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협력 파트너라면 역사인식부터 먼저
사죄 없는 가해자, 용서하는 피해자...
3월 1일 서울 범국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를 출발한 양금덕 할머니와 함께 한 하루를 취재했다. 사진은 범국민대회 합창단의 공연 모습 / 광주 = 나윤상 기자 |
[더팩트 l 광주=나윤상 기자] ‘날 찾아왔다가 못보고 가더라도, 옛정에 매이지 말고 말없이 돌아가 주오’
애잔한 곡조였지만 양금덕 할머니의 목소리는 슬프지 않았다. 3월 1일 범국민대회를 마치고 광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반주 없이 즉흥적으로 부른 노래였다.
근로정신대 끌려간 것이 죄는 아니잖아
2023년 3월 1일 오전 7시 30분 광주 시청 앞에서 서울로 출발하는 버스에 양금덕 할머니와 함께 20명의 사람이 탑승했다. 전날 예보된 날씨대로 하늘은 잔뜩 지푸렸다. 버스 출발 전 양 할머니는 긴장한 듯 했지만 건강한 모습이었다.
양금덕 할머니는 1944년 소학교 6학년 시절 일제의 거짓말에 속아 나고야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근로정신대로 고된 노역을 치렀다. 살아온 것만도 다행이었다. 하지만 해방된 조국에서 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남편은 일본에 끌려간 것만으로 죄인 취급을 했다.
양 할머니는 "우리를 속여 데려간 일본 놈들이 나쁜 것이지,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간 우리들이 죄인은 아니잖아" 고 하소연 했다.
서울에 도착해서도 양금덕 할머니는 긴장한 모습이었다. 범국민대회에 참석하여 휠체어로 이동하고 있는 양금덕 할머니 / 광주 = 나윤상 기자 |
60대, 이길 수 없는 소송을 시작하다
범국민대회를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달려가는 버스는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천안으로 빠져나갔다. 식당에서 불백 메뉴로 점심을 한 양 할머니는 밥 한 공기를 싹 비웠다.
여전히 무표정이었고 긴장한 여력이 남아있었지만 함께 한 사람들과의 사진 찍을 때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양 할머니는 1992년과 1993년 일본을 상대로 한 세 번의 소송에서 모두 패했다.
1999년 3월 1일 나고야 법원에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네 번째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마저 10년여의 재판 끝에 승소하지 못했다. 일본 재판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배상은 마무리 되었다는 이야기를 되풀이 했다.
양금덕 할머니는 올해 95세가 되었다.
2022년 9월 박진 외교부장관은 광주를 찾아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만났지만 일본에게 사죄요구하지는 않겠다며 피해자들 요구를 거부한 바 있다. 사진은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박진 외교부장관에게 직접 쓴 손편지를 들어보이고 있다./더 팩트 DB |
한국 외교부는 도대체 왜 그런 거야?
삼일절 범국민대회는 서울 시청 행정동 옆에서 진행되었다. 행사 시작 전부터 많은 취재진들로 관심을 모았다. 행사시간이 가까워지자 민주당 윤영덕, 이용빈 국회의원이 양 할머니를 찾아왔다. 바로 뒤이어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동석했다.
둘은 말없이 손을 꼭 쥐고 있었다.
2012년 양 할머니는 일본이 아니라 대한민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 법정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는 판단이 맞는지 구하는 소송이었다. 2018년 대한민국 대법원은 하급심을 뒤엎고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별개’ 라는 판결을 했다.
이 판결로 일본 전범기업의 한국내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2022년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류가 바뀌었다.한일관계의 개선을 내세워 외교부는 대법원에 의견서를 내었고 강제집행은 거짓말처럼 멈춰 섰다.
양 할머니는 "작년 9월에 박진 장관이 찾아왔을 때 진정성 있는 대답을 가져올 줄 기대했다" 고 말했다.
당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찾아 광주에 온 박진 장관은 피해자들의 진정어린 환대에도 "일본에게 사과요구는 없다" 고 못 박았다. 이후 한국정부는 양금덕 할머니의 인권상과 국민훈장 서훈에도 제동을 걸었다.
삼일절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를 듣고 본인의 귀를 의심했다며 대한민국 정부의 대일 외교정책을 비판했다. / 광주 = 나윤상 기자 |
정부의 대일본 정책은 굴욕외교일 뿐
행사장에 갑자기 취재진이 양금덕 할머니 주위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삼일절 기념식을 마치고 더불어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나란히 행사장에 참석한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우리가 준비 못해 국권 상실한 것’, ‘일본은 우리의 글로벌 어젠다 협력국’ 이라고 말한 것에 강하게 비판했다. 이 대표는 "삼일절 기념사를 듣다가 귀를 의심했다" 며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취급하며 우리 기업에 책임을 떠넘기는 일, 국민의 안전이 달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침묵하는 일, 한·미·일 군사훈련이 '다케시마의 날'에 '일본해'로 표기된 채 진행되는 일 모두 굴종 외교, 종속 외교일 뿐" 이라며 정부의 대일본 외교정책을 비난했다.
드디어 환한 웃음을 웃다
무대 위 합창단의 공연이 끝나고 휠체어를 탄 양 할머니가 무대로 이동했다. 서울시민이 주는 평화인권훈장 수여식이 진행됐다. 양 할머니에게 상패가 전달되고 훈장이 목에 걸렸다.
행사 내내 긴장한 듯 있었던 양 할머니의 입가에 가득 미소가 번졌다.
양 할머니는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상장도 주고 하니 최고로 기분이 좋은 날" 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젊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양금덕 할머니의 이름을 연호했다. 객석에서 이를 쳐다 본 한 시민은 "양 할머니가 진정한 아이콘이 된 듯하다" 며 눈시울을 붉혔다.
양금덕 할머니가 서울시민이 주는 평화인권훈장을 받고 웃음을 짓고 있다./ 광주 = 나윤상 기자 |
일본의 사죄와 배상만이 내가 원하는 것
행사가 끝나고 일본대사관까지 가두행진을 했다. 양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윤영덕 국회의원이 밀어서 갔다. 가두를 행진하는 도중 주변 사람들은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특히 외국인들은 핸드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같은 날 전광훈 집회에 참석한 보수진영 지지자들은 가두행진을 보며 막말을 하기도 했다. 일본 대사관에 도착하여 행사가 마무리 되자 양 할머니는 "일본의 사죄와 돈이 아니면 받을 이유가 없다" 고 말하고 "한국 정부는 돈이면 다 된다는 착각은 하지 말아라" 고 꾸짖었다.
다시 일상으로
광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양금덕 할머니는 반주 없이 평소 자주 부른다는 ‘먼 훗날’을 불렀다. 가사 내용이 할머니의 굴곡진 세월과 맞닿아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희망의 기운이 가득했다.
내려가는 버스에서 한 시민은 "메두사의 얼굴을 볼 용기가 없다면 역사의 진실은 영원히 외면할 수밖에 없을 것" 이라고 현 정부에 안타까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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