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화의 세상만사] 부산시장 보선 후보님들, '클린 선거' 합시다
입력: 2021.01.25 14:09 / 수정: 2021.01.25 14:09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국민의힘 박형준, 이언주, 이진복, 전성하 등 예비후보와 진보당 노정현 예비후보, 민주당 김영춘 예비후보(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더팩트 DB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국민의힘 박형준, 이언주, 이진복, 전성하 등 예비후보와 진보당 노정현 예비후보, 민주당 김영춘 예비후보(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더팩트 DB

마타도어·흑색선전 등 네거티브 선거 더 이상 안 통해

[더팩트ㅣ부산=고기화기자] 스페인의 전통축제인 투우 경기는 인간이 아닌 소의 관점에서 본다면 억울하기 짝이 없다. 투우 경기에서는 주연 투우사가 먼저 등장하지 않는다. 창을 든 기마 투우사인 '피카도르'와 꼬챙이를 든 보조 투우사인 '반데리예로'가 차례대로 등장해 소의 목과 어깨에 여러 개의 상처를 내면서 소의 체력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붉은 천 뒤에 칼을 숨긴 '마따도르'가 나타나 소를 흥분시킨 뒤 결정적 순간에 소의 심장을 찌른다.

투우 경기라고 하지만 소의 처지에서는 완전한 불공정 경기다. 여럿이 나와 치고 빠지는 전술에 현혹되고, 흥분하게 만들어 결정적 실수를 저지르게 하는 기만전술에 당한다. 결국 소는 제대로 싸움 한 번 못한 채 ‘숨겨진 검’에 당하고 만다.

근거없는 말로 상대방을 중상모략하거나 흑색선전을 뜻하는 ‘마타도어’(Matador)가 ‘마따도르’에서 유래했다는 건 곱씹어 볼 만하다. 마타도어는 근거가 빈약하거나 사실무근인 내용을 ‘아니면 말고’ 식으로 폭로하거나 막장 소문을 퍼뜨려 상대를 매도하는 전략으로, 특히 선거 때 많이 등장한다.

오는 4월 7일 치러지는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70여일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여야 모두 예비후보들이 각 당의 경선을 앞두고 얼굴 알리기와 지지율 확보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전임 시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치러지는 보선인 탓에 여당보다는 야당인 국민의힘 소속 예비후보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예비경선 후보자로 등록한 사람만 모두 9명이다.

박형준 예비후보가 지난달 15일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5층 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보선 출마선언을 공식화하고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부산=조탁만 기자
박형준 예비후보가 지난달 15일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5층 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보선 출마선언을 공식화하고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부산=조탁만 기자

그러다 보니 과열경쟁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본선 링에 오르기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후보가 난립하면서 예비경선 참여 여부가 발등의 불이 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 선거운동에 한계를 느낀다. 기존의 ‘악수’ 대신 유튜브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활용한 ‘온택트’(Ontact) 선거운동에 치중해 보지만 좀체 지지율은 오르지 않고, 연이은 공약 발표에도 잘 반응하지 않는다.

‘비대면 일상’이 자리잡은 가운데 딱히 관심을 끌 만한 선거운동 방법이 없기 때문에 ‘네거티브 선거’의 유혹이 일어나기 쉽다. 그럴싸한 소문이나 풍문으로 위장한 상대방 흠집내기나 상대방의 단점과 비리를 악의적으로 까발리는 ‘한방’이 공약 검증이나 정책 대결보다 훨씬 대중의 관심을 끌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번 부산시장 보선이 ‘미투 사건’으로 인해 치러지는 만큼 이와 유사한 사건에 대한 까발림 거리가 있다면 귀가 솔깃한 것이다. 또 상대방 후보의 개인적인 부정이나 비리 행위 등에 대한 폭로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믿는다. 벌써부터 모 후보가 이런저런 의혹 제기와 폭로를 준비한다든가, 상대 후보의 약점이 될 만한 사항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는 등등의 얘기가 들리고 있다.

