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우크라이나 탈출 고마리노 “한국 정부 지원 정말 절실하다”
입력: 2022.04.12 16:53 / 수정: 2022.04.12 16:53

거주 도시 미콜라이프 미사일로 파괴…징집령 묶인 남편 두고 어머니·조카들만 데리고 피난

우크라이나를 탈출, 지난 3월 30일 광주 고려인 마을(광산구 월곡동)에 도착한 텐밀라 고려인 일가족. 사진 오른쪽부터 텐밀라(어머니), 고마리노(딸), 아나스타시아(손녀), 막심(손자)./광주=박호재 기자
우크라이나를 탈출, 지난 3월 30일 광주 고려인 마을(광산구 월곡동)에 도착한 텐밀라 고려인 일가족. 사진 오른쪽부터 텐밀라(어머니), 고마리노(딸), 아나스타시아(손녀), 막심(손자)./광주=박호재 기자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광주 고려인마을(광산구 월곡동)이 우크라이나 탈출 고려인 난민들의 비상구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요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미 마을에 안착한 100여 명의 난민들 지원은 물론, 아직 폴란드에 대기 중인 남은 난민들의 귀국을 위해서도 동분서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감당하기 힘든 난제들이 나날이 쌓여가고 있다. 그동안 답지한 기금으로 항공권을 지원하고, 안착한 이들에게 2개월 원룸 임대료 등 당장에 필요한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는 ‘발등의 급한 불끄기’로 해소될 단순한 과제가 아니다.

안착한 주민들 중 전쟁의 경과에 따라 일부는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것이고, 또 일부는 고려인 마을에 영주할 것이다. 이미 집과 마을이 파괴된 곳에서 탈출한 난민들은 어차피 고려인 마을에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광주의 고려인 마을이 난민 귀국자들을 돕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우크라이나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고려인 난민들이 광주에 가겠다는 국제전화를 신조야 대표에 잇따라 걸어오는 난감한 상황이기도 하다. 마을 공동체의 노력과 시민사회의 십시일반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 지원에 나설 움직임이 없다.

지난 달 30일 귀국한 우크라이나 난민 텐밀라 일가족을 <더팩트>가 12일 오전 고려인마을센터에서 만났다. 어머니 텐밀라, 딸 고마리노, 손녀 아나스타시아, 손자 막심 등 네 사람이 인터뷰에 자리를 함께 했다. 이들 일가족은 오데사 위쪽에 있는 도시 미콜라이프를 전쟁 발발 직후 탈출, 시골에 있는 할머니 집에 머물다 폴란드 난민촌을 거쳐 지난 달 30일 고려인마을에 도착했다.

-예기치 못한 전쟁으로 우크라이나를 탈출했다. 평상시에도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는지?

나는(딸 고마리노) 이미 한국에 이주해 고려인 마을에 살고 있었고, 어머니, 남편, 동생의 가족은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었다. 가족들을 보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갔다가 전쟁 때문에 발이 묶였다. 남편도 함께 오고 싶었지만 우크라이나는 지금 18세부터 60세까지 나라를 떠날 수 없다. 그래서 어머니와 동생의 자녀들만 데리고 피난에 나섰다.

고단한 피난의 시간을 보내고 광주에 안착했지만 모든 게 낯설고 당혹스러워 어두운 표정으로 굳어있는 조카들을 애처로운 눈길로 쳐다보고 있는 고마리노./광주=박호재 기자
고단한 피난의 시간을 보내고 광주에 안착했지만 모든 게 낯설고 당혹스러워 어두운 표정으로 굳어있는 조카들을 애처로운 눈길로 쳐다보고 있는 고마리노./광주=박호재 기자

-우크라이나 탈출 당시 현지 상황은?

가족이 살고 있는 도시 미콜라이프는 크림반도 쪽 러시아 접경인 헤르손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않은 도시다. 이 때문에 전쟁 발발 직후부터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 오데사에서 발사된 미사일로 도시가 파괴되고 생명이 위태로워져 피난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당시엔 전쟁의 포화가 미치지 않은 시골 할머니 집에 머물다 그곳도 다시 위험해지자 폴란드를 거쳐 이곳에 왔다.

-난민촌 생활은 어땠는가?

특별한 불편 없이 살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국경을 넘었다. 옷도 없었고 먹을 것도 챙기지 못했다. 난민촌에서 옷도 보급 받고 음식도 제공됐다. 잘 지냈다. 고맙게 생각한다.

-살고 있던 도시의 상태는 어떤지?

많이 파괴됐다. 가족이 살던 집도 사라졌다. 다행히 어머니가 살던 집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샐러드와 같은 반찬을 만들어 파는 생업을 갖고 계신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돌아가실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 때가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전쟁이 빨리 끝나 평화를 되찾았으면 좋겠다.

-광주 시정부나 한국 정부에 바라는 것은 없는지?

현재는 고려인마을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 별 문제없이 살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다. 도움의 손길이 더욱 필요해질 것이다. 고려인마을의 지원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벅찬 일이다. 한국정부가 우크라이나 정부를 상대로 대대적인 지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forthetru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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