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살은 명백한 살인…애통하게 숨져간 마지막 아동이기를"
  • 조탁만 기자
  • 입력: 2020.12.09 16:57 / 수정: 2020.12.09 16:57
부산지법 전경. /더팩트 DB
부산지법 전경. /더팩트 DB

어느 판사의 비통한 판결문…자폐 딸 숨지고 혼자 살아남은 母 '징역 4년'[더팩트ㅣ부산=조탁만 기자] 딸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가 자신만 살아남은 엄마 A(40)씨에게 실형을 내린 재판부의 비통함이 느껴지는 판결 내용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A씨는 9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지난 5월 29일 열린 1심 재판에서도 같은 형을 선고받았었다.

1심 재판을 맡은 박주영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참담한 심정으로 애통하게 숨져간 아동이의 이름을 다시 부른다. 이 이름이 아동학대로, 동반자살이라는 명목으로 숨져간 마지막 이름이기를 또 다시 희망한다"고 침통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어 "그것이 부질없는 기대임을 예감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에는 끝까지 놓을 수 없는 희망이 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 최소한 아이들이 어른들의 잘못된 선택과 판단으로 쉬이 스러지지 않는 세상에 대한 희망만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애통해 했다.

그는 또 "우리는 살해된 아이의 진술을 들을 수 없다. 동반 자살은 가해 부모의 언어다. 아이의 언어로 말한다면 이는 피살이다. 법의 언어로 말하더라도 이는 명백한 살인이다"며 이 사건을 극단적인 아동학대라고 판시했다.

박 판사는 "이런 유형의 범행은 동반자살이 아니다. 동반자살이라는 워딩에 숨겨진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온정주의적 시각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며 "살해 후 자살 범행에 대한 온정주의의 기저에는 부모없는 아이들, 극도로 궁핍한 아이들,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앓는 아이들을 굳건하게 지지해 줄 사회적 안전망이 없다는 불신과 자각이 깔려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박 판사는 국가와 사회의 책임도 물었다.

그는 "이 사건을 부모의 게으름, 무능력, 나약함 등에서 비롯된 개인적 문제로만 치부해 버리는 시각 역시 동의할 수 없다"며 "대한민국은 이들에게 최소한의 삶의 버팀목 역할도 하지 못할 만큼 형편없는 나라였는가. 아이들의 목숨조차 온전히 지켜주지 못하면서 무슨 복지를 논하고, 어떤 이념을 따지며, 어떻게 정의를 입에 올릴 수 있는가. 다시 묻는다. 우리는 과연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라고 개탄했다.

이어 "아이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피눈물 흘리고 울음 삼키며 슬퍼하는 일<허난설헌 ‘곡자(哭子)’ 중>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아동보호를 위한 제도와 사회적 안전망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는 자폐증을 앓는 9세 딸을 돌보며 극심한 스트레스로 2017년 11월부터 우울증 등을 앓아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도 우울증·공황장애로 휴직과 입원치료를 반복했다.

아이는 자폐증을, 부모는 모두 우울증을 앓게 되면서 이들 가족은 생활고에 시달린다.

A씨는 딸과 ‘동반 자살’을 결심했다. 딸은 사회적 연령이 2세 정도에 불과해 혼자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A씨는 2019년 8월 자택에서 딸이 처방받아 먹던 약을 한꺼번에 먹이고, 자신도 뒤따라 약을 먹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깨어난 건 자신뿐이었다.

hcmedia@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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