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때면 꿈속에 엄마 얼굴이 모자이크로 나왔다"
입력: 2022.05.02 12:35 / 수정: 2022.05.02 12:35

35년만에 상봉한 모녀…부산진경찰서 실종팀 리멤버 프로젝트

35년 만에 어머니를 만난 박정옥(가명·41)씨는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부산=조탁만 기자.
35년 만에 어머니를 만난 박정옥(가명·41)씨는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부산=조탁만 기자.

[더팩트ㅣ부산=조탁만 기자] "지금까지 잘 살아왔어요. 가정도 꾸렸고, 일도 잘 하고 있고요."

2일 오전 10시 30분쯤 부산진경찰서 7층 대강당.

35년 만에 어머니를 만난 박정옥(가명·41)씨는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1987년 당시 5살이었던 박씨는 전주시 한 길거리에서 홀로 울고 있었다. 가족들과 외가집에 갔다가 집으로 귀가하던 도중 터미널에서 길을 잃었던 것이다.

이후 보육원에서 자랐다. 너무 어렸던 터라 자신의 생년월일과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행정기관에 신고만 했더라도 이렇게 긴 세월 서로 그리워했을리 만무했다.

박씨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씩씩하게 잘 살아왔다. 그럼에도 잃어버린 가족은 언제나 마음 한 켠에 아픔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생일만 되면 가족들이 더 생각났다. 박씨는 "생일날 많이 울었다. 3월 5일이 생일이다.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보육원에서 생일을 정해줬겠죠"라고 말했다.

박씨는 오랜 고민 끝에 경찰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부산진서 실종팀은 각종 자료를 검토해 정옥씨로 추정되는 비슷한 연려의 대상자를 556명 찾아냈다. 신고 내용을 토대로 집중적인 탐문 끝에 박씨의 가족들을 찾았다.

그럼에도 정확한 판단을 위해 모친의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고, 박씨의 유전자와 일치한다는 회신을 받았다.

이날 이자리에선 박씨와 그의 어머니가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다. 이들은 못내 아쉬운 마음을 차근차근 대화로 풀어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얼굴엔 그제서야 웃음꽃이 폈다.

이들은 기자들과 만나 "먹고 살기도 힘들었고 사람을 찾기도 어려운 시기였어요. 저도 그 때 너무 어려서 잘은 모르지만 형제들이 정옥이를 찾아다녔던 기억이 나요"라고 말했다.

또 "명절 때 터미널에서 엄마 아빠가 화장실 간 사이 사라졌다"며 "인근 동사무소에 가서 인상 착의와 이름 알려주며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봤으나, 실종 신고를 먼저 해야지만 찾을 수 있었다.. 당시 동생 이름이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들은 삶에 치이다보니 헤어짐이 길어졌다고 울먹였다. 박씨의 언니는 "죄책감에 항상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씨도 "꿈을 꿀 때면 엄마 얼굴이 나오는데 모자이크 처리가 돼서 나왔다. 얼굴이 기억이 안나서이다. 아플때 마다 그렇게 나왔다. 감기가 걸리고 그러면..."

박씨 어머니는 "앞으로 오며 가며 하고 명절 때 만나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하다 15년 전 운명을 달리한 박씨의 아버지가 "하늘에서 무릎꿇으며 미안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는 가족들의 말에 박씨는 "아버지 얼굴을 모른다. 산소를 꼭 찾아가보고 싶다"며 말끝을 흐렸다.

2022년 5월 2일 말괄량이 소녀가 엄마가 됐다. 그의 엄마는 흰머리가 수두룩했다. 이들의 긴 기다림 끝에 다시 가족의 역사를 새로 쓴 날이었다.

hcmedia@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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