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외로움과 사투' 벌이는 쪽방촌 사람들
입력: 2021.07.19 18:45 / 수정: 2021.07.19 18:45

19일 오후 2시쯤에 만난 강모(61)씨는 코로나19 여파 때문에 사람을 만날 수도 없어 더 외롭다고 했다. /부산=조탁만 기자.
19일 오후 2시쯤에 만난 강모(61)씨는 "코로나19 여파 때문에 사람을 만날 수도 없어 더 외롭다"고 했다. /부산=조탁만 기자.

"코로나19 여파 장기화 탓에 그나마 나누던 사람들 간 정도 사라져"

[더팩트ㅣ부산=조탁만 기자] 19일 부산 동구에 있는 한 쪽방촌을 찾았다.

쪽방촌을 가는 길에 스스로 질문을 수없이 던졌다. 그도 그럴만 한 게 '쪽방촌의 일상'은 매년 여러 언론 매체에서 쏟아져 왔었다.

그들의 열악한 생활 환경, 그리고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개인사 등과 같은 이야기는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나 쉽게 대화를 나눌 만큼 이제 익숙하다.

이렇듯 새삼스레 새로운 내용이 있겠냐만은, 그럼에도 쪽방촌을 찾은 이유가 있다.

코로나19 여파가 장기화되면서 쪽방촌은 또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가장 큰 변화는 '외로움'의 크기었다.

1~2평 남짓한 공간에서 크든 작든 희망을 안고 하루 하루 겨우 생활해 나가는 그들은 이미 외로움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에 이웃에 대한 소중함은 더욱 남달랐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웃에 대한 그리움을 억누르지 못했다.

이날 오후 2시쯤에 만난 강모(61)씨가 그랬다. 강씨는 지난해 부산 동구에 있는 한 아파트 인근 여인숙에 마련된 쪽방에서 살았었다.

이 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쫒겨나다시피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야 했다. 강씨는 "이동네를 떠나기 싫어서 인근 여관방을 구했다"고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가 금새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코로나19 여파 때문에 사람을 만날 수도 없어 더 외롭다"고 했다. 이어 "혼자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소주를 마시는 것도 '중독'이 될까봐 무서워 자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쪽방에서 사는 자신을 마치 자유로운 감옥에서 살고 있다고 한 그의 삶의 무게는 감히 실감할 수조차 없었다. 그는 30여년 동안 공사판에서 일을 해오다 손을 크게 다쳐 몸이 불편하다. 이제는 일을 할 수 없어 기초생활수급액 50여만원으로 한달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었다.

19일 오후 2시쯤 부산 동구에 있는 쪽방에 있는 설모(81)씨는 코로나19 여파 탓에 의도치 않게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이웃에 대한 그리움을 토해냈다./부산=조탁만 기자.
19일 오후 2시쯤 부산 동구에 있는 쪽방에 있는 설모(81)씨는 코로나19 여파 탓에 의도치 않게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이웃에 대한 그리움을 토해냈다./부산=조탁만 기자.

설모(81)씨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햇빛을 그대로 받는 옥탑방에서 살고 있는 그는 반바지만 입은 채 이번 여름나기를 하고 있었다.

그 역시 코로나19 여파 탓에 의도치 않게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이웃에 대한 그리움을 토해냈다.

설씨는 "이노무 코로나19가 이웃들 간 정을 앗아갔어.."라며 말끝을 흐렸다. 예전 같으면 지나가다 복도에서 만날 때면 '번개 소주 자리'도 만들고 서로 얘기를 주고 받으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고 한다.

각박해진 세상을 탓하면서 이제는 말할 사람조차 없다고 한 그였지만, 좁은 쪽방에 들어서자 마자 유일한 말동무를 소개했다.

그의 이름은 토리. 4년 5개월 째 함께 동거하고 있는 반려견이었다. 설씨는 "혼자 있으면서 대화 상대 조차 없어 말을 하지 않으면 치매가 올 수도 있다"며 "내가 먼저 갈지, 저 친구가 먼저 갈지 모르지만, (토리는) 자신의 인생의 동반자"라고 말했다.

그런 그도 2평 남짓한 공간엔 여기 저기 벽면 뿐아니라 냉장고 문에도 가족들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날 오전 부산 지역에선 3일만에 폭염주의보가 다시 발효됐다. 당분간 낮 최고기온이 31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가 이어진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날 찾은 쪽방촌 사람들은 여느 해처럼 폭염이나 강추위와 같은 열악한 환경과 사투보다 외로움과의 사투를 벌이는 게 더 힘들다고 한다.

코로나19 여파가 삶 깊숙이 침범할수록, 그들의 외로움을 대신할 유일한 친구는 TV나 반려견뿐이었다. 부산 원도심에선 이들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만 450여명이라고 한다.

hcmedia@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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