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에서 지난 5월 스타렉스 차량에 치어 사망한 새끼 유기견(왼쪽)과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 캡처./동물자유연대 캡처 |
재판부 "영상에서 운전자가 앞에 개 두고도 서행하려는 느낌 들지 않아"
[더팩트ㅣ창원=강보금 기자] "내가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개 한 마리 친 것 가지고 왜들그래?"
짐승의 떠돌이 생활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숙명인 줄 알았다. 형제들과 부모가 함께 있었지만 우리 힘으로는 기본적인 숙식을 해결하기란 가혹한 세상이었다.
때마침 한적한 마을에 우리 가족은 좋은 분들을 만나 겨우 터를 잡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지독하게도 꼬리를 물고 따라온 비극은 결국 짧은 행복마져 가로채 가버렸다.
지난 3월 5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한 작은 동네의 좁은 골목에서 죄없는 생명이 비참하게 스러졌다. 골목 어귀를 진입하던 스타렉스 차량이 동네 주민의 만류에도 이를 무시한 채 가족견들과 장난을 치며 놀던 새끼견을 치고 지나간 것이다.
결국 새끼견은 차량에 깔려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 부견과 형제견들은 구조돼 보호를 받고 있다.
하지만 어린 강아지 한 마리의 죽음은 안타까움으로 덮고 끝낼 일이 아니게 됐다. 미필적 고의의 살생현장에서 스타렉스 운전자의 태도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
10일 동물자유연대 측은 "스타렉스 운전자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뉘우침이 없어 고발하게 됐다"며 "사고 직후 운전자는 '유기견 한 마리 죽은 것 가지고 왜그러냐, 내가 벌금을 내겠다', '어차피 주인 없는 개이니 고발해도 괜찮다'는 식의 막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동물자유연대 측은 "정식재판을 통해 피고인을 엄중히 처벌해 달라"는 취지로 시민 탄원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했다. 이 탄원서에는 4만4648명이 동참해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산 스타렉스 운전자는 결국 정식 재판을 받게 됐다.
창원지법 마산지원은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60)씨에 대한 첫 번째 심리공판을 열었다고 10일 밝혔다.
이날 심리공판에서 증거물로 제출된 블랙박스 영상을 본 뒤 재판부는 "평상시 운전을 하다 보면 길고양이나 개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보통은 서행을 하지 않나"라며 "영상에서 피고인은 전혀 개가 앞에 있는데도 서행하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속도가 매우 빨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에 A씨는 "주행하던 차량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원래 운전하던 속도로 운전했을 뿐이다"라며 "당시 뒷바퀴가 덜컹하고 흔들려 개를 친 것을 느꼈다. 4마리 개 중 앞에 있던 세 마리는 (알아서)피했는데..."라고 항변했다.
재판부와 검찰에 따르면 A씨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경찰이 "만약 어린아이였다면 대상을 피해가지 않았겠느냐"는 취지로 질문하자 "사람이면 당연히 그렇게(차로 치고) 안한다. 사람이면 피해 갔을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 발언으로 A씨는 "다시는 이런 일이 절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검찰은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구형했다. A씨의 동물학대 위반 혐의에 대한 선고재판은 오는 8월 18일 열릴 예정이다.
이에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검찰의 벌금 100만원 구형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동물학대 사건과 관련해 죄질이 중대한 사안 외에는 집행유예 근사치까지 가는 경우도 많이 없어 안타깝다"며 "동물을 지켜야할 생명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부족해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현행법상 동물학대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는 범죄행위로 분류돼 있다.
하지만 학대 행위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확보되어야 고발을 통해 학대자를 처벌할 수 있으며, 동물은 사유재산으로 분류돼 소유권을 주장할 경우 처벌을 하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한국동물보호연합에 따르면, 매년 1000여 건의 동물학대 사건이 접수되고 있지만 최근 5년간 동물학대로 접수된 3398명 중 실형이 선고된 사람은 0.3%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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