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은 ‘노‧장‧청’ 조화 중요… 호남권 초광역 메가시티 구축, 다극체제로 지역균형발전 꾀해야
지난 24일 <더팩트>가 천정배 정의원을 만났다. 6선에 참여정부 법무방관을 역임한 천 전 의원은 지역구(광주 서구 을)에 사무실을 내고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광주=나윤상 기자 |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은 81명이다. 당내 의석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존재감이 없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선거 패배 등 당이 지지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역할을 하지 못할 때마다 당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초선 의원들의 정치 미숙이 곧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낡은 정치라는 프레임에 붙들려있지만,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나 천정배 전 의원 같은 원로급 정치인들의 지역구 도전에 ‘거장의 귀환’이라는 긍정적인 시선을 주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더팩트>가 24일 15대에서 20대까지 6선을 지내고 참여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역임한 천정배 전 의원을 만났다. 천 전 의원은 최근 지역구(광주 서구을)에 사무실을 내고 내년 총선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6선을 했다. 정치에 대한 나름의 완숙된 견해를 가지고 있을 법 하다. 작금의 한국사회에서 정치의 요체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정치란 평범하게 말하자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권력 활동이다. 그런 명분과 방향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권력 작용이라는 형식이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정치라는 한자어에서 알 수 있듯이, ‘올바르다’는 가치가 내재돼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말을 빌자면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천 전 의원은 정치인 스스로가 "권력 제조자와 같은 말을 해선 안된다"고 지적하며 "성과를 내 선거에 이기면 100년도 가고, 천년도 갈 수 있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광주=나윤상 기자 |
정치인의 행동을 분석하면서 권력의지를 곧잘 거론한다. 그러나 정치인 자신이 권력 제조자와 같은 입장에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 권력으로 어떤 세상을 잘 만들겠다는 얘길 해야지 100년 집권, 30년 집권 등등의 말을 하는데, 나로선 많이 거슬린다. 단지 집권이 권력의 절대 유일의 목표인 양 들리기 때문이다.
열심히 잘하고 성과를 내서 선거에 이기면 백년도 가고 천년도 갈 수 있다는 자세로 정치에 임해야 한다.
-지역구 도전에 다시 나섰다. ‘정치 오래했다’는 비판적 시선, 그리고 ‘경륜의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긍정적 시선이 병존한다. 그래서 이번 도전에는 각별한 뜻이 있을 것 같다.
패기나 개혁성, 이런 부분에서 젊은 정치인들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정치를 해왔다. 지금 민주당 정치는 초선 중심으로 꾸려져있다. 정치에는 프레쉬한 측면도 필요하다. 초선 정치인들을 비판할 이유는 없고, 단지 정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언급에서처럼 ‘노·장·청’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광주나 호남의 정치는 균형이 깨졌다. 광주의 경우만 해도 지난 국회에서 8명 의원 중에 4명은 다선이고 4명은 초선이었다.
내년 총선에 나설 사람들 중에도 다선 출신은 나 하나뿐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선의 경륜을 살려 후배 정치인들과 힘을 합쳐서 정치발전, 지역발전의 길을 함께 모색해 갈 것이다.
-여야 대립이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극한 상황이다. 정치는 실종되고 쌍방 간 사법의 칼날만 번뜩인다. 해법이 있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었다. 윤 대통령이 프로 정치인이 아니어서 한국의 기득권 보수에 깊숙이 관련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타협하고 소통하는 상생의 정치를 펼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던 과정을 보며 한국 사회의 기득권 엘리트들이 갖고 있는 생각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우려를 안겨주었다. 더욱 걱정스러웠던 것은 오랜 검찰생활을 했던 사람으로 칼을 쥐고 대립을 심화시키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그 우려가 현실로 다가섰다. 법조인 출신이지만 법치주의를 강화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법치주의를 왜곡하고 있다. 겸허한 태도만 갖춰도 대통령 역할의 50%는 충족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하는 것을 보면 자신이 가장 잘났고, 세상 일 다 아는 사람처럼 오만한 스타일의 국정운영을 하고 있다.
지금 다수당인 제1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대화하고 협력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야당 대표와 만나지도 않는다. 경제 분야 핵심 요직인 금융위원장 자리까지 전문성 없는 후배 검찰 측근으로 채우는 상식 밖의 일을 벌이고 있다.
많이 답답한 상황이지만 이럴 때 일수로 민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당이 손 놓고 있는 정책비전을 만들어서 입법도 하고 다수당답게 국정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 작금의 한국사회에서 국정의 가장 핵심 과제는 무엇이라 보는가?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오른 게 틀림없다. 몇 개월 전에 미국 언론이 어느 대학과 함께 조사해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이 국가 파워 순위에서 6위로 나타났다. 프랑스, 일본 보다 앞서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 내부를 살펴보면 많은 문제들이 도사려있다.
그 문제들 중 가장 심각한 것이 불평등과 불균형이다. 갈수록 상위 10%, 또 그 중 1%에 부가 집중되고 있다. 그래서 중산층은 무너지고 서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OECD 국가들 중에서 미국과 더불어 불평등이 가장 심각하다.
천 전 의원은 "겸허한 태도만 갖추면 대통령 역할 50%는 충족한다"고 말하며 윤 석열 대통령의 오만한 스타일을 꼬집었다./광주=나윤상 기자 |
이러한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많은 국민들이 생존의 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노인자살률 세계 최고, 청년문제 등 모든 병폐들이 이 불평등, 불균형 문제와 연계돼 있다. 생존에 위기를 느끼면 종족 보전 욕구도 사라진다는 학설이 있다. 최근 통계로 보면 우리나라 출산율이 0.76이다.
