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준 카이스트 초대 미술관장 “대전만의 미디어 랜드마크 필요”
입력: 2022.01.30 08:00 / 수정: 2022.01.30 12:05

"90년대 엑스포 도시 이미지에 갇혀 있어...축제와 공공디자인, 전시와 공연 총괄 컨트롤타워 요구"

이진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뉴미디어 아티스트
이진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뉴미디어 아티스트

[더팩트 | 대전=최영규 기자] 학문의 융복합이 활발해진 요즘 과학기술은 예술의 원천이 되고 예술은 과학기술에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대한민국 과학인재 요람인 카이스트에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문화예술과 인문사회학을 접목해 ‘문화기술’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고 문화콘텐츠 사업에 필요한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문화기술대학원이 있다.

카이스트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8월 미술 전공 예술가가 전임 교수로 임용됐다. 주인공인 이진준 교수는 이력 자체가 학문의 융합이다. 경영학을 배운 뒤 뒤늦게 미대에 진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해외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더팩트>는 뉴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교수 겸 2023년 문을 여는 카이스트 미술관의 초대 관장인 이진준 교수에게 대전이 지향하고 있는 과학예술도시로의 방향성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이진준 교수와의 일문 일답

-소개 부탁한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방송국 PD를 거쳐 다시 미술대학으로 학사 편입해 조각을, 그리고 영국의 왕립예술대학원에서 미디어아트로 최고작품상을 받으며 졸업했다.

이후 예술가로 활동하며 영국의 디자인 컨설팅회사와 건축회사에서 최고디자인경영 업무를 담당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철학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깨달아 옥스퍼드대학에서 예술철학을 공부해 순수미술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제출했던 논문이 만점으로 통과돼 경제학자 아담스미스를 비롯 칼막스, 마뤼퀴리. 벤자민 프랭클린. 스티븐호킹등이 소속했던 260년 전통의 영국왕립예술원 석학회원이 되었다.

뉴미디어 아티스트 및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경계공간 경험에 관한 작품 연구를 하고 있다.

-카이스트 교수로 오게 된 인연이 있는지?

오래 전부터 한국에 돌아올 것을 권유 받았다. 카이스트가 뉴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예술기술융합연구가 가능할 것이라 확신해 귀국을 결심했다.

70년대 기술강국을 통해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를 만든 선배 교수들의 전통을 이어가며, 태어나고 자란 조국의 미래산업 태동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 카이스트에 오게 됐다.

-카이스트에서 무엇을 가르치나?

카이스트는 연구중심 대학이다. 특히 문화기술대학원은 융합연구를 선도하는 대학원이다보니 남을 가르치기 보다는 교수와 학생이 함께 처음 시도되는 융합연구들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제가 이끌고 있는 TX랩은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연구가 아닌 콘텐츠를 생산하는 창작 연구를 주로 하는 곳이다. 예술에서 공학까지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팀을 이뤄 새로운 예술 창작에 집중하고 있다.

함께 온 옥스퍼드 박사 출신 미국인 AI연구자를 비롯해 스탠포드, 버클리, 임페리얼 컬리지 등 다국적 박사후연구원 및 박사과정 학생들이 저의 랩으로 합류하고 있다. 세계적인 대학의 우수한 연구자들이 대전으로 모여들고 있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10년 또는 15년 후 TX랩 출신들이 모여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전시 및 출판을 하게 되면 제가 무엇을 누구에게 어떻게 가르쳤는지 보다 명확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전에 대한 첫 인상과 반년 정도 살면서 느낀 점은?

영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저로서 대전은 대학도시인 옥스퍼드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도시의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으면서도 삶과 일의 균형이 잘 잡혀있는 도시인 것 같다.

다만 대덕연구단지와 도시생태계가 다소 덜 연결돼 있다는 인상을 받아 앞으로 카이스트 미술관을 열 때 이 점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또 대전은 예술적인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공연예술 및 전시 등의 창의적인 에너지가 대전의 지역적인 맥락과 어울리면 좋을 것 같은데 아직도 90년대 엑스포 도시 이미지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울 상암동 DMC센터에 있는 이진준 교수의 작품, 그들 they
서울 상암동 DMC센터에 있는 이진준 교수의 작품, 그들 they

-대전이 나아가야 할 과학예술도시의 방향은?

대전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아주 좋은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카이스트를 비롯한 대덕연구단지가 그 핵심인데 이러한 연구집단과 예술의 힘을 합쳐 ‘과학예술도시’로 꽃피울 수 있는 무궁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도시만으로는 매력적인 도시브랜딩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 과거 일률적인 도시 디자인의 차원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매력적인 다양성의 색깔을 입힐 때 비로소 과학도 함께 미래적인 색으로 빛날 것이라 본다.

결국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기 때문에 예술을 통한 도시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대전시를 직접 디자인한다면 어떻게 계획하겠는가?

크게 3가지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

첫째는 대전의 미래를 상징할 수 있는 과감한 미디어 랜드마크가 필요하다. 최신 기술과 예술이 결합한 미디어 조각이나 미디어 파사드를 이용한 건축물 등이 필요할 것 같다.

다만 이러한 프로젝트들이 시민들의 호응을 얻으려면 미디어 조각의 경우 반드시 조각 예술로서의 아름다움을 지닌 세계적인 조각 작품이 되어 비록 불이 꺼져 있어도 아름다운 조각이 지닌 힘과 철학을 도시 공간에 심어줘야 한다.

건축 또한 건물에 단순히 커다란 영상 광고판 같은 미디어 파사드를 붙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건축 자체의 충실한 기능과 함께 미디어 친화적인 디자인이 공간의 안과 밖을 관통하며 실질적인 과학예술의 상징성을 나타낼 수 있는 예술적인 랜드마크가 창조돼야 한다.

두 번째는 과학예술을 이용한 축제가 만들어져야 한다.

소모적인 행사를 지양하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의 조그만 도시 린츠에서 열리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같은 미디어 축제는 사실상 도시 전체를 활용한 미디어 예술 전시장이라고 봐도 무방한다.

행사기간을 제외하고도 연중 내내 각종 연구와 작은 전시와 세미나 등이 도시 곳곳에서 이뤄지며 린츠라는 도시가 가진 정체성과 시민의 자부심이 하나로 연결돼 지방 공업도시를 세계적인 미디어예술의 성지로 바꾸어 놓았다.

마지막 세번째는 글로벌 차원의 도시 브랜딩이다.

대전은 이미 도시 브랜딩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만 좀더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글로벌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축제와 공공디자인 그리고 전시와 공연을 일관되게 총괄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이로써 한국의 과학예술도시 대전이 아닌 세계의 대전으로 거듭나갈 기대한다.

인류애를 가지고 전지구적인 문제를 지역의 관점에서 연결할 수 있는 글로벌 전문가들의 네트워크를 잘 구축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발전과 생존을 위한 유목민적 전략을 잘 이해하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고도로 발전한 기술시대 인간의 가치와 조건은 '예술'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thefactcc@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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