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사람이 더욱 그립다"…쪽방촌 어르신들의 겨울나기 '이중고'
입력: 2021.01.23 07:00 / 수정: 2021.01.23 07:00
부산 동구 좌천동 쪽방촌엔 70~80대 홀몸노인들이 코로나19로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부산=김신은 기자
부산 동구 좌천동 쪽방촌엔 70~80대 홀몸노인들이 코로나19로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부산=김신은 기자

“사회복지사만 잠깐 들르는 게 다…코로나19 탓 방에서 꼼짝 안하니 더욱 적적”

[더팩트ㅣ부산=김신은 기자] "식사는요?"

"밥에 김치 숭덩숭덩 썰어 넣어 말아 먹었어."

"생선이나 고기도 좀 골고루 잡수셔야죠."

"불편해서 틀니를 잘 안껴. 이가 없으니까 딱딱한 건 잘 못먹어."

22일 오전 10시. 부산 동구 좌천동 김남이(가명‧78) 할머니의 집을 찾았다. 화장실도 없는 2평 남짓한 크기. 냉기가 엄습하는 이곳에 할머니는 혼자 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이 쪽방은 할머니가 바라보는 세상의 전부다. 이웃들과의 만남이 삶의 낙이었지만 이젠 이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수십년째 여기 살면서 사람이 이렇게 그리운 적이 없어. 집 앞에 나가봐도 텅 비었지 뭐. 기껏해야 오는 사람이 사회복지사들이지. 마스크 쓰고 와서 (오래 있지 못하니)다들 일찍 가. 예전처럼 밥 한끼 먹고 가라고도 못하지…" 할머니는 기자가 반갑다. 보온병에 담긴 미지근한 물 한잔을 건네며 한참을 바라본다.

이 동네 아들로 불리는 박수길(가명‧59)씨는 외로움과 사투를 벌이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나오면 위험하다니까 (어르신들이) 꼼짝 않고 집에만 계신다. 예전에는 경로당이나 평상에 모여서 같이 식사도 하고 놀다 가셨는데 이젠 재미도 잃고 적적하시지. 혼자 집에서 식사도 제대로 안 하실 텐데..."

부산 동구 좌천동에 위치한 한 쪽방. 화장실도 없이 입구에 좁은 부엌만 딸린 단칸방이다. /부산=김신은 기자
부산 동구 좌천동에 위치한 한 쪽방. 화장실도 없이 입구에 좁은 부엌만 딸린 단칸방이다. /부산=김신은 기자

어르신들의 아지트인 경로당 문도 굳게 닫혔다. 이 일대는 노후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도시재생 사업이 추진된다. 하나 둘씩 떠나는 이웃도 늘고 있다. 김남이 할머니는 이곳을 떠나면 갈 곳이 없다. "돈 좀 있는 사람이야 가지. 17살에 이곳에 와서 평생을 살았어. 자식들도 멀리 있어 못가지. 얼마나 더 살지도 모르는데 여기 계속 있고 싶어."

할머니의 집을 나오면 좁디좁은 골목에 수십 개의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김남이 할머니와 같은 처지의 어르신들은 이곳에 남아 연탄으로 냉골방을 데우며 코로나19로 더욱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있다.

이들에게 적적함과 서러움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이제는 무덤덤해질 만도 하지만 왠지 올해는 따뜻한 설날이 더욱 그립다. 김남이 할머니의 집 한 쪽 벽엔 빛바랜 가족사진 한 장이 걸려있다. 할머니는 제 살기 바쁜 자식들에게 전화 한 통 하는 것조차 미안하다. "자기 새끼 키우기 바쁘지. 가끔 전화는 와." 할머니에겐 언제나, 더욱이 올해는 자식들의 목소리가 기다려진다.

hcmedia@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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