IMF 이후 민주정권이 3기에 걸쳐 집권을 했지만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IMF 전보다 더 후퇴한 상황이 됐다. 지역 불균형 문제도 더욱 심각해졌다. 서울과 수도권에 모든 부와 문화가 집중되는 편중현상이 심화됐고 개선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작금의 한국사회에서 우리 정치가 이뤄내야 할 첫 번째 과제가 불평등의 해소라고 생각한다.
좀 과격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소득세, 상속세도 높이고 지역 불균형도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 지금 윤석열 정권이 이와는 정 반대로 가고 있기 때문에 국회권력을 쥐고 있는 민주당이 입법을 해서 밀고 나가야 한다.
-선거제도 개편이 정치권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대한 견해는?
지난 10년 동안 선거제도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지금의 양당제 체제는 소모적이고 정치적 대결만 부추기는 제도이다. 다당제로 가야 한다. 전남대 명예교수로 계신 선학태 교수가 쓴 ‘합의제 헌정체제’라는 책에서 많은 공감을 느꼈다.
나는 이 말을 ‘다당제 합의제 민주주의’라는 개념으로 해석하고 싶다. 한마디로 ‘민심 그대로 선거제도’가 필요하다. 현재의 양당제로는 다원화된 여러 세력의 대표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양당제 에서는 내가 잘해서 집권하려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거꾸러뜨려서 집권하는 정치에만 집중한다.
호남만 해도 양당제의 산물인 민주당 독과점 정치체제에서 시민들이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 정의당이나 진보당이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혀 발을 못 붙이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기반으로 다당제로 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는 바른 미래당의 손학규 대표가 단식까지 하면서 주장을 했고, 민주당이 힘을 보태면서 만든 선거제도였지만 위성 정당들이 만들어지면서 무늬만 연동형인 선거제도가 됐다.
내 개인의 견해를 밝히자면 ‘양원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상원 구성을 보면 50개 주에서 두 명씩 다 뽑는다. 그러나 하원은 주의 크기에 따라 의원 숫자가 나뉘어져 차이가 많이 난다. 버몬트 주 같은 경우는 하원 의원이 한명 뿐인 걸로 알고 있다. 양원제를 통해 지역대표성을 지닌 상원을 구성하고 지역 균형발전을 떠맡게 하자는 얘기다.
- 국민의 힘 전당대회를 보며 청년정치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반면에 민주당이 줄곧 얘기해 온 청년정치는 여전히 존재감이 없어 보인다. 청년정치 활성화를 위한 방안은?
흉내만 내는 형국이다. 선발 과정도 투명하지 못하다. 청년정치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힘은 안 주어지고 구색 맞추기 식이 됐다. 반면에 지난 20~30년 동안에 여성정치는 크게 신장했다. 비례대표 구성에서 여성에게 과감한 할당을 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공천 절차도 투명하고 합리화해서 제도적으로 정치권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보장해줘야 한다.
독일에서는 20대 청년 정치인들에게 4년 임기의 의원직을 4명이 각각 1년씩 하게 하는 제도를 운영해서 정치경험을 키워가게 하는 등 실질적이고 구체적이다. 청년정치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그저 기성 정치인이 자기 입맛에 맞는 청년 정치인을 데려다 쓰는 방식으로는 청년정치의 참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
- 광주 시민들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데 힘을 모아 호남 낙후를 해소해야 한다. 호남이 갖고 있는 힘이 결국 무엇인가? 정치적 힘이다. 호남은 대통령을 만들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지난 대선 전에도 나는 호남을 발전시키는 거대한 매머드 플랜을 만들어 대선공약으로 요구하자는 얘기를 줄기차게 했다.
대한민국은 이대로 가면 국가가 소멸될 상황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에 아이를 안 낳는다. 도시국가들이 대부분 출산율이 현저히 낮다. 좁은 영토에서 생존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천 전 의원은 서울중심 일극 체제의 폐단을 지적하며 "전국 3개 거점을 중심으로 초광역 메가시티를 구축, 지역균형발전을 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광주=나윤상 기자 |
우리나라의 경우도 서울을 중점에 둔 ‘1극 체제’가 다수 국민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국가 발전 전략이 자연스럽게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다극 체제로 가야 한다. 광주를 중심으로 호남을 초 광역 메가시티로 구축하면 경쟁력 있는 지역이 된다.
이 방향은 호남의 입장에서도 절실한 문제이지만, 국가 전체를 위해서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서울, 부산, 광주, 이렇게 3대 거점을 중심으로 초 광역 도시권을 구축해서 지역경쟁력은 물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호남 최대 도시인 광주가 다른 지역의 호남에 대해 포용력을 발휘해야 한다. 광주·전남 통합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힘겨운 일이긴 하다. 그것이 바로 광주와 호남이 나아갈 길이라고 본다. 물론 하루 이틀 사이에 될 일은 아니다. 50년, 백년을 내다보는 위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호남의 정치인들은 물론, 시민들도 그러한 비전 만들기에 적극 동참하기를 바란다. 지난 총선 전에 제가 썼던 책의 제목이 ‘광주여 정신 바짝 차리자’ 였다. 시민들이 정말 정신 바짝 차리고, 정치에 들러리 노릇 하지 말고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 나 또한 시민들과 함께 그 길을 같이 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제가 내년 총선에 나서겠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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