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지도위원, "사측에 한명도 자르지마라"…노동계 '릴레이' 감사인사
김진숙(61)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25일 오전 11시 부산 영도구 HJ중공업(전 한진중공업) 사내 단결의광장에서 "탄압과 분열의 상징인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여러분은 미래로 가십시오"라고 이같이 외쳤다./부산=조탁만 기자 |
[더팩트ㅣ부산=조탁만 기자] "단식을 해도, 애원을 해도 열리지 않던 문이 오늘에야 37년만에 열렸다."
김진숙(61)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25일 오전 11시 부산 영도구 HJ중공업(전 한진중공업) 사내 단결의광장에서 "탄압과 분열의 상징인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여러분은 미래로 가십시오"라고 이같이 외쳤다.
HJ중공업 전신인 한진중공업의 푸른색 작업복과을 입고 안전모를 쓴 그는 가슴팍에서 꼬깃꼬깃하게 접힌 종이를 꺼내 소감을 말했다.
이어 "검은 보자기에 덮어 쓰인 채 어딘지도 모르고 끌려간 날로부터 37년, 어용노조 간부들과 관리자들 수십, 수백 명에게 만신창이가 된 채 공장 도로 앞을 질질 끌려다니던 그 살 떨리던 날로부터 37년이 흘렀다"고 했다. 37년만에 회사로 출근한 그는 감격에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 북받치는 날들로부터 37년 만에 여러분 앞에 섰고, 저에게는 오늘 하루가 37년이다"고 덧붙였다.
김 지도위원은 동지들에게 감사의 말을 건넸다.
그는 "더는 울지 않고 더는 죽지 않는 그리고 더는 갈라서지 않는 이 단결의 광장에 조합원들의 함성으로 꽉 차는 미래로 거침없이 당당히 가십시오"라고 말했다.
또 "여러분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세월, 37년의 싸움을 오늘 저는 마친다"고 덧붙였다.
이어 새로운 경영진과 정치권에겐 당부의 말을 전했다.
그는 경영진을 향해 "단 한명도 자르지마십시오. 하청노동자 차별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제 복직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엔 "(중대재해와 관련) 유족과 노동자의 말을 들으십시오. 그래야 차별이 없어집니다"고 강조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25일 경영진을 향해 "단 한명도 자르지마십시오. 하청노동자 차별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제 복직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엔 "(중대재해와 관련) 유족과 노동자의 말을 들으십시오. 그래야 차별이 없어집니다"고 강조했다./부산=조탁만 기자. |
김 지도위원의 명예 복직이자 퇴직인 이번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노동계 인사들이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제주 강정마을 투쟁을 이끈 문정현 신부는 "김진숙 위원의 복직으로 노동운동은 이제 한발 떼기를 했다"며 "한발짝 더 떼어 노동 해방을 이루자"고 말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복직한다’ 네 글자 쓰는데 37년이 걸렸다. 김 위원은 어떻게 살아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편, 김 지도위원은 HJ중공업이 대한조선공사이던 1981년 용접공으로 입사했다. 당시 그의 20대였다. 1986년 노동조합 대의원에 당선된 뒤 노조 활동을 했다. 그 이유로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같은 해 회사는 강제적인 부서 이동을 명령했다. 김 지도위원이 즉각 반발했고, 결국 해고했다.이게 37년의 긴 여정의 시작점이다. 그간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법적 소송 등 복직 투쟁을 벌였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때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영도조선소 내 크레인 위에 올랐다. 무려 309일 동안 고공 농성을 벌여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노동계를 대변하다 보니 어느덧 세월이 훌쩍 흘렀다. 그가 해고 당한 회사명이 대한조선공사에서 한진중공업(1989년), 그리고 HJ중공업(2021년)으로 바꼈다. 사명이 바뀐 세월 동안 김 위원은 2020년 만 60세 정년을 넘겨 버렸다.
법적으로 복직의 길이 막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노사 양측은 지난 23일 전격적 합의를 하면서 김 지도위원의 명예 복직이 성사됐다.
장기 농성의 상징이었던 영도조선소 정문 앞 천막 농성장을 자진 철거하면서 그의 긴 여정은 마침표를 찍었다.
김진숙(61)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25일 오전 11시 부산 영도구 HJ중공업(전 한진중공업) 사내 단결의광장에서 "단식을 해도, 애원을 해도 열리지 않던 문이 오늘에야 37년만에 열렸다"고 말했다. /부산=조탁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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