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도 당하는 '로맨스 스캠', 직접 대화 나눠보니
입력: 2021.05.22 08:00 / 수정: 2021.05.22 13:58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UN소속 군인이라고 주장한 로맨스 스캠 사기범의 프로필 사진(왼쪽)과 나눈 대화내용 캡처./창원=강보금 기자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UN소속 군인이라고 주장한 로맨스 스캠 사기범의 프로필 사진(왼쪽)과 나눈 대화내용 캡처./창원=강보금 기자

코로나19로 비대면 사회 확산에 신종 SNS 피싱 '로맨스 스캠' 급증

[더팩트ㅣ창원=강보금 기자] "안녕.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니? 너의 프로필 사진이 참 예쁘다. 나와 대화 좀 해줄 수 있겠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만연한 어느 날, 문득 낯선 이로부터 칭찬 일색의 메시지가 전송됐다. 그것도 한글이 아닌 영어로.

이미 '로맨스 스캠'(Romance scam) 범죄 수법에 대해 잘 알고 있던 터라 자신을 미군이라고 주장하는 사기범과 직접 대화를 나눠 봤다.

처음은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나", "저녁은 무엇을 먹었나", "무슨 일을 하느냐"는 식의 가볍고도 평범한 대화가 3~4일 이어졌다.

약 일주일 간 대화를 나눠 본 결과, 그녀는 자신을 UN소속 군인으로 현재는 이라크에 파병 중이라고 소개했다. 또 부모님은 어린시절 두 분 다 돌아가셔서 자신은 고아원에서 자라며 불우한 어린시절을 겪었다고 했다.

원래는 석유화학 공학을 전공해 사업을 하고 싶었지만 불우한 환경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했다는 마음아픈 이야기들을 술술 늘어놓았다.

자신의 구구절절한 사연만을 하소연 한 것은 아니다. 당시 정기적으로 치과 치료를 받고 있던 나에게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듯한 말들과 함께 항상 하루의 마지막 인사에는 '소중한 나의 OO' 혹은 '사랑하는 나의 OO'라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영상통화를 요구하거나 음성통화 등을 요구할 때는 어김없이 여러 변명으로 상황을 피해갔다.

그녀와 대화를 나눈 지 약 한달쯤, 지속적으로 맞장구를 쳐 주자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군 제대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제대하면 한국에 가서 사업을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상황을 자신은 잘 모르니 사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며 "사업장 형성에 도움을 달라"며 금전을 요구해 왔다.

자신을 미군이라 주장한 사기범이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왔다며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는 대화 내용 캡처./경남=강보금 기자
자신을 미군이라 주장한 사기범이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왔다며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는 대화 내용 캡처./경남=강보금 기자

'로맨스 스캠'이란 연애를 뜻하는 '로맨스'와 신용 사기를 뜻하는 '스캠'의 합성이다. 페이스북 등 온라인에서 친분을 쌓아 신뢰를 얻고 연애 등을 미끼로 돈을 요구하는 금융사기 수법을 말한다.

흔히 피의자들은 자신을 유명인, 상속인, 군인, 군의관, 나사(NASA) 직원 등으로 위장해 신분과 재력, 외모 등을 과시하며 환심을 산 뒤 금전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언택트, 비대면이 확산되자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서 외국인을 가장해 친구가 되자며 접근한 후 사기를 치는 '로맨스 스캠'이 증가하는 추세다.

코로나19 이후, 소셜미디어를 통한 낯선 이의 접근에 대해 소폭 관대해진 느낌이다. 대면으로 채울 수 없는 관계에 대한 갈증을 충당해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비대면화된 사회적 환경에서 관계 형성에 목마른 이들의 돈과 마음을 모두 갈취하는 범죄는 어느때보다 잔혹할 수밖에 없다.

경남 김해에 거주하는 로맨스 스캠 피해자 김모(41)씨는 "로맨스 스캠에 대해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닌데, 막상 대화를 하며 친분이 쌓였다고 생각하니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상황이 왔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사람을 소개 받기 쉽지 않아 외로운 마음에 더욱 현혹된 것 같다"며 "피해금액이 소액이라 경찰 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돈도 잃고 마음도 잃어 매우 황망한 심정이다"라고 토로했다.

국내에선 로맨스 스캠을 '기타 범죄'로 분류하기 때문에 정확한 범죄 발생 통계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이버경찰청통계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이 포함되는 인터넷사기 범죄가 2017년에는 10만7271건, 2018년 12만3677건이 발생한 반면, 2019년에는 15만1916건이 발생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한편 지난달 27일 경남 마산동부경찰서는 로맨스 스캠, 몸캠피싱, 조건만남 사기 등 SNS를 기반으로 범행을 벌인 일당 8명을 검거해 전원 구속한 바 있다.

이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과 영상을 도용해 여성인 척 속여 피해자들과 연인, 친구관계까지 발전시켜 금품을 갈취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75명의 피해자에게 총 7억원 상당의 금품을 갈취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청 사이버수사국은 "무분별한 SNS상 친구 추가는 자제하고 해외 교포나 낯선 외국인과의 인터넷 상 교제는 신중히 고려해 봐야 한다"면서 "인터넷 상 교제 시 금전 요구에는 입금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hcmedia@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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