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붓꽃 ‘동국진체’ 명필 이광사의 삶 세상에 드러낸, 정강철 소설 ‘원교’
  • 박호재 기자
  • 입력: 2021.11.04 08:42 / 수정: 2021.11.04 08:42
동국진체라는 조선 고유의 서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의 삶을 숨겨진 역사 속에서 끄집어낸 정강철의 소설 원교가 문단의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은 장편소설 원교 의 책 표지 캡처./ 도서출판 문학들 제공
'동국진체'라는 조선 고유의 서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의 삶을 숨겨진 역사 속에서 끄집어낸 정강철의 소설 '원교'가 문단의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은 장편소설 '원교' 의 책 표지 캡처./ 도서출판 '문학들' 제공

유배 15년 불우한 생애 예술혼으로 견뎌냈던, ‘말없는 붓, 외로운 먹’ 고독한 예술가의 초상[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조선의 고유서체, ‘동국진체(東國眞體)’라는 서도의 일가를 이뤄낸 원교 이광사(李匡師)의 삶이 작가 정강철의 소설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더구나 당대의 원교와 한 마당을 쓰고 살아온 것처럼 생생하기조차 하다. 원교의 생애에 대한 작가의 고심어린 탐구의 결과일 것이다. 평론가 김영삼은 이를 "소설속의 예술가가 원교인지 정강철 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탄복했다.

화가 김경주 또한 "기박했던 원교의 삶을 집요하게 벼루위에 갈아 넣은…이 소설은 작가의 선비같은 모습을 닮아있다"고 평했다.

작가가 조선 후기의 서예가이자 양명학자인 이광사의 생애를 이렇듯 적나라하게 펼쳐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작가 자신이 동국진체의 맥을 이어간 학정 이돈흥 선생(전남 담양)의 문하에서 먹을 갈고 글씨를 수련하던 시절의 체험에 힘입은 바가 클 것이다.

소설은 소론과 노론의 당쟁에 휘말려 명필가문이었던 일가가 폐족의 처지가 되고, 이광사 또한 남도의 외딴 섬 신지도에서 15년의 유배생활을 붓으로 달래며 생을 마감한, 불운했던 한 예술가의 신산했던 삶을 차분하게 추적하면서, 그가 추구했던 서체의 정신이 질곡의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의 어떤 삶의 굴곡을 통해 만들어졌는지를 더듬어가는 플롯으로 전개된다.

또한 이 집필의 흐름은 단순한 인물사 소설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기도 하다. 스승이었던 백하 윤순(조선 후기 문신, 서예가)과의 이야기가 문학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며 이광사의 세계관이 동국진체로 완성돼가는 서사가 치열하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동국진체의 맥을 이어간 학정 이돈흥의 문하에서 서예의 문리를 깨친 작가의 다음과 같은 묘사가 소설 원교가 결코 범상한 인물소설이 아님을 증거 한다.

"글씨의 바탕을 왕희지에게 배우되 왕희지를 뛰어넘어 우리 조선글씨를 모색해야지. 한 가지 서체에 집착하다보면 우물 안에 갇히는 편협에 빠질 수도 있을 터, 넓게 보고 멀리 가야 한다. 죽는 날까지 걸어야 할 길이라면"(79쪽)

"글자보다 마음이 앞서야 한다. 손끝과 붓털로 놀리는 획이 아닌, 마음에서 터져 나오는 심획이어야 한다. 일찍이 스승께 숱하게 들었던 말이지만 실천은 가볍지 않았다. 스승 말씀으로는 심획이 이루어지면 글자마다 인의기(人意氣)가 스며든다 했는데, 막상 써보면 기운은 스러지고 용속한 욕심이 글자마다 똬리를 틀고 있으니 얼마나 허망한 노릇이냐"(62쪽)

소설 원교는 어쩌면 불우한 생애를 예술 혼 하나로 견뎌냈던, ‘말없는 붓, 외로운 먹’ 조선의 고독한 예술가의 초상 이광사의 후예임을 애써 자임하고 싶은 소설가 정강철의 간절한 바람이 빚어낸 결실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강철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자화상에 그려진 원교의 침울한 얼굴, 오래도록 들여다보니 나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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