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 우크라 고려인 난민 872명 고국귀환 이끈 신조야 대표 "'회귀의 이주사' 다시 쓰여졌으면"
입력: 2023.01.03 15:37 / 수정: 2023.01.03 15:37

"모금과 후원 참여 모든 분들에 감사"...유라시아 이산 고려인 데려와야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고려인마을이 동포 난민 귀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며 그들에게 정착지원에 대해 호소했다. 사진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신조야 대표 / 사진 = 나윤상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고려인마을이 동포 난민 귀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며 그들에게 정착지원에 대해 호소했다. 사진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신조야 대표 / 사진 = 나윤상

[더팩트 l 광주= 박호재, 나윤상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사태로 치닫고 있다. 전쟁의 참화는 삶의 터를 잃은 난민들의 고통스런 수난으로 이어진다.

우크라이나에는 유라시아 곳곳으로 흩어져 사는 다수의 고려인 동포들이 살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적지 않은 고려인 동포들 또한 난민의 처지가 돼 폴란드, 헝가리 등 접경국가 난민촌에서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광주 고려인마을(광산구) 신조야 대표는 전쟁 발발 후 지금까지 무려 872명의 동포 난민들을 광주 고려인 마을로 데려왔다. 지역공동체가 십시일반 힘을 모은 감동적인 고국귀환의 과정이었다.

새해를 맞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은 요원하기에 신조야 대표의 어깨는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지금도 신 대표에게 현지 고려인 난민들의 고국귀환 요청이 쇄도한다.

“11살 소녀 아니따 데려온 걸로 시작된 동포 난민 귀환 지원…대규모 입국행렬로 이어질 줄미처 생각 못해”

신 대표가 고려인 동포 난민 고국귀환 지원에 발벗고 나선 것은 아니따(여, 11)를 데려온 게 시작이었다. 아니따의 조부모는 이미 고려인 마을에 정착해 살고 있었다. 전쟁 소식을 듣고 손녀 아니따 생각에 잠을 못 이루고 눈물로 지새던 이들은 ‘비행기 표’라도 구해줄 수 없느냐고 신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신대표는 마을 공동체에 이 사실을 알리고 모금으로 항공권을 구해 현지에 보냈다. 아니따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날, 가족을 비롯해 고려인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마중을 나갔다. 공항은 눈물바다가 됐다. TV 방송과 많은 언론들이 이 눈물의 상봉을 취재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폴란드, 헝가리, 몰도바 등 접경 국가들로 피난을 나온 고려인 동포들의 연락이 잇따랐다. 고국 귀환을 도와달라는 호소였다. 신 대표는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고려인 마을 정착민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모금 활동이 시작됐다. 광주 시민사회가 함께 나섰다. 기업들도 참여했다.

이 지원에 힘입어 귀환 동포들이 하나둘씩 인천공항에 입국했다. 수십여 명이 가족들과 함께 입국하기도 했다. 아니따의 고국 귀환 지원이 그처럼 대규모의 입국행렬로 이어질 줄은 신 대표도 미처 생각치 못한 일이었다.

2022년 3월 22일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광주 고려인마을 동포 자녀 남아니따(10세)가 고려인마을과 지역사회 후원으로 인천공항에 입국해 할머니 품에 안겼다. /더팩트 DB
2022년 3월 22일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광주 고려인마을 동포 자녀 '남아니따'(10세)가 고려인마을과 지역사회 후원으로 인천공항에 입국해 할머니 품에 안겼다. /더팩트 DB

“광주 고려인마을은 동포 난민 귀환 플랫폼 역할…현지 삶의 터 다 잃어 정착 주민 계속 늘어날 듯”

비행기 표 구해주는 일로 난민 귀환지원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현지 외교 공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고, 여권을 만들어야 하는 등 출국수속도 난망한 숙제였다. 폭격의 와중에 급하게 피신을 하느라 대부분의 동포들이 자신의 신분에 관련된 모든 문서를 챙겨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백방으로 뛰었다. 정치권의 도움으로 외교부의 협조를 구했다. 고려인 마을로의 귀환 이후에도 챙겨야 할 일은 산처럼 쌓여있었다. 숙소를 마련해줘야 하고, 생필품을 지원해야 했으며, 의료지원, 자녀들 면학 지원 등 난제들이 첩첩산중이었다.

소요 경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다행이 많은 매체를 통해 신 대표와 고려인 마을의 활동이 알려지며 지원이 답지했다. 지역사회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성금이 모아졌다. 신 대표는 특히 광주 시민사회에 고마움을 전했다. 한 마음으로 성원을 보내주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유라시아 이산 고려인 동포 귀환·정착 지원은 ‘인구절벽’ 해소 탁월한 대안 될 수도”

고려인 마을에 귀환한 동포들이 모두 이곳에 정착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국내 다른 연고를 찾아 마을을 떠난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이 일단 고려인 마을에 임시 정착하는 것은 현재로선 광주에서만 이들의 귀환과 정착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광주의 고려인 마을이 동포난민 고국귀환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전쟁의 끝은 요원하고, 귀환 난민들 대부분이 우크라이나 현지 삶의 터를 모두 잃어 고려인 마을 정착주민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신 대표의 머릿속엔 지금도 계획했지만 데려오지 못한 500여 명의 동포난민들이 맴돌고 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 숫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신조야 대표가 이끄는 고려인 마을공동체의 힘, 그리고 지역사회의 후원만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아직은 민간의 후원과 성금으로 꾸려나가곤 있지만 벅찬 일임에는 틀림없다.

한국에 정착한 많은 고려인들에게 희망적 삶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 경제적 문제와 차별적 시선도 공존하고 있다. 사진은 신조야 대표와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 / 사진 = 나윤상
한국에 정착한 많은 고려인들에게 희망적 삶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 경제적 문제와 차별적 시선도 공존하고 있다. 사진은 신조야 대표와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 / 사진 = 나윤상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예산편성을 통한 공식적인 지원은 아직은 없다. 오랜 세월 이산의 고통을 겪으며 유라시아를 떠돌던 동포들이 다시 전쟁의 참화에 삶이 무너진 채 고국귀환에 목을 매달고 있다는…가슴 아픈 사연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눈을 감았다.

난민 행렬이 시작된 전쟁 발발 초기, 공군기 몇 대만 보내줬어도 고려인 마을의 귀환 지원 활동은 훨씬 수월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전복됐을 때 우리 외교부를 돕던 현지인들을 공군기를 보내 귀국시킨 작전이 새삼 겹쳐오는 대목이다.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을 떠나서라도 신 대표는 보다 항구적인 동포 귀환 정책을 기대하고 있다. 유라시아 해외동포 귀환 및 정착을 제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안이 마련된다면 국가적 난제인 ‘인구 절벽’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안이다.

신 대표에 따르면 유라시아 고려인 동포들 대다수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에게 소상히 전해지진 않지만 고려인 동포 등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도 심각하다. 신 대표는 정부와 정치권이 합심해 이들에게 영주권을 주고 고국에 정착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고국귀환에 나설 동포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동일한 선조의 피를 이어받았기에 언어가 통하고, 정서의 공감대가 높은 이들 고려인 동포들의 고국귀환은 디아스포라의 아픔을 씻고 겨레가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는 감동스런 ‘회귀의 이주사’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kncfe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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