2월로 온 나는 삶이 저지른 죄가 있지만. 사람의 소리. 시이면 좋겠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시인 조진태는 "이야기와 사건들과 사람들로 가득찬 박석준 시인의 시들, 서럽고도 질펀하다. 촉촉한 시간의 세계로 교묘하게 끌어들이는 늙은 청년의 고스라한 삶의 감각이 가슴을 에인다"고 후기를 남겼다.

forthetru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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