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정신대 자서전 읽은 일본인들 “노예란 바로 이런 것이려나…”
입력: 2022.05.23 12:57 / 수정: 2022.05.23 12:57

노자와 마사코 등 신일본부인회 회원 6명, 안타까운 마음 시와 글로 전해와

시 할머니의 노래를 지은 노자와 마사코(88)./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 제공
시 '할머니의 노래'를 지은 노자와 마사코(88)./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 제공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송두리째 빼앗겼네 꽃다운 청춘…할머니 글은 서글픈 기록의 바다…노예란 바로 이러한 것이려나…끌려온 이웃나라 소녀들의 진실한 기록"

올해 88세를 맞은 노자와 마사코(野澤真砂子)씨의 시 '할머니의 노래' 한 대목 이다. 노자와씨는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의 자서전에 대해 ‘서글픈 기록의 바다’라고 명명했다.

그가 자서전에서 마주한 할머니들의 처지는 한마디로 ‘노예’였다. 그는 "노예란 바로 이런 것이려나"며 탄식하며 "끌려온 이웃 나라 소녀들의 진실한 기록"이라고 깊은 공감을 표시했다.

그의 시어에는 10대 어린 나이에 일본에 동원된 근로정신대 소녀들에 대한 안타깝고 절절한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노자와 마사코씨는 이 시 외에도 자서전을 통해 느낀 심정을 단가(短歌)로도 남겼다.

일본 군수공장으로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자서전을 읽은 일본인 6명이 충격과 안타까운 마음을 시와 글로 전해 왔다. 일본 정부가 교과서 역사 왜곡을 노골화하고 있는 가운데,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접한 일본인들의 반응이어서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일본인들은 자서전을 통해 처음 접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에 충격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야마다 히로미(山田弘美.77)씨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여자근로정신대의 사실에 몸이 떨렸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일본 정부는 일관되게 역사의 진실을 은폐 왜곡하고, 강제연행 사실을 감추고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했다"며 "할머니의 ‘자서전’은 살아있는 증언, 역사의 진실을 전하는 실로 보물이다"며 소감을 전했다.

야자키 노부코(矢崎信子.71)씨는 "이렇게 끔찍한 짓을 했다니 일본인으로서 마음이 아프고, 그날 밤은 잠들지 못할 정도의 충격이었다"며 "세 명의 수기를 보지 않았다면 나는 ‘일본 정부가 사과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라고만 생각했을 뿐,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생을 마감해 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자서전을 통해 접한 충격을 토로했다.

85세의 니시오카 토미에(西岡とみ江)씨는 "언제나 전쟁이라는 것의 희생은 크게 여성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며 "이 수기는 가슴이 아파서 읽을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짓밟아 뭉개다’라는 말이 강하게 떠올랐다"며 "평온한 여생을 기원한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신일본부인회(新日本婦人の会. UN NGO 인증) 야마나시현(山梨県) 야마나시지부 ‘달맞이꽃’반 회원들인 이들은 여성의 권리·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평화와 생활을 지키는 활동을 하고 있는 지역의 작은 그룹으로, 회원 중 3명은 80대다.

신일본부인회 야마다시지부 달맞이꽃반 회원들이 자서전을 펼쳐놓고 담소를 하고있다. 사진 왼쪽부터 하야시 마리코(66), 야마다 히로미(77), 노자와 마사코(88). /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 제공
신일본부인회 야마다시지부 '달맞이꽃'반 회원들이 자서전을 펼쳐놓고 담소를 하고있다. 사진 왼쪽부터 하야시 마리코(66), 야마다 히로미(77), 노자와 마사코(88). /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 제공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나고야소송지원회) 공동대표 다카하시 마코토(髙橋信)의 60년 지기 오랜 친구인 모테기 마사히로(茂木正寿)씨는 지난해 12월 ‘빼앗긴 청춘 빼앗긴 인생’(奪われた青春、奪われた人生)이라는 제목으로 근로정신대로 동원된 양금덕‧김성주‧김정주 할머니의 자서전이 일본에서 출판되자, 10권을 구입해 지인들에게 소개했으며 일부는 이 모임 회원들에게도 전해졌다.

한 달에 한 번 반모임을 갖고 소소한 ‘수다’를 나누는 이 모임 회원들은 책을 함께 읽고, 이후 지난 3월 노자와(野澤)씨의 단가(短歌)를 시작으로 4월까지 서로의 감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세키 이쿠요(関幾代.84세)씨는 "국가 시책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 교사의 행위가 학생을 괴롭혔다면 국가의 책임은 매우 무겁다"며 "국가도, 기업도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인정하고 사죄하고, 그런 다음 대화하고 보상해야 한다. 오랜 시간 동안 해결되지 않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사죄와 배상을 회피하는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정부를 질타했다.

하야시 마리코(林まり子.66)씨는 "많은 한국 남성들이 일본의 탄광이나 공장에서 일하면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고통을 겪었고, 죽은 사람도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을 때까지 불과 12살 정도에 이런 일을 하게 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여태까지 몰랐던 것이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에 가면 학교에 갈 수 있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기대에 부풀어 온 결과가 이렇게 끔찍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라며, "우리는 전쟁은 절대 안 되고 인간은 평등하고 인권은 지켜져야 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함께 목소리를 높여 나가겠다"고 할머니들의 투쟁에 마음을 보탰다.

한편 일제강점기 여자근로정신대로 동원된 피해자 양금덕(梁錦徳.1931.2)‧김성주(金性珠.1929.9)•김정주(金正珠.1931.8) 할머니의 자서전은 피해자들을 지원해 온 한일 시민단체가 서로 손을 보태 지난해 12월 ‘빼앗긴 청춘 빼앗긴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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