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강제노역 박해옥 할머니 회한 안고 별세, 남은 생존자 2명
입력: 2022.02.17 15:49 / 수정: 2022.02.17 15:49

순천 초등 졸업 후 나고야항공기제작소 동원, “일본이 어떤 아픔 줬는지 젊은 학생들이 알아야” 말 남겨

미쓰비시 강제노역 소송 청구인인 박해옥 할머니가 향년 93세 나이로 투병끝에 별세했다. 순천이 고향인 박 할머니는 순천 남초등학교 졸업 직후 미쓰비시 일본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강제 동원됐었다./근로정신대 시민모임 제공
미쓰비시 강제노역 소송 청구인인 박해옥 할머니가 향년 93세 나이로 투병끝에 별세했다. 순천이 고향인 박 할머니는 순천 남초등학교 졸업 직후 미쓰비시 일본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강제 동원됐었다./근로정신대 시민모임 제공

[더팩트 ㅣ 광주=박호재 기자] 일제강점기 미쓰비시중공업으로 동원돼 강제노역 피해를 입은 박해옥(朴海玉.1930.9.) 할머니가 회한을 풀지 못한 채 투병 끝에 16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박 할머니의 별세로 2018년 대법원에서 승소한 미쓰비시 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원고 5명 중 생존자는 이제 2명(양금덕. 김성주)으로 줄었다.

고인은 전남 순천 출생으로, 순천남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944년 5월 말 일본인 교장선생님의 거듭된 회유와 압박에 못 이겨 일본 나고야에 위치한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동원됐다.

일본 나고야항공기 제작소로 동원된 소녀들이 기숙사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근로정신대 시민모임 제공
일본 나고야항공기 제작소로 동원된 소녀들이 기숙사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근로정신대 시민모임 제공

일본인 교장은 "일본에 가면 학교도 보내주고 돈도 벌수 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할 수 있다"며 일본에 갈 것을 종용했다. 그 뿐 아니라, "너희 언니가 학교 선생이니까 네가 앞장서야 하지 않겠느냐"며 거듭 압박했다. 고인에 따르면, "언니가 학교 선생이었는데, 자칫하면 언니 신상에 해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거부하기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강력히 반대로 교장한테 일본에 갈 수 없다고 했더니 "대신 부모가 경찰에 잡혀가게 될 것이다고 협박해 결국 어린 마음에 가족이 다칠까봐 결국 교장의 말을 들어야 했다"고 증언했다.

고인은 굶주림을 견뎌가며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해방 후 귀국했다.

2013년 4월 광주지방법원 재판 방청을 위해 동료 할머니들과 함께 법정으로 향하는 박해옥 할머니(맨 오른쪽에서 두번째)/근로정신대 시민모임 제공
2013년 4월 광주지방법원 재판 방청을 위해 동료 할머니들과 함께 법정으로 향하는 박해옥 할머니(맨 오른쪽에서 두번째)/근로정신대 시민모임 제공

뒤늦게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와 일본 지원단체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등에 힘입어 1999년 3월 1일 일본정부 및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했지만, 10여년에 걸친 법정 투쟁 끝에 2008년 11월 11일 일본 최고재판소에서도 최종 패소했다.

일본 소송 패소의 아픔이 아직 가시기도 전, 2009년에는 뒤늦게 일본정부(후생노동성 사회보험청)가 후생연금 탈퇴 수당금 명목으로 고작 99엔을 지급해 또 다시 마음의 상처를 입어야 했다.

이후 2012년 10월 24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1심, 2심 승소에 이어 6년 1개월여만의 소송 끝에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 3년 3개월이 지나도록 아직 배상 이행은커녕 사죄 한마디 못 듣고 있는 상황이다. 미쓰비시중공업이 판결 이행을 거부한 데다 일본정부까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함에 따라 원고 측은 미쓰비시중공업이 한국 내에 가지고 있는 상표권, 특허권에 대해 압류 등 강제집행에 나선 상태다.

2017년 4월 박해옥 할머니가 문안인사차 댁을 찾은 강제노역 할머니들을 돕는 일본 내 시민단체 나고야소송 지원단 다카하시 마코토 대표의 손을 맞잡고 있다./근로정신대 시민모임 제공
2017년 4월 박해옥 할머니가 문안인사차 댁을 찾은 강제노역 할머니들을 돕는 일본 내 시민단체 나고야소송 지원단 다카하시 마코토 대표의 손을 맞잡고 있다./근로정신대 시민모임 제공

고 박해옥 할머니 건(상표권 2건)의 경우 지난해 7월 20일 미쓰비시중공업 측의 항고가 기각된 데 이어, 12월 27일 대법원에서 재항고마저 기각돼, 압류가 최종 확정됐다.

광주에서 오랫동안 투병해 오던 고인은 2019년 가을 경 자녀들이 있는 전주로 옮겨 지금껏 한 요양병원에서 생활해왔다. 건강을 회복해 광주에 다시 오겠다며 남구에 거주하던 집과 생활하던 물품도 그대로 두고 가셨지만 결국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고인은 "지난날 우리들이 일본한테 어떤 아픔을 겪었는지 젊은 학생들한테 일러줘야 한다"며 "10대 어린 아이들까지 데려다 혹사시킨 미쓰비시는 반드시 사죄하고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빈소는 전주 예수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18일 화장 후 전주 인근 호정공원묘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2남 2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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