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을 보관했던 광양시 망덕포구 정병욱의 생가 내부와 전시된 시집 복사본 모습. /광양시 제공

[더팩트ㅣ광양=유홍철 기자] 잊혀질 뻔 했던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보존, 널리 알린 저명한 국문학자 백영 정병욱 탄생 100주년을 맞는 25일 광양시 망덕포구 정병욱 가옥이 새삼 조명받고 있다.

정병욱의 가옥은 "하늘을 우러러 / 한 줌 부끄럼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로 시작하는 ‘서시’를 비롯 윤동주의 유고시집이 오늘날 전해지는 결정적 역할을 했던 곳이다.

정병욱의 연희전문대 선배였던 윤동주는 1941년 연희전문 졸업 기념으로 시집 출간을 위해 친필로 쓴 19편의 시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묶어, 손수 3부를 제본해 이양하 지도교수와 평소 아끼던 후배 정병욱에게 준다.

시대적 상황으로 시집 출간은 좌절되고,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 혐의로 수감된 윤동주는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차디찬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둔다.

정병욱은 학도병으로 끌려가면서도 윤동주에게 받은 친필 시고를 광양의 어머니에게 맡기고, 명주 보자기에 곱게 싸인 시고는 가옥 마루 밑 항아리 속에서 시대의 아픔을 겪었다.

윤동주와 이양하 교수가 갖고 있던 시고는 행방을 잃었다. 다행히도 망덕포구 정병욱 가옥에 숨어지내던 시고는 살아남아 1948년 1월 30일 유고집으로 출간되면서 윤동주를 시인으로 소환했다.

이같은 사연을 간직한 정병욱의 생가는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이라는 명칭으로 등록문화재 제341호에 올라 일제 치하의 뼈아픈 역사와 두 사람의 시린 우정을 기리고 있다.

윤동주와 정병욱이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고풍스런 사진 한 장이 둘 사이의 우정의 깊이를 투영하고 있다.

1922년 3월 25일에 출생한 정병욱은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1948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부산대, 연세대학교 교수를 거쳐 27년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고전시가, 고전소설 등 고전문학의 초석을 놓고 국어국문학회를 창립했으며, 판소리학회를 창립해 판소리 연구와 대중화에 힘썼다. 한문학, 서지학에서도 두루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또 하버드대와 파리대학 초빙교수로 활동하는 한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한국 문학 부문을 집필하기도 했다. 미국, 프랑스, 일본 등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해 한국 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업적으로 1967년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 1979년 외솔상, 1980년 삼일문화상을 받았으며, 1991년 한글날에는 고전시가 연구에 일생을 바친 공로를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을 추서 받았다.

광양시 망덕포구에 자리한 정병욱의 생가 모습 / 광양시 제공

정병욱이 훗날 펴낸 회고록 ‘잊지 못할 윤동주 형’에서 "‘내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려주게 한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고 말할 정도였다.

정병욱은 윤동주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윤동주의 시 ‘흰 그림자’를 뜻하는 백영(白影)을 자신의 호로 삼기까지 했다.

광양시 김성수 관광과장은 "정병욱의 호 백영(白影)처럼 윤동주의 시를 세상에 알려 한국 문학을 빛낸 흰 그림자로만 조명되어 왔다"고 말하고 "한국의 고전시가와 판소리 등을 연구하고 계승한 탁월한 업적과 시대의 아픔을 이겨낸 문학정신, 숭고한 우정을 기리는 차원에서 정병욱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망덕포구 생가를 찾아보길 권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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