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화의 세상만사] '어게인 가덕신공항', 이젠 대통령이 답하라
입력: 2020.11.23 11:51 / 수정: 2020.11.23 11:51
김해신공항 건설이 사실상 백지화되면서 다시 이슈의 중심에 선 부산 가덕도 신공항 조감도./더팩트 DB
김해신공항 건설이 사실상 백지화되면서 다시 이슈의 중심에 선 부산 가덕도 신공항 조감도./더팩트 DB

'정치 셈법', 부울경 민심 더이상 용납 안해…소모적 지역갈등 종지부 찍어야

[더팩트 | 부산=고기화 기자] 부산 앞바다에 인공섬을 만들겠다고 처음 나선 이는 고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었다. 영도와 서구 사이에 인공섬을 개발해 해양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당찬 포부였다. 이후 인공섬과 영도, 송도를 연결해 도심순환도로와 외곽순환도로까지 건설한다는 청사진까지 나왔었다. 1980년대 말쯤이니 벌써 30년도 더 됐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인공섬 건설은 무산과 재추진을 반복하는 우여곡절 끝에 2007년 부산시의 ‘해상신도시 건설’ 관련 조례가 폐지됨으로써 막을 내렸다.

지금 부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권이 가덕신공항 건설을 놓고 논란이 거세다. 국무총리실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지난 17일 그동안 추진해오던 김해신공항(기존 공항 확장안)이 동남권 관문 공항으로 사실상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면서부터다. 일단 부산 경남은 이를 곧바로 가덕신공항 건설로 기정사실화하며, 정치권과 합세해 ‘가덕신공항 특별법’ 제정 등 ‘패스트트랙’ 태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안 전 시장의 인공섬 계획이 일본 고베항 포토아일랜드를 모델로 삼았다면 가덕신공항은 일본 간사이 공항을 닮았다. 둘 다 인공섬 위에 건설되는 해상공항이다. 인천국제공항도 마찬가지다.

가덕신공항 논의를 촉발한 계기는 지난 2002년 중국 민항기의 김해 돗대산 충돌사고였다. 김해공항의 안전성이 크게 문제가 되자 2006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남부권 신공항’ 검토를 지시하면서 비롯됐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 때 ‘동남권 신공항’이 백지화 됐고, 박근혜 정부 들어 재추진했으나 ‘가덕도-밀양’ 입지를 둘러싼 지역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김해신공항’이 절충안으로 탄생했다. 이를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폐기했으니, 돌고 돌아 또다시 원점인 셈이다. 이러니 부울경 시도민 입장에선 속이 터지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가덕신공항을 구상한 것도 안 전 시장이다. 인공섬과 함께 김해공항의 가덕도 이전을 부산의 미래 핵심사업으로 삼았다. 1989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부산시를 연두순시 했을 때 안 전 시장은 새로운 2000년대를 대비해 녹산 앞바다를 매립, 1100만평을 조성한 후 새로운 국제공항과 항공, 해양산업을 유치하겠다고 보고한 바 있다.

해양 생태계 파괴와 천문학적 비용 소요 등 당시에는 논란의 소지가 많을 수밖에 없었지만 만약 인공섬과 가덕신공항이 계속 추진됐다면 지금 부산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란 것은 명약관화하다.

19일 부산시청 1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가덕신공항 조속 건설 조찬포럼’에서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신상해 부산시의회 의장, 김석준 부산시교육감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부산=김신은 기자
19일 부산시청 1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가덕신공항 조속 건설 조찬포럼’에서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신상해 부산시의회 의장, 김석준 부산시교육감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부산=김신은 기자

‘어게인 가덕신공항’이 시작됐지만 앞날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은 듯하다. 부울경은 800만 명의 염원인 가덕신공항이 2030년 4월 부산 월드 엑스포 개최 전 개항해야 한다며 한껏 들떠 있지만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통합신공항을 추진하는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 간 갈등, 줄곧 김해신공항을 고수해 온 국토부의 적극적인 태도 변화 여부, 지방을 등한시하는 수도권의 삐뚤어진 시각 교정 등. 여기에다 내년 부산시장,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내후년 대통령선거 등을 앞두고 이해득실을 따지는 정치권 등도 변수다.

동남권 관문공항으로서의 가덕신공항은 지역이기주의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전체의 이익과 국토균형발전 그리고 지방분권, 동남권 메가시티 건설 등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모두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핵심 과제들이다. 가덕신공항이 죽었다, 살아났다를 반복한 게 어언 20년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또다시 이를 번복하게 할 수는 없다.

안상영 전 시장이 꿈꿨던 ‘인공섬’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 부산항 ‘북항재개발’로 나타났다.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부산시민에 대한 선물’이라고 말한 북항재개발이 본격화된 지도 13년이 흘렀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8년 3월 부산신항에서 열린 ‘부산항 미래비전 선포식’에 참석해 "노무현 정부가 시작한 일, 문재인 정부에서 끝내겠다"며 자신의 임기인 2022년까지 조속히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가덕신공항은 노무현-박근혜-이명박-문재인 대통령으로 이어져 온 국가의 백년대계 사업이다. 문 대통령도 지난 대선 때 명시적으로 ‘가덕도’라는 단어를 쓰진 않았지만 ‘24시간 운영가능한 관문공항’이란 공약을 내걸었다. 항만 중심의 해운물류와 공항 중심의 항공물류가 합쳐져 24시간 운영된다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가덕신공항은 부산신항과도 가까운 거리에 있다.

김수삼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 위원장이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본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사실상 ‘김해신공항 백지화’를 발표했다. /부산시청 제공
김수삼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 위원장이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본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사실상 ‘김해신공항 백지화’를 발표했다. /부산시청 제공

이제 더 이상 좌고우면해선 안 된다. 내년에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있고, 내후년이면 또다시 대통령선거다. 가덕신공항을 두고 벌써 지역갈등 조짐이 보이고, 수도권의 시각은 부정 일색이다. ‘서울 촌놈’이 ‘시골 촌놈’의 서러움을 어찌 알랴마는 수도권 언론까지 마구잡이로 나서서 ‘가덕신공항’ 흔들기에 나선 형국이다. 정치적 셈법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헝클어지고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20년을 끌어온 국책사업이다. 가덕신공항과 관련한 웬만한 이슈는 대부분 조사나 검증이 다 되어있다. 절차적 문제를 빌미로 본질을 흩뜨려서는 안 된다. 소모적인 지역 간 갈등과 분열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정쟁의 도구가 돼선 안 된다.

이번 만큼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진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이 또다시 이 문제를 질질 끌어 다음 선거 때까지 이용하려는 생각을 아예 갖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정치적 셈법이 또다시 가동된다면 부울경 민심이 더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hcmedia@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