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청·교육청 핑퐁 게임…‘사각지대’ 위기 광주 ‘대안교육’
입력: 2023.01.11 13:16 / 수정: 2023.01.11 13:16

학교 밖 청소년 5,000명 추정, 이들 삶의 희망 일궈갈 수 있도록 지역공동체 함께 나서야

10일 오후 <더팩트> 취재진이 대안학교 운영 교사, 대안교육 프로그램 참여 학생들과 집담회를 갖고 있다./광주=나윤상 기자
10일 오후 <더팩트> 취재진이 대안학교 운영 교사, 대안교육 프로그램 참여 학생들과 집담회를 갖고 있다./광주=나윤상 기자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공교육에서 이탈한 학교 밖 청소년은 전국적으로 50만~60만, 그리고 광주에서만 5,000명에 달한다. 추계이긴 하지만 주목할 만 한 숫자이다. 대안교육 기관이 이들 중 일부 학생들의 비상구 역할을 하지만 그나마 소규모에 불과하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공교육 기관으로 인가한 대안학교는 두 곳이다. 두 곳 모두 설립기관의 교육 목표에 따라 교회에서 운영 중이다. 나머지 소수의 비인가 대안학교가 말 그대로 학교 밖 청소년들의 대안교육을 떠맡고 있는 상황이지만 추정되는 공교육 이탈학생들의 숫자에 비춘다면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지원도 미미하기 짝이 없어 학교 운영은 고난의 행군에 다를 바가 없다. 이정선 광주시 교육감은 ‘한 사람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멋진 얘기를 취임 일성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광주 대안교육의 속내는 전혀 멋지지 않았다.

<더팩트>가 신년 특별기획으로 비인가 대안학교에 다닌 청소년들과 집단 대담의 시간을 가졌다. 대담에는 징검다리 배움터 ‘늘품’의 문근아 대표교사와 ‘래미 학교’ 서정 길잡이 교사가 함께 참여했다.

시청과 교육청, 책임 회피하는 핑퐁게임으로 대안교육 사각지대 내몰렸다

대안학교와 공교육 기관의 교육 가치 추구 측면에서 가장 차별화되는 기점은 대안교육은 학생 맞춤형 수업을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유형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광주시 관내 대안학교는 20여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학교문화에서 이질감을 느끼고 배척되는 청소년들이 주로 대안학교를 찾는다. 대안학교 교사들은, 개념상 공교육의 반대는 사교육이지만 대안학교는 이윤을 추구하는 학원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 중심의 공적영역에 있는 비 제도권 교육기관이라 호칭한다.

징검다리 배움터 늘품의 문근아 대표 교사. 문 교사는 학원을 운영하다 대안교육에 참여했다./광주=나윤상 기자
징검다리 배움터 '늘품'의 문근아 대표 교사. 문 교사는 학원을 운영하다 대안교육에 참여했다./광주=나윤상 기자

그러나 교육청은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벗어나면 전혀 관심을 주지 않는다. 이 무관심의 빈자리를 대안학교들이 메우고 있지만 지원 체제가 너무 취약하다. 의무교육이 이뤄지는 일반 학교는 학비를 내지 않기 때문에 대안학교 또한 학비를 받는데 한계가 있다.

더구나 광주의 대안학교들은 최근 심각한 운영위기에 처했다. 광주시가 대안학교 지원조례를 만들고 교육청에 지원책임을 넘기려 하지만 조례에 따른 시행을 교육청이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과 교육청이 이렇게 핑퐁 게임을 하면서 지역 청소년 대안교육은 사각지대에 떠밀리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대안학교는 광주시가 지원을 해왔다. 그나마 자린고비 지원이었다. 교사 한명 인건비에 무상급식, 그 정도 규모에 불과했다. 교사 한명이 프로그램 운영에 행정업무까지 다 도맡으며 안간 힘을 써야 했다. 문제는 이러한 지원기반으로는 대안학교가 성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 해 학교 밖 청소년들이 부쩍 늘어났다. 코로나 팬 데믹 후유증이다. 비대면 수업이 장기간 계속돼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과정이 없이 고등학교로 바로 건너뛰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부적응 학생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학교 밖 청소년 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등장하고 있지만 대안학교라는 비상구를 만들어가는 공동체의 노력이 아직은 요원하다.

대안학교 친구들과의 생활 너무 좋다. 이 인연 계속 이어가며 살고 싶다

A군은 6년 전에 평소 알고 지내던 누나의 추천으로 대안학교에 들어왔다. 누나는 이곳에서 검정고시 공부를 해보라고 권했다. 지금은 미용실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머리 스타일이 세련돼 보였다. 대안학교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많다고 교사들이 귀띔해줬다. A군은 대안학교에 다녔던 시간은 즐거웠다고 말했다.

공교육을 이탈했으나 대안학교 생활에 잘 적응한 학생들은 친구들과의 생활이 좋다며 그 인연을 계속 이어갔으면 하는 소망을 꿈꾸고 있었다./광주=나윤상 기자
공교육을 이탈했으나 대안학교 생활에 잘 적응한 학생들은 친구들과의 생활이 좋다며 그 인연을 계속 이어갔으면 하는 소망을 꿈꾸고 있었다./광주=나윤상 기자

B양은 사회복지사가 추천해줘 다른 대안학교에 다니다가 학교를 옮겼다. 그곳 생활이 너무 어려웠던 차에 ‘늘품’의 문근아 교사를 만나서 공부를 하게 됐다. B양은 처음부터 공교육을 받지 않았다. 지역 아동센터를 다니다가 주변에서 대안학교를 소개했고, 그곳에서 검정고시 준비를 할 수 있다 해서 대안학교에 들어왔다. 대안교육이 교육과정의 전부였다. 키가 크고 눈빛이 맑아 보였다.

