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 노조 “그린병원, 방 빼라”…병원 측 “우리도 속았다. 350명 환자들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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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요양병원에 있는 중정에서 환자들이 산책을 즐기는 모습 / 광주=나윤상기자 |
[더팩트 l 광주=나윤상 기자] 광주 북구 임동에 위치한 그린요양병원의 모습은 다른 요양병원과 사뭇 달랐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위치한 중정은 안락함 자체였다. 환자로 보이는 할머니들이 보행기를 잡고 줄지어 산책을 하는 모습이 이 병원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중정에서 만난 안수기 병원장의 얼굴은 어두웠다. “일평생을 의료인으로만 살아 온 제가 법을 잘 알지 못한 죄가 크다”고 참담한 모습으로 운을 뗀 그는 “선배 의료인이 전남방직과 계약을 맺고 기숙사동에 지금의 요양병원을 차렸다. 50억~60억원을 투자했다 그랬다. 제가 처음 병원을 보고 맘에 들어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40억원을 주고 인수했다. 이곳과 계약할 때 전남방직이 아닌 전방오토㈜와 계약해서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그냥 계열사 정도인지만 알았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임대 연 수를 보장할 수 있냐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계약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린요양병원의 전 병원장인 최석현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전방오토와 전대차계약을 했다. 그것을 안수기 병원장이 그 계약을 인수한 것이다.
안 병원장은 “전대차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전전세라는 것인지도 이제야 알았다. 결코 전대차계약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라며 “만약 그런 줄 알았다면 여기에 40억원을 주고 인수할 필요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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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요양병원 간호사 스테이션이 철문으로 막혀있다. /광주=나윤상 기자 |
이어 그는 보여줄 것이 있다며 기자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그를 따라 찾아간 곳은 병원 곳곳에 있는 커다란 현수막으로 가린 벽이었다.
안 병원장은 “그때만 생각하면 너무 분이 차오른다”고 했다. 그가 보여준 곳은 병실 가운데 있어야 할 간호사 스테이션이었다. “세상에 간호사 스테이션을 이렇게 철판으로 막아버리면 어떻게 하나? 이것은 폭력이다”고 안 병원장은 강조했다.
간호사 스테이션 뿐 아니었다. 약국과 간호사 쉼터 및 환자들 음식을 만드는 주방까지 폐쇄된 상태였다. 전남방직은 계약소멸로 퇴거를 요구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자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해 명도집행를 한 상태였다.
안 병원장은 “저희 병원에 약 350여명의 환자분들이 계신다. 요양병원이다보니 대부분 연세가 많으시다. 그런데 주방을 폐쇄해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드릴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무력감마저 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본인들의 주장이 중요하다고 해도 날이면 날마다 대형 스피커를 병원으로 향해서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대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고 밝혔다
생존권을 돌려달라는 전방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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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요양병원 정문 앞에 전방노조가 천막농성을 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광주= 나윤상 기자 |
그린요양병원 입구에는 수많은 현수막이 어지럽게 휘날리고 있다. 그 뒤로 농성천막과 시위현장에서 들을 만한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국섬유·유통노동조합연맹 전방노동조합 안순환 위원장은 “우리는 생존권을 위해서 이렇게 매일 나오고 있다”고 운을 뗀 그의 얼굴에서 피로감이 느껴진다. “회사가 평동산단으로 가고 나서 약 200여명의 고용이 불안한 상태다. 회사에서는 평동에 2공장을 신축하면 재고용을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2019년 전남방직과 일신방직은 공장 부지를 공업용지에서 상업·주거용지로 용도변경해 주상복합시설, 호텔, 쇼핑시설, 업무시설 등을 조성하겠다는 사업계획안을 시에 제출했다. 그 과정에서 전남방직은 3660억1400만원, 일신방직은 3189억8600만원 등 총 ,850만원으로 '㈜휴먼스홀딩스제1차피에프브이'라는 회사에 매각하기로 하고 휴먼홀딩스는 계약금으로 약 700억원을 지급한 상태다. 그 뒤 잔금지급은 4차례 미뤄지고 있다.
안 위원장은 “잔금지급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그린요양병원이 환자들을 볼모로 불법점유를 하고 있는 이유 때문이다. 영업권을 빙자하여 알박기 하려는 행태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기자가 그런 부분은 사측에서 더 요구할 사항 같은데 이렇게까지 노조가 나서야 하는 다른 이유가 있느냐고 묻자 단호하게 “우리도 2년 이상을 버텨왔다. 200여명의 생존권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을과 을의 싸움 붙이고 뒤로 숨는 전남방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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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요양병원 명도집행으로 폐쇄된 문 / 광주=나윤상기자 |
전남방직에 임대를 한 업체는 그린요양병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방오토는 13개의 물류업체와도 전대차 계약을 맺었다. 13개 업체 중 하나였던 SK유통 윤일석 대표는 “결국 핵심은 전전세다”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현재 13개 업체는 모두 이전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쫓겨난 것이다.
윤 대표는 “세입자는 임대받은 곳에 여러 가지 투자를 한다. 그런데 갑자기 임대계약이 말소되었다고 나가라고 한다면 누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며 “전대차 계약은 법이란 이름의 불공정의 전형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윤 대표는 “큰 기업들은 페이퍼컴퍼니를 내세워 놓고 임대인들과 전대차 계약을 맺는다 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업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더 깔끔한 사업이라는 것이다”며 "이런 전대차 계약은 결국 힘없는 임대인들에게 고통만 안겨 줄 뿐"이라고 소리를 높였다.
윤 대표는 그린요양병원 앞 전방 노조 시위에 대해서도 “전방은 뒤로 쏙 빠져있다. 결국 고용승계를 빌미로 약자인 노조를 앞세워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을과 을의 싸움을 붙이고 있는 격이다”고 격앙했다.
중재해야 할 광주시도 난처
이번 사태에 대해 중재안을 내놓아야 할 광주시 관계자는 “사인들간의 계약관계에 광주시가 나설 수 있는 부분은 없다”라며 “법원판결이 났고 명도까지 끝난 상황에서 행정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소하기는 역부족이다. 여러 이해관계자가 상충하다보니 광주시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전방 측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정도다”라고 난처해했다.
이번 사태는 많은 이들이 사회질서의 마지막 보루가 법이라고 느끼지만 법이 사회적 정의와 동의어라고 인식되지 않은 사례라 할 수 있다.
kncfe00@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