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가 맞았다…'살인의 추억' 이춘재 "특별한 이유 없다, 손 예쁜 여자 좋다"(종합) 
입력: 2020.11.02 17:44 / 수정: 2020.11.02 17:44
2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9차 공판에 증인으로 채택된 이춘재가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호송차가 도착하고 있다. /뉴시스
2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9차 공판에 증인으로 채택된 이춘재가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호송차가 도착하고 있다. /뉴시스

34년만에 법정 선 이춘재 '담담'

[더팩트ㅣ윤용민 기자] "이춘재 증인 들어오세요."

2일 오후 1시 35분께 수원지법 501호 법정.

스포츠 머리에 청록색 수의를 입고 흰색 마스크를 착용한 이춘재(57)가 모습을 드러내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때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저지른 바로 그 희대의 살인마다.

이춘재는 이날 수원지법 형사12부(박정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윤성여(56)씨에 대한 재심 공판에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언론에 공개된 사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지만 길고 갸름한 얼굴에 옆으로 찢어진 눈매는 그대로였다. 오랜 수감 생활 탓인지 얼굴 곳곳에는 주름이 깊게 패어있었다. 170cm 전후의 키로 나이에 비해 군살이 없는 호리호리한 체형이었다. 다만 마스크를 착용해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오늘 어떠한 이유로 이 법정에 나오게 됐는지 알고 있느냐'는 재판부의 물음에 그는 "알고 있다"고 답한 후 증인 선서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나지막하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이 사건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가 "교도소에서 자백한 14건의 살인과 30여건에 이르는 성폭행 사건의 진범이 맞느냐"고 묻자 이춘재는 "예, 맞습니다"라고 한 치의 망성일도 없이 대답했다.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가 34년 만에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2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뉴시스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가 34년 만에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2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뉴시스

이춘재는 34년이나 지났지만 당시의 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진술했다.

그는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과 관련해 "자살을 하려다 우연히 만난 아이가 갑자기 도망을 갔다"며 "산 속으로 들어간 아이를 잡아 숲으로 데려갔다"고 했다. 이어 "당시에 왜 그랬는지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며 "계획을 했다거나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춘재는 유족이 아직까지도 힘들어하고 있다는 지적에 "후회도 하고 자살 시도도 해봤는데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 밖에 없다"며 "반성과 참회를 하고 있으니 마음의 평안을 얻고 생활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가 "부산교도소에서 여성 프로파일러의 손을 잡아도 되느냐고 물은 적이 있느냐"고 하자, 이춘재는 "손이 예쁜 여자가 좋다"면서도 범행 대상과는 관련이 없다고 답했다.

자백한 계기에 대해선 "(경찰의 재수사 이후)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했다"며 "형사인줄 알았던 여성 프로파일러가 진실을 이야기 해달라고 해 자백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 순간 피고인석에서 이춘재를 아무 말도 없이 바라보던 윤성여씨는 질끈 눈을 감았다.

이춘재는 영화 '살인의 추억'과 관련해선 "교도소에서 봤다. 별 감흥이 없었다"며 "사실과도 다른 부분이 많아서 신경써서 보지는 않았다"고 언급했다.

이날 재판은 오후 8시 이후에나 끝날 것으로 보인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이춘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이춘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이 사건은 발생 당시부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사건은 1988년 9월 1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오전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한 가정집에서 중학생 A(만 13세)양이 숨진 채 발견됐는데,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기존 연쇄살인 사건의 모방범죄로 봤다. '화성연쇄살인 7차사건'이 발생한 지 11일 만이었다.

모방범죄로 판단한 이유는 야외에서 발생한 다른 사건 달리 A양은 집 안에서 숨져 있었던 탓이다.

경찰은 이듬해 범행 현장 인근에 사는 농기계 수리공 윤씨를 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해 수사를 벌였다. 이후 윤씨는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20년을 복역하다 지난 2009년 가석방됐다.

윤 씨는 검찰 수사와 1심까지는 혐의를 인정했지만 2심부터 "경찰이 때리고 가혹행위를 시켜서 거짓으로 허위자백을 했다"며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 하지만 주장을 증명할 구체적 물증이나 사건 당시 알리바이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고등법원 항소와 대법원 상고마저 기각되면서 끝내 유죄가 확정됐다.

윤씨는 이후에도 경찰의 강압수사 등을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2003년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사건 발생 30년 만인 지난해 9월 DNA 분석으로 이 사건 용의자가 이춘재로 특정됐다.

윤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검찰과 변호인 양측은 모두 이춘재를 증인으로 신청했으며, 법원은 사건 발생 34년 만에 그를 증인으로 채택해 이날 법정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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