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확대경]'여성혐오' 40대 남성의 '하룻밤 난동'…5명에 폭력·협박 결국 '징역형'
입력: 2021.01.24 07:00 / 수정: 2021.01.24 07:00
경남 김해에서 여성혐오로 인해 하룻밤 동안 5명의 여성을 상대로 묻지마 상해를 입힌 40대 남성이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픽사베이
경남 김해에서 여성혐오로 인해 하룻밤 동안 5명의 여성을 상대로 묻지마 상해를 입힌 40대 남성이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픽사베이

경남여성단체 "여성혐오는 정신질환 아닌 범죄의 증거일 뿐"

[더팩트ㅣ창원=강보금 기자] "여자들은... (중얼중얼)... 나 지금 칼 갖고 있으니까.... 죽여버려...(중얼중얼)"

지난해 10월 18일 새벽, 공장과 주거지가 혼재해 있는 경남 김해시 지내동 삼안로는 여느 일요일과 다를 바 없이 고요했다. 시멘트 냄새로 자욱한 도로 위로 아반떼 승용차 한 대가 천천히 주행하고 있다. 무엇을 찾는 것인지 운전자 A(48)씨의 시선이 도로 여기저기에 바쁘게 꽃힌다.

새벽 1시10분쯤. 돌연 '쾅! 아악!' 하는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른다.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고통에 신음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A씨가 차량 앞쪽에서 보행하던 여성 B(23)씨와 C(22)씨를 이유없이 들이받은 것이다.

A씨는 곧 차에서 내려 여성들에게 다가가 "괜찮냐, 병원에 가자"고 말하며 넘어진 B씨를 끌어당겼다. 병원에 가자며 자신의 차에 타라고 권유하는 A씨에게서 위협적인 분위기가 느껴진 탓일까? B씨와 C씨는 이를 거절했다.

그 순간 A씨의 눈이 살벌하게 돌변하면서 순식간에 B씨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이어 A씨는 안간힘을 쓰며 도망치려는 B씨의 손목을 잡아당겨 주먹과 발로 B씨를 종잇장 구기듯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쓰러진 B씨를 계속 차에 태우려는 행동에 집착했다.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자 A씨는 자신의 차를 타고 그 자리에서 도주했다.

새벽 2시10분쯤. 인제대학교 부근 오피스텔 밀집지역으로 차를 몰고간 A씨는 한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서 또 다른 여성 D(29)씨를 마주하게 된다. 평소 여성에 대한 혐오증을 갖고 있던 A씨는 순간 화가 치밀어 왼팔로 여성의 목을 감싼 후 서슬퍼런 흉기를 꺼내들었다. "나, 칼 들고 있어. 죽고 싶어? 따라와!" A씨는 자신이 제압한 여성의 목에 계속 흉기로 위협을 가할 듯한 행동을 하며 협박했다.

새벽 2시33분쯤. 다시 장소를 이동한 A씨, 이번엔 근처 도로에서 귀가 중인 E(21)씨를 발견한다. 승용차로 E씨의 뒤를 밟아 그녀의 주거지까지 그림자처럼 뒤따라간 A씨는 E씨가 현관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것을 몰래 훔쳐보고는 그녀를 쫓아 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현관에 설치된 도어락의 숫자를 눌러본다. 애꿎은 기계음만 허공에 흩어지기를 수차례, A씨는 비밀번호를 끝내 정확히 입력하지 못하는 바람에 E씨의 집에 침입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새벽 3시쯤. 다시 삼안로 쪽으로 장소를 이동해 한 중학교 정문 앞쪽에서 또 다른 여성 F(66)씨를 발견한 A씨. F씨를 뒤따라가 길을 묻는 척 접근한다. "학교를 찾으려고 하는데... 길 좀 물읍시다". 야심한 새벽시간 홀로 길을 걷던 F씨는 A씨의 모습이 매우 공포스럽기만 하다. 이에 F씨가 걸음을 내달려 A씨를 피하려 하자 승용차에서 내린 A씨가 흉기를 들이밀었다. 흉기에 오른쪽 손목을 한 차례 찔린 F씨는 "사람 살려주세요!" 하고 소리치며 저항했고, 당황한 A씨가 현장에서 도주해 가까스로 큰 사고를 면했다.

이윽고 새벽 4시40분쯤, 수사기관의 위치 추적을 감지한 A씨는 자신이 차고 있던 전자발찌 줄을 흉기로 끊어내기까지 했지만 경찰의 수사망에서 빠져나오지는 못했다.

A씨의 범행은 겨우 2시간여 동안 4차례나 발생했다. 총 5명의 여성들이 하룻밤 새 악몽을 겪어야 했다.

이에 창원지법 형사1단독 김민상 판사는 특수상해, 특수협박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강도, 폭력, 마약 등 전과가 다수 있고 누범기간과 전자장치부착기간 중 재범했을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고 흉기로 협박해 그 죄질이 무겁다"고 꾸짖었다.

A씨는 사건 당시 정신과적 질환과 약물과다 복용, 성적성벽, 여성혐오 등으로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며 치료감호청구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변호인이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고 범행이 같은 날 연속해 이뤄진 사정이 있지만, 범행경위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었다고 보이지 않는다. 그 행위의 위험성과 피해 정도를 고려할 때 피고인을 일정 기간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양형의 이유를 밝혔다.

경남 여성단체 관계자는 "여성혐오는 정신질환이 아니다. 분명 이 사건은 여성혐오로 인한 사건임은 분명하나 여성혐오를 이유로 심신미약을 주장한 것이 면죄부처럼 여겨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성혐오라는 말이 많은 가해자들의 입에서 범죄의 이유로 제기되고 있는데 오히려 여성을 약한 존재 또는 자신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존재로 보고 범죄행위를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는 감형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이 아니라 가해자의 생각과 처신을 입증하는 범죄행위의 증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hcmedia@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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