"도덕성에 흠이 있는 후보는 경선 전에 반드시 걸러져야 한다"며 검증을 요구하는 게 네거티브냐 하는 문제는 좀 애매모호하긴 하지만 명확한 근거 등을 제시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최소한 그 경계선상에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를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내용을 특정 후보를 지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이 없다고 답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책임한 행동이다.

정진석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4·7 재보궐선거 공천관리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논의된 내용을 브리핑하고 있다. /더팩트 DB
정진석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4·7 재보궐선거 공천관리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논의된 내용을 브리핑하고 있다. /더팩트 DB

예비경선 참가자 발표를 앞둔 국민의힘 공관위가 ‘단합’을 강조하면서 후보들에게 ‘네거티브 자제’를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칫 본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적전 분열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감이 작용한 탓이다. 치열한 정책 경쟁이 아닌 망토 뒤에 감춘 칼(흑색선전)로 난 흠집은 쉽게 지워지지 않아 정작 본선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그렇지 않은 후보도 있다. 국민의힘 경선후보인 정치 신인 박성훈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은 "선거전에서 상대 후보를 향한 네거티브를 하지 않겠다. 비전과 정책으로 승부하겠다"며 기존 정치와 선을 긋는 참신함을 선보였다. 같은 정치신인인 전성하 LF에너지 대표도 국민의힘 모든 후보에게 1대 1 정책토론을 제안해 박형준 후보와는 이미 한 차례 토론을 갖는 등 젊은 패기를 보여줬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에 대한 검증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근거없는 비방이나 허위사실 유포,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는 지양해야 한다. 이는 선거 범죄와 다를 바 없다. 후보 검증의 기회를 앗아가는 것은 물론 유권자의 선택권마저 침해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같은 흑색선전이나 네거티브에 당하는 후보 입장에서는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애써 허위임을 밝혀내더라도 이미 유권자의 주목을 끈 상태여서 어찌해 볼 도리가 없기 일쑤다.

현재까지 부산시장 보선 여론조사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1위를 고수해 온 박형준 후보가 "네거티브도 도가 있다"며 "있지도 않은 허위사실을 물밑에서 마타도어로 흘리거나 수군수군하면서 흑색선전을 하는 등의 폐해는 굉장히 크다"고 지적한 것도 이를 경계한 까닭이다.

이언주 전 의원이 지난해 11월 23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부산독립선언 출판기념회를 열고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화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이언주 전 의원이 지난해 11월 23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부산독립선언' 출판기념회를 열고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화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마타도어가 당장은 약간의 재미를 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선거 때만 되면 예나 지금이나 중상모략과 흑색선전, 가짜 뉴스 등이 슬금슬금 나오는 이유일 게다. 하지만 이는 결국 제 발등을 찍는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이제는 선거를 대하는 유권자들의 의식이 한층 성숙한데다 그동안의 학습효과 덕분에 네거티브를 일삼는 후보들은 퇴출되기 십상이다.

가뜩이나 1년 이상 지속된 코로나19로 여러모로 피곤한 상황이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웃을 여유조차 없는 마당에 정치가, 선거가 더 짜증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제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각 당의 후보 공천 일정이 본격화되면서 점점 더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국민의힘은 26일 예비경선 진출자를 발표할 예정이고, 민주당은 27~29일 후보자 접수를 받고 내달 2일 ‘국민면접’을 진행한다.

각 당의 후보 경선을 시작으로 선거전은 점점 더 치열해질 것이다. 그에 따른 편가르기, 흑색선전 등도 더 기승을 부릴지 모른다. 그래서 제안한다. ‘2021 부산시장 보선’은 각 당의 예비경선 때부터 깨끗한 선거로 치르자. 비대면의 새 선거문화를 만들어 축제같은 선거, 시민이 행복한 선거를 만들 수 있도록 하자. 각 당의 예비후보들이 대승적 차원에서 모여 ‘클린선거 선언’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무릇 지도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필요가 있다. 지난번 이 코너에서 ‘부산시장 보선 후보님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이제 다시 묻는다.

‘당신은 클린선거에 동참하시겠습니까?’

hcmedia@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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