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일간의 외침...“여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입력: 2022.09.07 10:44 / 수정: 2022.09.07 10:44

광주 서구 화정⋅농성 침수피해대책위 박형민 위원장 "침수 피해는 정신을 피폐시키는 재해"

331일간의 1인시위를 마치고 주민들과 함께 감사인사를 하고 있는 박형민 위원장/박형민 페이스북 갈무리
331일간의 1인시위를 마치고 주민들과 함께 감사인사를 하고 있는 박형민 위원장/박형민 페이스북 갈무리

[더팩트 l 광주=나윤상 기자] 지난 8월 31일 광주시의회가 제309회 임시회에서 서구 군분로 하수관로 정비사업비 예산 10억원을 추경했다. 이 추경에는 직접 침수피해를 겪고 화정⋅농성 침수 대책을 요구하며 331일간 1인시위를 한 박형민 화정⋅농성동 침수피해대책위원장의 노고가 컸다.

박 위원장은 2020년만 생각하면 아직도 오싹한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2020년 8월 7일이었는데 비가 엄청나게 왔다”며 “골목길에 물이 쏟아지면서 가슴께까지 물이 차올랐다”고 회상했다.

그 당시 사진을 보여준 박 위원장은 “주민들은 무서워서 다들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제가 침수차량도 빼고 감전될 수 있으니 전기 내려라 고 말했다”며 “침수피해는 사람의 정신을 피폐시키는 재해”라며 긴박했던 상황을 말했다.

침수피해 시작은 2012년 광주시 관수로 공사

박 위원장은 2018년 처음 침수피해를 겪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두 팔 걷어붙이고 이 일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2010년 극락천유역 하수관거 정비사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2012년 광주 중심부를 관통하는 ‘2010 극락천유역 하수관거 정비사업’ 공사를 시작해서 16년에 마무리 지었다. 총 455억원의 비용이 드는 공사였다. 그런데 설계도면에 나온 구간 중 E라인 부분 공사가 누락됐다. E-라인 공사비는 15억9300만원이 책정되어 있었다.

그 E라인이 상습침체구간인 화정⋅농성 구간이다.

박 위원장은 광주시에 왜 이 구간의 공사만 누락되었냐고 따져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확한 답변은 아직도 듣지 못했다.

2010년 광주광역시 극락천유역 하수관거 정비사업 계획평면도 사진/화정⋅농성동 침수피해대책위원회 제공
2010년 광주광역시 '극락천유역 하수관거 정비사업 계획평면도 사진/화정⋅농성동 침수피해대책위원회 제공

박 위원장은 “답변은 듣지 못했지만 현 상황 개선이 우선이었다”라며 “상습침수피해 구간인만큼 여기에 공사를 해달라”고 광주시에 요구했다.

하지만 광주시는 계속해서 공사를 못하겠다고 거부했다.

그러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시공무원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로부터 이마트와 신세계 백화점이 있는 하류 쪽에 침수우려가 있어 공사를 못하겠다는 이야기였다.

90년에 상무대로 지하 박스 매설 공사를 할 때 박스 높이가 3m50cm인 것이 이마트를 앞두고 박스 높이가 2m50cm로 1m나 줄어들어 병목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화정⋅농성 라인 공사를 하게 되면 많은 수량이 결국 이마트 주위의 병목현상 때문에 그 쪽 일대가 물에 잠기게 된다는 것이다.

재벌기업 살리려고 서민동네 죽이냐며 시위

박 위원장은 공무원과의 녹취록을 틀며 재벌기업 살리려고 서민동네 죽이는 것 아니냐며 시위를 했다.

박 위원장의 이러한 시위에 시는 과민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배수펌프를 제안했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배수펌프는 본질적인 대안이 될 수 없어 거부했다. 끝까지 지하터널을 뚫어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황은 쉽지 않았다. 광주시는 여러 가지 조건을 들이대며 공사를 보류했다.

20년 8월 비가 많이 와서 화정⋅농성동 구간 골목길에 물이 찼다. 당시 물이 빠지고 있는 상황을 찍은 사진/화정⋅농성동 침수피해대책위원회 제공
20년 8월 비가 많이 와서 화정⋅농성동 구간 골목길에 물이 찼다. 당시 물이 빠지고 있는 상황을 찍은 사진/화정⋅농성동 침수피해대책위원회 제공

그런 와중에 20년 8월 침수피해가 있었다. 너무나 심각한 침수피해였다. 광주시와 서구청은 시예산 7억원과 구예산 3억원을 들여 침수피해 방지 공사를 추진했다.

그리고 21년 2월에 주민대책위와 서구청이 합의에 성공하여 주민대표로 박 위원장이 문서에 서명하고 서구청은 청장을 대리해 건설과 모 계장이 서명했다.

이는 언론보도까지 되었고 서구청은 보도자료까지 냈다.

하지만 다음날 이 모든 것은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서구청을 대표해 서명을 했던 건설과 모 계장이 “서명을 한 사실을 없는 것으로 해 달라”며 연락이 온 것이다.

박 위원장은 “이런 코미디가 없다. 어떻게 하루 만에 서명까지 한 합의를 뒤집을 수 있나”며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광주를 뒤엎은 재난 상황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문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광주에 재난상황이 발생하면서 급반전되었다. 2021년 6월에 동구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가 일어나고 2022년 1월 11일에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가 연이어 일어나면서 광주에 안전 불감증이라는 비난이 일제히 쏟아졌다.

박 위원장은 “1월 26일에 이용섭 시장 비서관이 찾아왔다”며 “그때가 아이파크 붕괴사고로 이용섭 시장이 수염도 안 깍고 안전 시장을 표방하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비서관이 현안보고를 이 시장에게 하고 관련 공사 지시가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었다.

광주에 학동 붕괴사고와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가 연이어 일어나면서 안전에 대한 이슈가 큰 화제가 되었다. 사진은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전경 /더팩트 DB
광주에 학동 붕괴사고와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가 연이어 일어나면서 안전에 대한 이슈가 큰 화제가 되었다. 사진은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전경 /더팩트 DB

박 위원장은 “문제가 갑자기 풀렸다. 2월 14일에 시하수과와 서구청이 주민대책위와 회의를 하면서 공사가 가능하다고 했다”고 말하면서 “안하려고 하면 안하려는 논리를 계속 가지고 말하고 하려고 하니까 해야 할 당위성만을 말한다”고 풀이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고 8월 시의회 서구 군분로 하수관로 정비사업비 10억원이 추경안이 통과됐다.

박 위원장은 “참 기쁘면서도 허탈했다”라며 “10억원이라는 액수 때문이다. 10억원 정도면 할 수 있는 공사를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미루는 행정의 그 높이에 어떻게 시민들이 감히 도전할 수 있겠나”며 반문한 뒤 “그래도 이번에는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다”고 말했다.

날마다 시위를 했었는데 이제 아침에 일어나서 시위를 하지 않으면 허전해 할 것 같다는 박 위원장은 재충전의 시간을 잠시 갖겠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 70여 만원어치의 책을 주문했다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데는 독서만 한 것이 없다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kncfe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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