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고시텔 농성자 극단적 선택…경찰·언론에 절망했다
입력: 2022.05.19 11:18 / 수정: 2022.05.20 14:08

'강제퇴거' 허위 보도와 대안 없는 경찰 설득에 절망

인천 남동구 간석동 고시텔. /인천=지우현 기자
인천 남동구 간석동 고시텔. /인천=지우현 기자

[더팩트ㅣ인천=지우현 기자] "전기도 안들어오고 수도까지 끊긴 고시텔에서 남편은 경찰과 대치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려고 했는데 언론보도나 경찰 설득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인천 남동구 간석동 고시텔에서 강제로 내몰리게 된 억울함을 호소하며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12일까지 25일간 경찰과 대치하다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한 운영자와 관련, 유가족은 경찰의 방관과 언론의 허위 보도가 부른 참사라고 주장했다.

최근 건물 소유권을 놓고 법적 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상대측이 부른 철거 용역업체 직원들이 무단 침입해 집기를 부수고 강제로 전기와 수도를 끊는 등 불법 행위를 벌였음에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며 언론도 사실 확인 없이 가사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법조계는 법적 분쟁 중에는 퇴거 명령이 내려질 수 없으며, 당연히 철거 용역업체 직원들의 고시텔 출입과 기물파손 등은 범죄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출동한 경찰이 직무유기를 했다고 이해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19일 <더팩트> 취재와 제보 등을 종합하면 운영자 A(52)씨는 지난 2005년 A씨 아내의 이름으로 고시텔이 있는 6층을 매입했다. 그러다 7년이 지난 2012년 A씨는 30년지기 친구인 B씨에게 고시텔을 넘겼다.

문제는 매도 과정이다. A씨 유가족은 보도블록업자인 B씨가 융자금 마련을 위해 A씨에게 대출이 끼어 있는 고시텔의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는 조건과 매달 100만 원씩 주겠다는 조건으로 고시텔 명의를 요구했다고 했다. A씨는 오랜 지기 친구 부탁에 계약서를 쓰지 않고 명의를 B씨에게 넘겼는데 이게 화근이 됐다는 것이다.

B씨는 A씨가 명의이전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상환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상당 금액을 A씨가 계속 갚았다고 유가족은 주장했다.

게다가 B씨는 융자금을 받은 뒤에도 명의를 다시 A씨에게 돌려주지 않고 해당 건물에 대해 재개발을 계획하고 있는 업체에 몰래 팔았다고 했다.

A씨 아내는 "B씨는 남편에게 매달 100만 원씩 받고 고시텔 이자와 원금까지 상환할 수 있어 좋은 것 아니냐고 했다"며 "B씨 자신도 융자를 받을 수 있어 서로 윈윈하는 조건이라고 남편을 설득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고시텔에는 2개 은행의 대출이 끼어있었는데 B씨는 명의를 받은 뒤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남편이 독촉을 하자 그제서야 2개 은행 중 1곳만 상환을 했고 다른 1곳은 남편이 끝내 다 갚았다"며 "그래도 남편은 B씨를 이해하려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서야 B씨가 다른 곳에 고시텔을 넘긴 것을 알게 되면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고 덧붙였다.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B씨로부터 고시텔을 매입한 업체는 철거 용역업체를 통해 고시텔 기물들을 부수며 입주한 거주자들을 내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용역업체 직원들은 고의적으로 해당 건물의 전기와 수도를 끊어 거주자들이 일상적인 생활 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고 했다.

실제로 <더팩트>가 한전과 한국수자원공사 등에 확인한 결과에서도 고시텔의 단전과 단수는 이뤄지지 않았다. 용역업체 직원들이 일방적으로 차단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밀쳐져 쓰러져 있는 거주자 /A씨 유족 제공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밀쳐져 쓰러져 있는 거주자 /A씨 유족 제공

유가족은 이 과정에서 고시텔 거주자들에게 "알아서 나가는 사람들에게 400만 원을 주겠다. 이 정도 돈이면 다른 곳에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제안을 했다고 했다.

그래도 남은 거주자들에겐 200만 원을 주겠다고 제안해 건물에 남아있으면 손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주장했다.

당시 A씨는 B씨와 업체를 상대로 법정 소송을 준비 중이었으며, 업체 역시 A씨를 상대로 명도소송(매수인이 부동산에 대한 대금을 지급했음에도 6개월 동안 점유자가 나가지 않을 때 제기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유가족은 A씨를 비롯해 고시텔 거주자들이 용역업체 직원들이 올 때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당사자들끼리 해결해야 할 일"이라며 방관만 했다는 것이다.

업체가 B씨에게 대금을 지급해 소유권이 넘어온 만큼 거주자들에 대한 폭력이 발생하지 않는 한 경찰 개입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A씨 아내는 "용역 직원들이 올 때마다 남편을 비롯해 거주자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여러차례 출동한 것으로 안다"며 "그런데 경찰은 와서도 보고만 있을 뿐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 "언론 보도에서도 강제 퇴거란 말이 주를 이뤘다. 강제 퇴거 명령은 있지도 않았는데 언론이 그래버리니 고시텔에서 기사를 본 남편은 절망했었다"며 "결국 경찰의 방조와 언론의 허위 보도가 남편을 사지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A씨의 당시 심정은 <더팩트>가 입수한 메모에서도 확인됐다. A씨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던 24일 동안 현실을 비관한 자신의 심정을 7일에 걸쳐 적었다.

경찰과 대치를 시작한 지난달 25일 메모에선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수년간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물 몇 모금이 전부인 하루의 생활과 경찰과의 진전 없는 대화, 친구를 믿었다가 피해를 본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다 5월 5일자를 끝으로 메모를 적지 않았다.

이와 관련, 법조계는 업체가 해당 건물을 매입했다고 해도 거주자가 부당함을 제기해 소송을 걸었거나, 반대로 업체가 명도소송을 진행 중이라면 거주자가 있는 해당 건물에 용역업체 직원들의 침입은 모두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용역업체 직원들이 전기와 수도를 고의적으로 끊거나 잠근 것도 불법에 해당된다. 당연히 강제 퇴거 명령도 있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조세희 변호사(법무법인 율화)는 "A씨가 법정 소송을 진행 중이거나 반대로 업체가 명도소송을 진행 중이라면 퇴거 명령이 나왔다고 볼 수 없다. 용역업체 철거는 불법"이라며 "강제 퇴거 명령이 없었을텐데 출동한 경찰이 권한이 없다고 말한 것은 직무유기라고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강제퇴거나 그런 민사적인 내용에 대해선 저희도 알 수 없는 부분"이라며 "극단적 선택 사건에 대해선 지금 수사 중이라 자세한 말씀을 드리기 힘들다"고 해명했다.

한편 간석동 고시텔 사태와 관련, 일각에서는 인천 효성도시개발구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민과 도시개발 간 갈등도 비슷한 사례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효성지구비상대책위원회가 감사원에 국민감사청구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도시개발업체가 부른 철거용역 인부들이 주민들을 밖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사회단체 관계자는 "극단적 선택은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주민들이 감사원에 국민감사청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확한 감사로 잘못된 부분을 짚어야 한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infact@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