B양은 대안학교의 경우 학생들이 계속 바뀌니까 학교생활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반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은 대안학교를 잘 모르기 때문에 더구나 그런 멘토 역할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B양의 꿈은 취업이다.

C양은 래미학교에 다니고 있다. 공교육을 받다가 래미학교로 왔다. C양의 언니도 래미학교를 다녔다. 공교육에서 이탈해 조금 방황을 하다가 대안학교를 찾았다. 언니도 이곳에서 잘 적응했고 졸업을 했으니 나도 잘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래미학교에 입학했다. 1년 반 정도 생활하고 있다. C양은 학교생활이 즐거웠다는 말 뒤 끝에 학생 수도 더 많아지고 선생님들도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덧붙였다.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묻자 C양은 래미학교에 다니는 이들과의 친근한 교류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답변을 했다. 이곳 학교에 다니면서 만났던 이들이 정말 다 너무 좋은 인연들이어서 이 인연을 계속 이어가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악보가 자리에 놓여있어 음악을 전공하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도전은 해봤지만 지금은 그냥 취미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안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광주=나윤상 기자
대안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광주=나윤상 기자

D군은 대안학교 엘레미 학교에 다니는 중이다. D군 또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안학교에 간 케이스라 공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없다. 초등학교 졸업 탈 무렵 대안학교를 선택한 주변 친구들이 많았다. 공부도 하기 싫었고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대안학교에 왔다며 웃었다. D군은 앞으로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자신이 그냥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며, 그 외에 어떤 특정한 진로를 생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래미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은 2시간 짜리 수업을 하루 두 차례 운영하고 있다. 교육과정은 3학기로 나뉘어져 있다. 4월과 8월에 1‧2학기, 9월부터 12월 까지가 3학기인데 대안교육이라 불릴 수 있는 프로그램은 주로 9월과 12월에 집중돼 있다.

교육 콘텐츠는 마음 다스리는 프로그램, 예술 프로그램, 그리고 최근에는 여행 프로그램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미리 짜여 진 여행 코스가 아니라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함께 기획한다. 대안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은 대부분 이렇게 공동 참여 형식으로 진행된다.

점심 식사도 생활훈련을 위한 참여 형 교육의 일환이다. 요리 조, 뒷정리 조, 수리조, 이렇게 역할을 나누어 진행되며 학생들이 메뉴 짜고, 요리하는 식으로 자율적으로 이뤄진다. 이를 어기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책임을 물을 것이냐 하는 문제까지 토론과 소통의 과정을 취한다. 일단 학생 수가 적기 때문에 이같은 의논 형 프로그램 진행이 자연스럽다. 생활자립 훈련과 민주시민 소양교육이 함께 이뤄지는 셈이다.

물론 늘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튀김 요리가 너무 많다는 학생 요리장을 향한 불만, 만두가 맛이 없다는 불평, 또 어떤 학생들은 여기까지 와서 이래야 하나요? 하며 교사들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질문을 던질 때도 있다.

대안교육 무너질 위기…학교 밖 청소년 삶의 희망 위해 지역공동체 함께 나서야

‘늘품’의 문근아 대표교사는 광주 지역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학원을 운영하다가 대안학교 운영에 참여했다. 래미학교 서정 길잡이 교사는 청소년 단체 중간조직에 있다가 현장 일이 더 어울릴 것 같아 10년 전에 대안교육 활동에 나섰다.

래미학교 서정 길잡이 교사. 서 교사는 청소년 단체 중간조직 일을 하다가 현장에 있고 싶어 대안학교 운영에 참여했다./광주=나윤상 기자
래미학교 서정 길잡이 교사. 서 교사는 청소년 단체 중간조직 일을 하다가 현장에 있고 싶어 대안학교 운영에 참여했다./광주=나윤상 기자

두 사람은 보람 있는 일이라 여겨 나섰지만 이런 저런 과업으로 매일 허덕이며 살고 있다고 고백했다. 형편상 학교 운영을 교사 한 사람이 맡아서 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병원에 데려가야 할 때도 있고, 생활비 버는 학생들 고용센터 함께 가는 일도 교사들의 몫이다.

특히 공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상담교사가 꼭 필요한데 인건비가 없어 구하지 못한다며 아쉬워 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자신들의 얘기를 대안학교 전체의 문제로 이해하지 말기를 당부했다. 더 힘든 곳도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광주의 비인가 대안학교 책임자들은 얼마 전 교육청 앞에서 집회를 했다. 한 10년 여 세월 동안 어렵게 운영을 유지해 온 대안학교들이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시청과 교육청이 사로 책임을 미루는 핑퐁게임을 접고 빨리 합의를 해서 대안학교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이들 교사들의 지원 요구는 소박하다. 공교육에 준한 최소한 두 사람이 교사로 일할 수 있는 인건비, 급식비, 프로그램 운영 지원비 등이다. 이들은 또한 이미 객관적으로 많은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에 그 정도의 지원이 이뤄진다면 보다 풍성한 대안교육이 이뤄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여줬다.

이제 시청과 교육청이 이들의 소박한 기대에 답변을 해야 할 차례이다. 시민의 한 사람이며, 또한 어느 시민의 소중한 자녀이기도 한 이들 학교 밖 청소년들의 삶의 희망을 지역 공동체가 함께 일궈가자는 주문이다.

forthetru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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