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못구해 루마니아·폴란드 전전…각계 도움 간신히 비자 받아 17일 광주 안착
여권이 없어 비자를 받지 못해 긴박한 시간을 보내며 애태우던 김루샤(오른 쪽 두번째)씨가 지난 17일 마침내 광주 고려인 마을에 안착, 신조야 대표(왼쪽 두번째)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고려인마을 제공 |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우크라이나 고려인 난민 ‘김루샤’의 한국행은 가슴 졸이는 긴박한 여정이었다. 광주 고려인 마을 신조야 대표와 이용빈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광산 갑)의 헌신적인 노력이 그녀의 한국행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갑작스런 전쟁으로 간신히 신분증만 가지고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를 탈출한 김루샤(66세)씨가 한달여 동안 루마니아 대사관과 폴란드 대사관을 전전하다 마침내 비자를 받아 지난 15일 광주에 안착했다.
김류샤씨는 러시아의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된 미콜라이우를 갑자기 탈출하느라 가방 하나와 신분증만 가지고 몰도바를 거쳐 루마니아에 도착했다. 그동안 새롭게 정착한 미콜라이우를 떠나는 것이 아쉬워 여권은 만들 생각조차 못했다.
서둘러 탈출하느라 여권을 만들지 못하고 신분증만 가지고 루마니아 주재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비자를 신청했지만 여권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폴란드는 괜찮을까 싶어 루마니아 난민센터를 떠나 폴란드로 달려갔다. 하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폴란드 주재 한국대사관도 여권이 없으면 비자를 내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되풀이 했다.
혹여 여행증명서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폴란드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을 찾아가 여행증명서를 받아 제출했지만 그마저도 타국으로 갈 수 있는 증명이 아니라 본국 귀환 때 필요한 증명이라며 또 거부당했다.
김루샤는 이 소식을 고려인마을에 전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날마다 걸려오는 전화에 신조야 대표도 한숨을 내쉬며 도움 방법을 찾았지만 방법이 없어 애를 태웠다. 결국 지난 20여년 동안 고려인마을 주치의로 활동했던 이용빈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사태가 다급해진 그 시간 마침 이용빈 의원은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고려인 난민 지원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폴란드 현지에 가있는 상황이었다. 소식을 접한 이 의원은 폴란드 난민센터로 달려가 현장을 확인한 후 신분증만 있어도 비자를 발급할 수 있도록 외교부와 법무부의 협조를 받아냈다. 다음날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이 보도됐다.
신조야 대표는 보도된 내용을 급하게 김루샤씨에게 전달하며 주한 폴란드대사관을 방문, 비자를 신청하도록 권유했다. 김씨는 대사관을 방문, 보도자료를 보여주며 비자를 내 줄 것을 간청했다. 보도자료를 살펴 본 대사관 직원이 이번에는 태도를 바꿔 관련 서류를 접수하며 ‘당신이 신분증만 가지고 비자를 발행하는 첫 번째 사례’ 라며 반색했다.
일주일의 초조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비자를 손에 쥐자 광주고려인마을에 소식을 알렸다. 고려인마을은 이 소식을 접하자 즉시 항공권을 발행해 전송했다. 김루샤는 16일 저녁 바르샤바공항을 출발 17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어 광주에 도착한 김루샤씨는 신조야 대표와 재회하며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김루샤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났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와 인척관계로 강제 이주 이후 토굴생활을 하며 어렵게 생활하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다.
신 대표를 만난 김루샤씨는 어릴 때 기억을 되살리며 ‘이렇게 도움을 받을 줄 꿈에도 몰랐다’ 며 한없이 기뻐했다. 또한 "이제는 선조들의 강제이주에 이어 전쟁으로 인한 유랑민의 대물림이 이곳 광주에서 끝나기를 바란다" 는 간절한 소망도 전했다.
한편, 고려인마을은 지역사회의 후원을 받아 우크라 전쟁난민이 국내 입국할 수 있도록 항공권을 지원한 후 광주에 도착하는 고려인동포들의 고단함을 덜어주고 조속한 정착을 위해 원룸 임대보증금 200만원과 월세 두달치, 긴급구호품과 생필품, 그리고 자녀교육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120명이 지원을 받았으며, 향후 입국 비자를 받고 국내 입국을 원하는 500여명이 대기하고 있어 동일한 지원을 위한 모금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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