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기업가의 도전과 좌절...세계적 신기술에도 '진입장벽'
입력: 2022.03.28 14:12 / 수정: 2022.03.29 00:13

40대 김우현씨, 정유사에 독점공급 유럽산 WAFI 대체에 젊음 바쳤건만 ‘허사’

김우현 (주)신일 이사가 WAFI 생산기지로 사용할 순천시 율촌산단내 공장부지 전경. /유홍철 기자
김우현 (주)신일 이사가 WAFI 생산기지로 사용할 순천시 율촌산단내 공장부지 전경. /유홍철 기자

[더팩트ㅣ순천=유홍철 기자] "지금은 고인이 된 삼성 이병철 회장님과 현대 정주영 회장님이 현 시점에서 사업을 시작한다면 성공 할 수 있을까요?"

정밀화학 제품인 WAFI 제조업에 도전한 전남 순천의 40대 청년 창업가 ㈜신일 김우현 이사의 돌발 질문이다.

현재와 같은 산업구조 속에서 이 회장이나 정 회장 같은 뛰어난 경영 수완을 갖고 있어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자문자답이다.

김 이사는 "이 회장님과 정 회장님이 사업을 시작할 때는 다양한 기회들이 샘솟고 있던 시절이었고 규제도 거의 없었으며 인건비도 저렴하여 사업 환경이 매우 좋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의 국내 창업 환경과 기업 현실은 기회의 문이 닫히고 성공의 사다리가 끊기다시피한 상황이란 것이다.

당시 상황과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제 아무리 뛰어난 사업가라도 창업해서 성공하기 쉽지않다는 게 김 이사 나름의 진단이다.

청년 기업가가 이같은 비관적 얘기를 꺼내놓는 것은 몸소 느낀 현실의 벽 앞에서 절망과 좌절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WAFI 시장의 경우 영국에 본사를 둔 인피니움(Infineum)이 WAFI를 정유4사에 지난 30년 동안 독점 공급하고 있다. 연간 300억원이 넘는 외화가 고스란히 유출되고 있는 셈이다.

WAFI는 SK에너지, GS칼텍스, 에스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4대 정유사가 생산하는 여러 가지 석유류 중에서 경유 제품의 저온 시동불량을 해결하기 위해 첨가하는 필수 화학 소재이다.

△ 높은 진입장벽

이같이 외국 회사가 국내 WAFI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를 깨뜨리기 위해 WAFI 제조업에 뛰어든 김 이사는 지난 5년 이상 동안 전 재산과 열정을 투입하며 절치부심하고 있다.

김 이사는 자체 연구 투자비 4억원, 국가 연구비 지원 3억원 등 모두 7억원을 투입해서 고분자 권위자인 서울대학교 이종찬 교수팀과 WAFI 국산화팀을 결성하여 약 5년간 연구개발을 진행했다.

죽음의 계곡을 넘어 마침내 △필터 막힘점(CFPP) △유동점(PP) △왁스 분산도(WDI)등 국내 4대 정유사가 요구하는 WAFI 규격을 모두 통과하는 성과를 냈다.

기술력 확보를 시작으로 WAFI 소재 특허등록을 비롯하여 국가 신기술(NET), 신기술 적용제품 확인 등의 모든 절차를 마무리 해놓고 국내 4대 정유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대학교와 WAFI 연구 논문을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인 'European Polymer'에 발표하는 등 그 동안의 연구성과를 학술적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김 이사는 기술개발과 동시에 순천시 율촌산단에 공장부지와 설비투자에 13억원을 투입해 놓고 있으며 향후 100억원을 투자해 50명 이상의 고용한다는 야심찬 설계를 짜놓았다.

하지만 청년 기업가의 이같은 야심찬 계획은 해외 공급사가 4대 정유사에 독점 공급하는 독점 카르텔에 가로막혀 희망의 날개를 펴보지도 못한 채 도산 위기에 처했다.

김 이사는 "㈜신일이 확보한 WAFI 소재 기술 수준은 현재 국내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해외 공급사와 동등한 수준까지 올라온 상태"라고 자부하고 있다.

이같이 소재 기술력은 모두 확보했으면서도 실용화 단계로 나아가지를 못할 뿐이다. 정유 4사가 ㈜신일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있어서 WAFI 소재를 경유에 첨가할수 있는 테스트 베드가 없기 때문이다.

