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논바닥에 벌집·나무 빽빽" 청주 오송 투기현장 가보니
입력: 2021.04.18 10:18 / 수정: 2021.04.18 10:18
오송 제3생명과학국가산업단지 예정지에 들어선 투기 목적의 가건물(속칭벌집). / 전유진 기자
오송 제3생명과학국가산업단지 예정지에 들어선 투기 목적의 가건물(속칭'벌집'). / 전유진 기자

전 마을이장 "동네 전입자 100명인데 대부분 얼굴 못 봤어요"

[더팩트 | 청주=전유진 기자] "동네 이장 2년 했는데 그새 마을주민이 100여명 늘었다. 그런데 새로 주민등록을 옮긴 사람들 중 얼굴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17일 오전 충북 청주시 오송읍의 한 농촌마을 진입도로에서 마주친 한 60대 주민은 취재 차 방문한 기자를 향해 대뜸 이렇게 말했다.

오송읍은 본래 강외면으로 전형적인 농촌이었으나 KTX오송역이 생기면서 지난 2012년 읍으로 승격했다.

지난 3월말 현재 인구는 2만 3796명으로, 청주 읍 가운데 오창읍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많다. 오송역 주변으로 오송생명과학단지와 신도시가 조성된 데다 세종시와 인접해 도시개발이 이뤄지데 따른 것이다.

이렇게 논과 밭이 아파트, 산업단지 등으로 바뀌면서 전국 각지에서 투기꾼들이 몰려들었다.

읍내 곳곳에는 토지 보상을 받기 위해 지은 노린 가건물(속칭 ‘벌집‘)이 널려있다. 집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대를 지나는 사람이나 차를 만나기는 어려웠다.

어렵게 만난 주민 A씨는 "개발행위 허가 제한지역으로 지정되기 몇 달 전부터 전입신고가 많이 늘었지만 정작 이사 오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B씨도 "죄다 외지인들이 투기를 목적으로 지은 벌집"이라고 거들었다.

주민들은 개발계획이 나오기가 무섭게 외지인들이 몰려들어 보상용 주택인 벌집을 짓고, 농경지에 나무를 심는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지역 토박이들도 이런 비판에 자유로울 순 없다.

오송 제3생명과학국가산업단지 예정지 농경지 내 묘목들. / 전유진 기자
오송 제3생명과학국가산업단지 예정지 농경지 내 묘목들. / 전유진 기자

주민들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동평리, 서평리 등 오송 제3생명과학 국가산업단지조성 예정 지역의 토지거래 상황을 들여다봤다.

국토교통부 토지 실거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기준 이곳에서는 2016년 한 해 동안 거래가 76건 이뤄졌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7년에는 143건으로 거래량이 뛰어올랐다. 두 마을은 대부분 농지와 농부들이 사는 낡은 집들로 이뤄진 곳이었다.

국토부는 지난 2018년 8월 산단 개발 계획을 발표했고, 충북도는 같은 해 11월 해당 지역을 ‘개발행위 허가 제한지역’으로 지정했다.

이를 전후해 보상금을 노린 벌집이 수십 채 들어섰다.

대부분 10여 평 규모의 조립식 패널 건물이다. 2000만~3000만원이면 벌집 한채를 뚝딱 지을 수 있다는 게 지역 업자들의 전언이다.

주인이 바뀐 땅에는 가건물이 들어서거나 나무가 심어졌다. 지역 주민은 "난데없이 무슨 일인가 싶었다"고 했다.

지역에서 10년 이상 영업하고 있는 K조경 관계자는 "개발 제한이 걸리고 나자, ‘기존 소나무 대신, 옮겨 심는 데 대한 보상금이 많은 나무(유실수 등)를 대규모로 심어 달라’는 주문 전화가 수없이 걸려왔다"고 전했다.

오송역세권지구 도시개발사업조합 사무소 건물. / 전유진 기자
오송역세권지구 도시개발사업조합 사무소 건물. / 전유진 기자

오송의 또 다른 개발 구역인 역세권·화장품산업단지 예정지도 묘목과 벌집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오송역세권 개발은 묘목 등 지장물 보상이 걸림돌이 돼 두 차례 무산됐다. 2013년 충북도가 공영개발 형태로 구상했으나 시행자를 찾지 못했다.

건설사들이 높은 보상가를 주고 개발이익을 회수할 수 없다보니 발을 뺀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05년 충북도가 ‘오송 신도시 건설 기본계획안’을 내놓자마자 오송역세권 인근의 땅값이 들썩거렸다. 이 일대 상승률은 80%에 달했고, 역세권의 3.3㎡당 조성원가는 297만원까지 올랐다.

토지 소유주 가운데 일부는 이주자 택지를 노려 '벌집'을 짓고, 농경지에 나무를 심었다. 결국 충북도는 사업을 포기했다.

이후 2016년 민간개발 방식으로 다시 추진됐으나 이듬해 3월 사업시행사가 다시 백기를 들고 말았다. 같은 이유였다.

현재 이 사업은 ‘오송 역세권 지구 도시개발 사업조합’(이하 역세권조합)에서 다시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사업시행사로 나선 K건설은 2023년 말까지 오송읍 일대 70만 6000여㎡ 부지에 주거시설과 상업·유통시설 용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조성된 용지는 토지주 조합원 491명에게 환지 방식으로 나눠주게 된다. 계획대로 되면 오송 역세권은 3200여 가구, 8100여 명이 거주하는 신도시가 탈바꿈한다.

오송 역세권 개발 예정지 인근 농지에 들어선 묘목. 원래 이곳은 논밭이었다. / 전유진 기자
오송 역세권 개발 예정지 인근 농지에 들어선 묘목. 원래 이곳은 논밭이었다. / 전유진 기자

그러나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될 지는 ‘안갯속’이다.

40대로 보이는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오송 땅값이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고, 보상 지장물도 많아 역세권조합이 분양에 성공할지는 모르겠다"고 의문을 표했다.

그는 "외지인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높은 보상가를 받는 방법을 안다"며 "솔직히 논과 밭에 농사를 짓지 않고 나무를 심고 벌집을 짓는 건 다 그런 이유 아니냐"고 반문했다.

LH 사태 이후 개발 공직자들의 투기부터 막자는 움직임이 충북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도의회와 청주시의회도 부동산 투기와 관련해 의원과 가족들에 대한 전수 조사를 결정했고, 경찰도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선영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국장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예전부터 공공연하게 공직자들의 투기사실이 돌았다"며 "제대로 된 조사와 모니터링을 통해 공적인 정보를 사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thefactcc@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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