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독립운동가 장재성·장매성을 기억하다
입력: 2022.04.27 17:26 / 수정: 2022.04.27 17:26

광주 동구, 독립운동가 장재성·장매성 남매가 생전 거주했던 집터에 안내판 설치

광주 동구는 독립운동가 장재성・장매성 선생이 생전 거주했던 집터에 안내판을 설치했다. / 동구청 제공
광주 동구는 독립운동가 장재성・장매성 선생이 생전 거주했던 집터에 안내판을 설치했다. / 동구청 제공

[더팩트 l 광주=나윤상 기자] 광주 동구는 27일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 장재성, 장매성 남매가 생전 거주했던 집터에 안내판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이번 안내판은 4번째 작업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끈 장재성, 장매성 남매가 살았던 금동 97번지(옛 금계리 97번지) 집터에 안내판을 설치한 것이다. 당시 남매가 살았던 집은 사라지고 현재 벽돌 건물의 주택이 들어서 있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출발한 기차가 나주역에 도착했을 때 개찰구에서 일본인 학생 3명이 광주여고보를 다니던 여학생들을 밀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박준채가 일본인 학생을 꾸짖으면서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의 마찰이 생긴게 광주학생운동의 시작이다.

장재성(1908~1950)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으로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 5학년이었던 1926년 왕재일 등과 함께 비밀단체 ‘성진회’를 조직한 인물이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발하자 학생시위를 주도했고 이로 인해 관련자 중 가장 무거운 4년 형을 선고받았다. 일제에 맞서 싸운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지만 해방 후 사회주의 활동을 이유로 현재까지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지 못했다.

장재성의 누이인 장매성(1911~1993) 또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 독서회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검거돼 광주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장재성과는 달리 1990년에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하지만 광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이 두 독립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

최근 지역 연구자들 사이에서 장재성과 장매성의 이름을 바로 세우고 업적을 알리려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독립운동가 김한동 선생 / 김한동 선생 유족 제공
사진은 독립운동가 김한동 선생 / 김한동 선생 유족 제공

또한 독립운동가 김재동, 김한동 형제도 비슷한 경우다. 김재동은 독립유공자로 국가에서 인정을 받았지만 동생인 김한동은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한 투사로 항일투쟁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면서도 사회주의 이력이 있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철저하게 외면을 받았다.

국가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시민들이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2021년에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는 시민의 이름으로 ‘자랑스러운 독립유공자’ 서훈패를 증정하기도 했다.

광주에서 잊혀진 독립운동가를 기억하는 운동이 어떻게 시민들의 가슴에 파고들지 관심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kncfe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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