(주)신일은 WAFI 생산 기술력을 수요처가 요구하는 수준 이상으로 확보했고 국가신기술(NET)까지 획득하는 등 모든 절차를 갖춰놓고 수요처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유홍철 기자
(주)신일은 WAFI 생산 기술력을 수요처가 요구하는 수준 이상으로 확보했고 국가신기술(NET)까지 획득하는 등 모든 절차를 갖춰놓고 수요처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유홍철 기자

△ 정부의 사업화 지원 절실

이러한 문제는 국내 4대 정유사가 문을 개방해 주는 것이 일차적 관문이지만 정부가 실용화 단계로 나아갈수 있도록 지원이 부족한 것도 김 이사로선 매우 애석한 대목이다.

김 이사는 일본과 중국의 중소기업 지원책을 예로 들었다. 음극재 분야에서 전 세계 선두 업체로 성장한 일본의 ‘히타치 화성’의 성장 배경을 참고할 만하다는 것이다.

음극재 수요 업체인 대기업 ‘산요’와의 기술개발 협력 및 구매 확약 덕분에 안정적으로 기술 개발을 이어나갈수 있었고 그 결과 전 세계 선두업체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또 중국의 경우도 중소기업 육성책의 하나로 정부가 보조금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요처에 연구개발된 기술을 강제로 사용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같이 중국이나 일본처럼 정부 보호 아래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어렵지 않게 성장 가도를 달리는 사례가 적지않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가 보조금 중심의 연구개발 정책에 집중할 뿐 개발된 기술력이 실현되는 실용화 단계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이 방치되다시피 하다보니 단순 연구·개발에 그치는 사례가 빈발하는 문제점은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이사는 "연구·개발된 기술이 사업화로 나갈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말하고 "정부 지원의 방향이 연구와 사업화로 균형을 찾는 것이 시급한 실정이다"고 하소연한다.

△ 정밀화학 소재 국산화 열망

김 이사는 최근 요소수 사태에서 보듯이 작은 소재 하나라도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할 경우 국가 물류 체계가 교란되는 등의 심각한 피해를 목격하고 경험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WAFI 소재는 동절기 경유 제품 생산시 필수적으로 첨가되는 화학 소재이기에 해외 기업에 독점 구조를 허락하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국내 군용장비 대부분이 경유제품을 사용하고 있어서 동절기 WAFI 소재를 첨가하지 못하게 되면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해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글로벌 Supply-Chain의 허약함을 경험한 이상 주요 소재, 부품, 장비 등 소위 소·부·장의 한 분야인 WAFI 소재의 제조‧공급도 국내 물류체계 안정화와 방위산업 차원에서라도 국산화를 정부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일본과의 무역전쟁으로 2019년 소·부·장 국산화 정책을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할 때 희망의 끈을 갖고 지켜보았단다. 결국 이벤트 위주의 정책만 남발할 뿐 실질적인 지원은 없어서 실망했다는 게 청년 기업가를 꿈꾸는 김 이사의 솔직한 심정이다.

△ 김 이사의 WAFI 인연

김 이사가 WAFI라는 존재를 처음 접한 것은 8~9년 전 중국의 화학 공장과 무역업을 하면서 알게 됐다. 중국의 한 회사가 WAFI 제품 개발에 성공하여 중국 정유사에 공급을 막 시작하고 있었다.

국내 정유업계 관계자와 대화 과정에서 WAFI 소재는 전 세계에서 몇 군데에서만 생산하는 정밀화학 제품이어서 중국은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 이사는 당시 한국의 산업 수준 및 기술력은 중국보다 앞선다고 생각했었기에 중국이 정밀화학 소재를 이미 국산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고 WAFI 소재에 흥미를 갖게 됐다.

중국 회사 대표가 한국내 WAFI 시장 진입을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했지만 국내 정유사에서 요구하는 WAFI 품질에 기술력이 미치지 못한 사실도 알게 됐다.

만일 중국 회사가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해서 국내 정유사에 공급하더라도 결국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유럽에서 중국으로 공급선을 교체할뿐 WAFI 소재를 공급받기 위해서는 해외에 의존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술력만 확보하면 중소기업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WAFI 국산화를 위해 고난의 행군을 택한 셈이다.

산업 고도화와 물류 체계 안정화, 연간 300억 넘는 외화 유출방지, 양질의 일자리 제공, 청년 기업가 양산 등의 과제를 짊어진 시골의 청년 사업가.

윤석열 당선자의 차기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본다는 김 이사의 희망은 이뤄질 것인가.

forthetru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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