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자 대표 “짐승의 시간 겪었다”(영상)
입력: 2022.08.29 16:35 / 수정: 2022.09.22 13:55

차마 떠올리기 싫은 기억의 퍼즐 엮어 2년 째 참혹한 복지원 실태 재현 모형 제작 중

657명이 가혹행위로 사망,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실태가 지난 24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의 공식발표로 35년 만에 전모가 드러났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을 정부가 묵인한 ‘국가 범죄’로 규정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누나와 함께 복지원으로 끌려간 이후 참혹한 삶을 살아온 한종선 대표(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실종자 유가족 모임)의 끈질긴 ‘진실 알리기’가 없었다면 사건의 진상은 아직도 어둠 속에 묻혀있을지도 모른다.

한 대표는 자신의 자서전 ‘살아남은 아이’에서 복지원 생활을 ‘짐승의 시간’이라 기록했을 정도로 떠올리기조차 고통스러운 참담한 기억의 퍼즐을 맞춰가며 2년 째 형제복지원 모형을 만들고 있다. 모형은 공간의 복원뿐만 아니라 가혹한 인권유린의 일상까지 담겨있다. 한 대표는 피해자들의 기억을 되살려 완전한 진상규명을 위해 모형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어깨통증으로 입원가료중인 한 대표를 27일 <더팩트>가 만났다.<편집자 주>

한종선 부산형제복지원 피해 생존 실종자 유가족모임 대표. 한 대표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두살 위인 누나와 함께 끌려가 겪은 복지원의 참혹한 일상을 짐승의 시간이었다고 밝혔다./광주=나윤상 기자
한종선 부산형제복지원 피해 생존 실종자 유가족모임 대표. 한 대표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두살 위인 누나와 함께 끌려가 겪은 복지원의 참혹한 일상을 '짐승의 시간이었다"고 밝혔다./광주=나윤상 기자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진실화해위’가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을 35년 만에 밝혔다. 감회가 남다를 텐데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1987년 복지원이 폐쇄될 때도 진상규명 없이 은폐를 했기 때문이다. 공간 폐쇄로 수용자들 내보내면서 진상규명은커녕 부랑인들이 인권침해 좀 당한 사건으로 왜곡시키면서 실상을 은폐했다. 인권 유린의 책임자인 박인근 원장의 처벌이 당시 2년 6월의 징역형에 그친 것이 은폐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갔다 가진 것 없이 복지원에서 쫓겨나면서 삶이 망가진 피해자들이 10년 동안 진상규명 투쟁을 해왔다. 그동안 이를 외면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정부기관이 다시 조사를 해준다고 하니 고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또 다른 은폐를 하려는 게 아닐까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이번 발표를 하면서 진실화해위 위원장께서 ‘이것은 국가폭력이다’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라고 말했고, 또 추가 규명을 하겠다 하니 기대를 하고 있다.

정부 발표 내용 중에서 미진하고 아쉬운 대목은 없는지

분명히 빈틈이 있을 것이다. 진실 화해위 기자회견 때도 요약된 자료만 받아봤지 전문을 다 읽어보지 못했다. 나중에 국가폭력에 대해 보‧배상을 청구할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상세한 내용이 필요하다.

이번이 1차 조사로 알고 있다. 또 진실화해위가 아직 문을 닫은 것은 아니다. 추후 미흡한 부분이 나오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의지로 완벽하게 진상을 밝혀야 한다. 피해자들 모두의 억울함을 풀 수 있고, 이에 따라 국가가 제대로 사과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요구를 할 계획이다.

한 대표 삶의 기록을 보면서 어떻게 그렇게 참혹한 시간들을 견뎌냈을까 궁금했다. 그럴 수 있었던 내면의 어떤 힘이 있었는지

2007년도에 아버지와 누나를 정신병원에서 찾았을 때, 딱 하나 느낀 점이 있었다. 복지원 출신 부랑아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우지 못해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노동착취에 시달렸지만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어서 힘들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누나의 삶을 떠올리면서 그래도 나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누나는 정신병원에 갇혀 누구에게 도와달라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가족인 나라도 어떻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서로 헤어져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아버지와 누나를 정신병원에서 찾으면서 한 대표는 내 자신이 나서서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뜻을 굳혔다. /광주=나윤상 기자
서로 헤어져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아버지와 누나를 정신병원에서 찾으면서 한 대표는 내 자신이 나서서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뜻을 굳혔다. /광주=나윤상 기자

