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미군 8부두 앞에서 14일 열린 ‘미군 세균실험실 폐쇄 찬반 주민투표 요구 서명운동 중간 집계 결과 발표’ 기자회견의 돌발상황 대비를 위해 경찰 병력이 배치돼 있다. /부산=김신은 기자 |
추진위, 부산시장 보선 후보들에 ‘주민투표’ 공약 채택 요구
[더팩트ㅣ부산=김신은 기자] 부산항 미군 세균실험실 폐쇄를 촉구하는 주민투표 요구 서명이 목표치인 15만명을 조기 달성했다. ‘부산항 미군 세균 실험실 폐쇄 주민 투표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부산 시민들의 의사가 확인된 만큼 부산시에 주민투표를 즉각 개최할 것을 요구할 계획이다.
26일 추진위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18만3327명이 주민투표 요구 서명에 참여했다. 지난해 10월 17일 서명 운동을 시작한지 102일 만이다. 당초 목표는 27일까지 15만명의 서명을 받는 것이었지만 마감일까지 20만명에 가까운 시민이 참여할 것으로 추진위는 전망했다.
전위봉 추진위 상황실장은 "(실험실 폐쇄가)시민들의 요구인 것을 절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다"며 "부산 시민들의 의사가 확인된 만큼 주민투표를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산시는 이 사안이 ‘자치단체 사무’가 아닌 ‘국가 사무’라서 주민투표 추진 요건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어서 추진위가 이를 근거로 주민 투표 개최를 요구하더라도 시가 수용할 지는 미지수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독소’ 반입 논란
부산항 미군 세균실험실 폐쇄 논란은 2015년 오산 미군기지로 밀반입된 탄저균 사건에서 비롯된다. 미 국방부는 그해 5월 경기도 오산 공군기지에 살아 있는 탄저균을 실수로 배달했다. 당시 스티브 워런 미 국방부 대변인은 "발송된 탄저균 표본은 미생물 취급 규정에 따라 적절하게 포장됐었다"며 일반인들에게는 어떠한 위험도 없다고 강조했다.
탄저균은 치명적인 생물학 무기에 사용되는 세균으로 치사율이 매우 높다. 탄저균 100kg을 대도시 상공 위로 살포하면 100만~300만명을 사상케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연구 목적으로 탄저균을 옮기더라도 반드시 죽은 상태로만 이동시킨다.
이듬해인 2016년 미군은 부산항 8부두에서 생화학 대비 프로젝트인 ‘주피터(JUPITR)’를 실시해 지역사회에 또 한번 충격을 줬다.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 당시 미군과 국방부, 부산시는 "실험도, 샘플 반입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 프로젝트를 위해 예산 350만달러(약 40억원)가 책정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의혹은 증폭됐다.
지난해 10월 7일에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주한미군이 2015년 이후 국내로 생화학 물질인 보툴리늄, 리신, 포도상구균을 3차례나 추가 반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군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3차례에 걸쳐 부산항 8부두, 군산, 오산, 평택 미군기지에 세균무기실험 샘플을 반입했다.
추가 반입된 생화학 물질 중 보툴리늄은 ‘지구상 가장 강력한 독소’로 규정돼 있으며, 탄저균보다 10만배 더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g만으로 100만명을 살상할 수 있는데 이를 포함한 리신, 포도상구균 샘플이 부산항 미군 세균실험실에 총 92병 반입됐다.
14일 부산항 미군 8부두 앞에서 ‘부산항 미군 세균실험실 폐쇄 찬반 주민투표 추진위원회’가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서명운동 중간 집계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부산=김신은 기자 |
◇주민투표 신청 거부한 부산시 상대 ‘행정소송’
추진위는 지난해 9월 세균실험실의 존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우선 부산시에 세균 실험실 폐쇄 찬반 주민투표를 진행하기 위한 청구인대표자 증명서 교부 신청서를 제출했다.
추진위 측은 "미군은 본토에서 이 같은 실험실을 유타주 네바다 사막 한가운데, 지하 40m 벙커에 두고 있다고 한다. 이는 이 실험실이 얼마나 위험한 시설인가를 반증하는 것"이라며 "시민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이 실험실의 존폐 여부를 부산시민들이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민투표 청구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부산시는 이를 거부했다. 행정안전부에 질의한 결과, 이 사안이 자치단체 사무가 아닌 국가 사무이기 때문에 주민투표 추진 요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주민 투표법 제2장 제7조에는 ‘국가 또는 다른 자치단체의 권한이나 사무에 속하는 사항은 주민 투표에 부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추진위는 지난해 10월 17일 주민투표 요구 서명 운동에 돌입했다. 부산시 유권자의 20분의 1인 15만명의 서명을 받아 세균실험실의 심각성을 알리고 민심을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또 지난달에는 부산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추진위는 "시는 명백히 시민의 생활터전 한가운데 들어선 세균시설에 대해 미군시설이기 때문에 국가 사무라고 치부하며 주민들의 생명 안전을 책임질 자치단체의 책무를 내팽개쳤다"며 "행정소송으로 시의 주민투표 거부 행위에 대해 취소 또는 무효 조치가 내려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소송에서 추진위가 승소할될 경우 시로부터 청구인 대표자 증명서를 교부받아 주민 찬반투표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추진위 "다방면 대응…주민투표 이뤄낼 것"
현재까지 18만3000여명이 서명에 참여해 이미 목표치인 15만명을 넘었다. 그러나 15만명의 서명을 받아도 이를 근거로 주민투표가 공식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시는 여전히 이 사안이 주민투표 추진 요건에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어서 교부가 안된 것"이라며 "주민투표 서명인 수가 넘었다고 해도 대상이 바뀌는 건 아니다"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추진위는 부산 시민의 이 같은 의사를 토대로 주민투표를 이뤄내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28일 오후 2시 부산시청 광장 앞에서 서명운동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시에 주민투표를 즉각 개최할 것을 요구할 계획이다.
또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자들에게 주민투표를 공약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하고, 부산항 8부두 앞에서 주한미군의 실험실 폐쇄 여부를 묻는 기자회견도 진행할 예정이다.
추진위 측은 "행정적으로는 15만명의 서명을 받아도 주민투표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행정은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주민의 뜻을 거스르는 행정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민투표법과 지방자치법, 감염예방법 등은 대한민국 헌법의 생명존중권의 취지에 맞게 해석되고 적용돼야 한다"며 "헌법상 핵심적인 국민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세균실험실 폐쇄 주민투표는 생명존중권 측면에서 더욱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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