내가 아프다고 해서 다른 이들이 똑같은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나 말고도 수많은 피해자들이 있는데 진상규명이 잘못되면 또 다시 피해자들에게 새로운 낙인이 새겨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과정에서 우선 스스로의 삶을 조심스럽게 잘 지켜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이 때문에 검정고시도 봤고, 수능시험도 치렀다. 진실을 알리려는 내 행동을 사람들이 왜곡되게 받아들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2012년 한 대표 홀로 시작한 국회 앞 1인 시위가 사실상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의 발단이 됐다. 어떤 동기로 시위 결심을 했는지

그 무렵 어느 날 새벽에 톰 크루즈가 나오는 ‘콜래트럴’ 이라는 영화를 봤다. 살인 청부업자인 톰 크루즈가 택시기사를 납치해 살인현장으로 끌고 다니며 살인을 하는 스토리였다. 영화 속에서 톰 크루즈가 기사에게 묻는다. 꿈이 뭐냐고. 기사는 리무진 택시회사를 차리는 게 꿈이라고 대답한다. 기사의 대답을 듣고 톰 크루즈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지금까지 꿈만 꿨기 때문에 이렇게 인질이 돼서 살인현장에 끌려 다니는 것이다. 꿈만 꾸지 않고 빛을 내서라도 리무진 택시를 한 대 사서 운영을 했다면 납치를 안 당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2007년에 아버지와 누나를 찾으면서 어떻게 세상에 알릴까 고민만 했지 행동하지 못했다. 영화 속 톰 크루즈가 내게 ‘지금도 꿈만 꾸고 있느냐’고 나무라는 것 같았다. 다음날 피켓을 만들어 돗자리 한 장과 얇은 이불 한 장을 들고 서울로 올라와 국회 앞 시위를 시작했다.

2012년 국회 앞에서 첫 피켓시위를 시작했을 때 빨갱이라며 멱살을 잡히고 얼굴에 침을 뱉는 모욕을 당했던 기억을 아프게 회고했다./광주=나윤상 기자
2012년 국회 앞에서 첫 피켓시위를 시작했을 때 빨갱이라며 멱살을 잡히고 얼굴에 침을 뱉는 모욕을 당했던 기억을 아프게 회고했다./광주=나윤상 기자

시위를 시작했을 때 시민들 첫 반응은

싸늘했다. 모욕도 많이 당했다. 빨갱이라고 멱살을 잡고 얼굴에 침 뱉는 사람도 있었고, 국가한테 돈 뜯어내려고 시위한다고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그래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잖아도 부랑인이라고 낙인찍힌 상황에서 같이 쌈질이라도 하면 또 오명을 뒤집어 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국회 앞이 교수나 변호사들, 국회의원들, 수많은 지식인들이 오가는 곳이지만 처음엔 그 누구도 피켓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정규찬 교수(한예종 언론 미디어학과)가 처음으로 깊은 관심을 보여줬다. 피켓에 있는 사진들을 유심히 보시기에 보충 설명을 해드렸더니 기억나는 대로 글을 한번 써보라고 권하셨다.

내가 겪은 형제복지원 사건 기록인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이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이런 과정 속에서 인권운동가들 사이에 조금씩 진실이 알려졌고, 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특별법을 추진했다. 그렇게 여론을 탔다.

아버님이 지난 4월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다. 헤어졌던 아버지와 누나는 어떻게 해서 찾게 됐나

형제 복지원 나와서 교도소살이도 하고 먹고 살려고 온갖 일을 다 하며 살았다. 노가다로 건설현장 생활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몸이 망가져 일도 할 수 없고 죽고 싶은 마음에 신문고에 글을 썼더니 동사무소에 가서 기초생활 수급자 신청을 하라는 얘길 들었다. 동사무소에 갔더니 직원이 내게 부양 의무자라고 했다. 소식이 끊겼던 아버지와 누나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직원에게 주소를 받아 찾아갔다. 아버지는 언양 정신병원에, 누나는 양산 정신병원에 있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편으로 후회 막심했다. 진상규명한다고 전국을 쏘다니는 대신에 아버지 누님 모시고 함께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회한이 밀려왔다. 올해 49세가 된 누님은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다. 치아가 없어 드실 것을 제대로 먹지는 못하지만 병원에 있을 때보다 몸 도 많이 나아졌다. 지금은 기초생활 수급자로 누님과 겨우 겨우 살아가고 있다.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내가 어떻게 번듯한 직업을 가질 수 있겠는가. 막노동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도 없고 경력도 없다. 입에 겨우 풀칠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결혼도 못했다, 몸도 많이 망가져서 고된 일은 할 수도 없다.

한 대표는 집단학살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도시이기에 치유의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는 희망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광주에 내려오게 됐다고 정착의 이유를 밝혔다./광주=나윤상 기자
한 대표는 집단학살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도시이기에 치유의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는 희망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광주에 내려오게 됐다고 정착의 이유를 밝혔다./광주=나윤상 기자

연고가 전혀 없는 광주에 어떻게 정착하게 됐나

피해자 모임을 10년 째 이끌어오면서 전에는 피해 당사자들과 가까운 곳에서 함께 살았다. 전라북도 삼례에서 생활할 때 피해자들과 걸어서 5분 거리 정도 되는 가까운 곳에서 함께 살았다. 이들에게서 도망하다시피 광주로 왔다. 광주를 새로운 정착지로 떠올린 이유는 5‧18 집단학살을 겪은 도시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동병상련의 공감이 있을 것 같았다. 시민들이 큰 아픔을 겪었으니까 치유의 방법도 배울 수 있을 듯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광주로 왔다. 광주에 와서 5‧18단체도 여러 갈래도 찢어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피해자 운동이라는 것도 서로가 자신의 아픔에 함몰돼있기 때문에 분열돼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란 것을 깨달았다. 이를 통해 피해자들과의 관계에서 마음속에 짐이 됐던 많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형제복지원 모형 만들기를 2년째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 이유는

피해자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진상조사로 다 드러나지 못한 것들, 그리고 피해자들이 하지 못한 말들을 모형작업을 통한 복원을 통해서 남겨야 한다는 게 내 역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 70% 정도 완성됐다. 대부분 피해자들은 형제복지원의 시간들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까닭에 잊어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그만큼 기억도 잊혀져간다. 모형이라는 공통의 기억상자를 통해 피해자들이 목격하고 겪은 진상을 샅샅이 끌어내기 위해서 이 작업을 하고 있다.

한 대표는 피해자 기억의 원형 보존을 통한 완전한 진상규명을 위해 형제복지원의 참혹한 일상을 재현하는 모형만들기 작업을 2년 째 계속하고 있다. / 한종선 페이스북 캡처
한 대표는 피해자 기억의 원형 보존을 통한 완전한 진상규명을 위해 형제복지원의 참혹한 일상을 재현하는 모형만들기 작업을 2년 째 계속하고 있다. / 한종선 페이스북 캡처

그동안 10년째 피해자 모임을 가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직접 접수 신청을 한 것만도 400여 건에 이르고 저한테 연락을 해 온 이들도 530명 정도 된다. 진상규명 동력이 떨어지는 것이 우려돼 조직을 꾸려가기가 힘들었지만 후훤금도 받지 않았다. 완전한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이들 피해자들의 기억을 되살리고 증언을 발굴해야 한다. 모형을 본 이들이 어린 나이의 일인데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하느냐고 묻곤 한다. 키가 작아 번호가 1번이었기에 행군을 하면 언제나 맨 앞에 섰다. 이 때문에 공간의 위치나 모습을 다른 수용자들 보다는 많이 파악할 수 있었지 않나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국가가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조사를 통해 피해 사례를 발굴하고 있는 시점이다. 피해 당사자들이 세상의 편견 때문에 숨어 지내왔지만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된다. 구제 받을 수 있을 때 구제 받아야 되고, 국가가 사과하도록 해야 된다.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내가 불우했고 재수가 없어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국가폭력이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당당히 사과를 받고 스스로를 드러내면서 트라우마를 치유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신을 세우면서 명예를 찾아야 한다.

국가도 진상규명에 따른 배‧보상을 차일피일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사과할 것은 분명하게 사과하고 피해당사자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데 진심을 다해서 나서야 한다.

forthetrue@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